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장승윤 기자ㅣ#. 신림동에 거주하는 30대 A씨는 퇴근 후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마시려다가 멈칫했다. 보름 전에 산 우유의 유통기한이 1주일이 지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우유 상단에 찍힌 유통기한 날짜가 1주일이나 지난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마셨다가 배탈나면 어쩌지”하는 걱정에 A씨는 결국 우유를 싱크대에 버렸다.
최근 정부 등에서 식품의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 중입니다. 보통 마트에서 구매하는 식품에는 유통기한이 표시돼 있는데, 소비기한으로 변경되면 섭취할 수 있는 날이 늘어나게 됩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30일 ‘2021 서울 녹색 미래 정상회의’(P4G 서울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식품·의약품 분야에서 추진하는 주요 제도 개선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표시하도록 ‘식품표시광고법’ 등 관련 규정 개정을 추진한다는 내용입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한 해 1만4314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배출되는데요.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885만톤에 달합니다. 쓰레기 배출 등을 줄이는 방안으로 식약처는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뭐가 다를까요?
위 사례의 A씨처럼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식품은 온도와 습도 등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해진 기한을 준수할 필요가 있는데요. 다만 대부분의 식품이 유통기한을 일정 기간 넘겨서 먹어도 몸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비슷해 보여도 의미가 다릅니다. 유통기한이란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유통·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을 뜻합니다. 소비자는 이 기한 내에 식품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으며 제조업체는 제품의 품질이나 안전성을 책임지고 보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하지만 유통기한은 소비자를 위하기보다는 생산자나 유통업자가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언제까지 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소비기한은 규정된 보관조건에서 소비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의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2017년 군산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발표한 ‘식품의 일자표시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이미 해외에서는 소비기한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미국,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등을 중심으로 유통기한을 품질유지기한 및 소비기한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앞서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동남아·아프리카 등 대부분 국가에서 소비기한을 도입했습니다. CODEX는 2018년에 유통기한을 식품기한 지표에서 삭제하기까지 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지난 1985년 유통기한 표시제를 도입한 후 현재까지 유통기한 일자 표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식약처는 제품을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기간의 60~70%를 유통기한으로 설정합니다. 소비기한은 이보다 긴 80~90%입니다.
한국에서 유통기한은 곧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통용되는데요. 식품의 안전성과 처분 시점을 판단할 때 유통기한을 절대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는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소비기한이 적용되면 개봉하지 않은 우유는 최고 50일, 액상 커피는 30일, 치즈는 70일까지 섭취가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 절감도 가능해집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13년에 진행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소비기한 도입 시 폐기 비용 절감 효과가 소비자는 3000억원, 생산자는 176억원에 달합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11년부터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지만 지금껏 현실화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2월 비영리단체 ‘소비자기후행동’은 유통기한 표시를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것을 활동 목표로 정했고 지난해 7월에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와 관련해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입니다.
식품업계에서는 ‘소비기한 표시제’가 실제로 도입돼 소비자가 이익을 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나오고 있습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소비기한 표시 제도를 추진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도입되려면 행정 예고 등의 과정이 필요해 당장은 구체적인 계획을 짤 수가 없다”면서도 “소비기한제가 도입되면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을 지나 어쩔 수 없이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 양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