[편집자주] 올해는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삼켰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코로나19 눈치 속에서 전전긍긍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누군가는 기회를 찾고, 성장을 꿈꾸고 있습니다. 흙 속의 진주를 찾듯이 위기 속 과감한 도약을 준비하는 기업을 발굴해 그들의 전략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인더뉴스 이재형 기자ㅣ우리나라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올해로 15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전국민 넷 중 한 명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습니다. 그만큼 소중한 동물 가족과 영원히 이별하는 ‘집사’가 매년 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오직 이별의 아픔 속에서 우리는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현행법처럼 동물 사체를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리는 식의 이별은 아픔을 딛기에는 너무나 야만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동물 화장터에선 다른 동물 사체와 섞어 태워 반려인들을 경악하게 하기도 했지요.
지난 6일 <인더뉴스>는 경기도 광주시의 ‘21그램’을 찾았습니다. 국내 1호 반려동물 장례식장인 ‘아롱이천국’을 리모델링해 이달 새로 오픈한 동물 장례시설입니다.
이곳을 설계한 이윤호 21그램 이사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시간이 조금 남아 건물 내외부를 둘러봤습니다. 일단 정갈한 2층 벽돌 건물이 삭막한 주변 공장과 묘지 사이에서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은은한 조명이 상아색 내벽을 감쌌고, 뼛가루가 담긴 항아리와 반려동물의 사진이 안치된 봉안당이 보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자의 눈길을 끈 건 깔끔하게 꾸려진 염습실과 추모실이었습니다.
◆ “사람도 동물도 영혼의 무게는 ‘21그램’”
“동물도 염습을 하나요?”
기자는 이윤호 이사를 만나자마자 이 질문부터 던졌습니다. 이 이사는 웃으며 “그럼요. 염도 하고 전문 장례지도사가 수의도 입히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국내에 이런 문화가 드물다보니 신기해하는 분이 많아요”라고 덧붙였습니다.
21그램에선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동물을 화장한다고 합니다. 동물 사체를 염해 화장로에 들이면 반려인들은 옆 방에서 TV로 그 과정을 지켜보며 추모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반려인의 심적 안정을 위해 동물이 화장로에 들어가는 모습이 직접 드러나지 않도록 커튼으로 창문을 잠시 가리지요.
이윤호 이사는 7년 전 대학·대학원 동문이자 같은 회사 출신인 권신구 대표과 함께 21그램을 창업했습니다. 정림건축, 아뜰리에 등 건축회사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소위 ‘잘 나가던’ 그가 동물 장례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뜻밖에도 그의 지인이 문득 던진 한 마디였습니다.
“어느날 친구가 ‘반려동물도 장례를 하더라’는 말을 했어요. 저도 개를 15년 키웠기 때문에 그 말이 뇌리에 꽂혔죠. 그래서 당시 장례시설을 알아보니 시설이 대체로 낙후돼 있더라고요. 공장이나 창고에 화장로만 놓고 ‘안전제일’ 문구가 적힌 외투를 입은 분이 동물 사체를 삽에 받아서 넣고 있더군요. 마음에 ‘왜 일을 저렇게 해야 하지?’하는 물음표가 생겼죠.”(이윤호 이사)
◆ ‘혐오시설’을 반려동물의 ‘안식처’로
그렇게 다니던 직장을 박차고 나온 30대 중반의 두 청년. 그러나 인맥도 없이 ‘맨 땅에 헤딩’하는 그들에게 생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름 건축 인허가부터 실시설계, 계획설계, 감리까지 안 해본 게 없는 그들이었지만 갓 차린 회사를 믿고 건축 설계를 맡기는 사업주는 없었죠. 창업 초기에는 워낙 할 일이 없어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사무실 근처의 송파구 석촌호수만 돌다가 퇴근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현장 마케팅에 나섰습니다. 일을 ‘수주’하는 게 아니라 건물주를 만나 건물 가치를 더 높일 설계를 먼저 제안한 것. 이 방식으로 21그램은 5년 전 그들의 첫 사업인 반려동물 장례식장 ‘펫 포레스트’ 신축 건을 따냈습니다.
이윤호 이사는 “5년 전에도 동물 장례시설은 있었죠. 하지만 미국·일본의 문화적인 시설과 달리 어두침침하고 무서운 분위기였어요. 지금도 장례시설은 혐오시설이지만 당시에는 폐기물처리시설로 규정돼 더욱 낙후됐고, 반려인들은 장례 후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오기 일쑤였습니다”라며 “그래서 집같이 편안한,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건물주를 설득했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펫 포레스트가 좋은 평가를 받자 회사도 커졌습니다. 이제 21그램은 건축을 넘어 시설 운영, 마케팅까지 사업영역을 넓힌 통합 솔루션을 건물주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직원도 건축, 인테리어, 웹디자인, IT개발자 등 분야를 포함해 16명까지 늘었다고 합니다.
◆ “공간의 숨겨진 가능성을 건축으로 발굴하고 싶어요”
이번에 두번째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개발하면서 이윤호 이사는 감회가 더욱 새롭다고 했습니다. 펫 포레스트와 달리, 이번에는 시설 이름에 ‘21그램’ 브랜드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21그램은 브랜드 가치를 높여 호텔, 유치원, 병원 등 시설로도 반려동물 테마의 매력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도 했습니다.
“우리 어릴 적 놀이터는 바닥에 유리조각이 있고 위험한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그러면 큰일나죠. 안전한 놀이터가 많아지면서 인식이 바뀐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껏 동물 장례 문화를 바꾼 것처럼 다른 반려동물 문화도 새로운 건축물로 조금씩 발전시키고 싶어요. 그런 아이디어를 내고 또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게 우리 건축가들의 역할이고요.”(이윤호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