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 열기 인더뉴스 부·울·경

Column 칼럼

[정진영의 안주잡설] 씹을수록 당기는 쫄깃한 매력 ‘육포’

URL복사

Sunday, February 13, 2022, 11:02:32

 

정진영 소설가ㅣ2009년 여름, 나는 1번 국도를 따라 서울에서 고향인 대전까지 홀로 걸었다. 당시 20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던 나는 ‘소설을 쓰며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은 소설로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어서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소설을 쓴다고 해도 등단할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운이 좋아 등단하더라도, 소설로 밥벌이를 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았다. 무작정 고향까지 걷다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번 국도를 따라 걷는 일은 여행보다 뻘짓에 가까웠다. 1번 국도는 파주부터 목포까지 한반도 서부의 주요 도시를 종으로 잇는 도로다. 국도 주변 환경은 결코 보행자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도시의 풍경은 낭만과 거리가 멀었고, 도시와 도시를 잇는 구간의 풍경은 황량했다. 무엇보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 건 더위였다. 한여름의 아스팔트는 불 위에 달궈진 프라이팬 같았는데, 열기를 피할 그늘을 찾기가 어려웠다. 허술하게 포장된 인도는 내가 힘줘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힘을 그대로 내 무릎 관절에 돌려줬다. 걸음이 쌓일수록 피로감과 외로움만 더해갔다.

 

어쩌다 국도 주변에서 만나는 편의점이나 구멍가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간식과 식수를 보급하면서 시원한 소주 한 병을 사서 물병에 옮겨 담곤 했다. 힘들어 길바닥에 주저앉고 싶을 때 소주 한 모금을 마시면 희한하게 견딜만 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 공사 현장에서 막일을 했던 아저씨들이 왜 아침부터 소주를 마시고 일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내 안줏거리는 육포였다. 육포는 휴대하기 편하고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뱃속으로 들어가면 불어서 끼니를 때우는 데에도 요긴했다. 맛도 짭짤하니까 땀으로 빠져나간 염분을 보충하기에도 좋았다. 육포 덕분에 나는 배를 곯지 않고 무사히 고향까지 걸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덕분에 소설을 쓰지 않고 후회하기보다 쓴 다음에 후회하자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옛 몽골기병이 전 세계를 휩쓸던 시절에 왜 소 한 마리를 육포로 만들어 말에 식량으로 싣고 다녔는지 알 것 같았다.

 

저마다 나름 안주를 고르는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테다. 나 역시 그렇다. 첫째, 맛있어야 한다. 둘째, 배부르지 않아야 한다. 셋째, 간단히 차릴 수 있어야 한다. 육포는 이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안주 중 하나다. 요즘도 나는 동네 편의점이나 대형 마트에 들르면 마른안주 코너에서 육포를 살피는 일을 잊지 않는다.

 

육포가 맛있는 안주라는 데에는 이견이 드물지만, 몸에 좋은 음식인지에 관해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우선 육포의 발색과 보존을 위해 쓰이는 아질산나트륨이 발암성분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무게에 비해 염분 함유량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시시콜콜 따지면 세상에 먹을 안주가 과연 몇 개나 남을까. 튀기는 조리법이 몸에 별로 좋지 않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때 되면 치킨을 먹어줘야 금단증상이 풀리는 게 우리네 일상 아닌가. 일단 술부터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기 어려운데, 건강한 안주를 따지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기분 좋게 먹고 마시는 게 신체 건강에는 몰라도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설사 육포가 몸에 별로 좋지 않다고 치자. 육포는 매 끼니마다 챙겨 먹는 음식이 아닐뿐더러, 그렇게 먹기도 쉽지 않다. 육포는 비싸니까. 비싸니까……. 눈물이 나네. 내가 생각하는 육포의 유일한 단점은 가격이다. 솔직히 가성비는 꽝인데 맛있어서 참는다. 술꾼이라면 육포는 대형마트에서 ‘1+1’ 행사를 할 때 적당히 챙겨둬야 할 필수 품목이다.

 

육포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더 맛있게 먹으려면 참기름을 준비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육포에 참기름을 바른 뒤 약불에 타지 않게 살짝 구워내는 것이다. 이 방법이 귀찮다면 참기름을 바른 육포를 전자레인지에 30~40초가량 데워 보자. 작은 수고만으로도 맛의 레벨이 달라진다.

 

이마저도 귀찮다면 그냥 작은 종지에 참기름을 덜어낸 뒤 육포를 찍어먹자. 나는 주로 이렇게 먹는다. 가끔 마요네즈에 청양고추와 간장을 섞어 만든 소스에 찍어먹기도 하지만, 역시 육포는 참기름과 가장 궁합이 좋다. 마른안주에 잘 어울리는 술은 아무래도 맥주다. 마른안주 패밀리의 상석에 있는 육포 역시 맥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다. 다만 육포처럼 맛있고 배부르지 않은 안주에는 위스키나 증류식 소주처럼 깔끔하고 배부르지 않은 술이 더 잘 어울린다는 게 내 의견이다.

 

요즘에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식품 코너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육포가 진열돼 있어 눈과 입이 즐겁다. 굽는 냄새로 침샘을 폭발하게 하는 싱가포르의 명물 ‘비첸향’을 비롯해 돼지육포, 닭육포, 말육포, 연어육포 등등. 고기란 고기는 다 육포로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이것저것 다 사 먹어봤는데 그중에서도 돼지육포는 질감이 부드럽고, 닭육포는 담백한 맛이 돋보였다.

 

하지만 육포 맛의 핵심은 씹을수록 베어 나오는 고소한맛과 감칠맛 아닐까. 구관이 명관이더라. 역시 육포는 쇠고기로 만든 게 최고였다. 어떤 육포의 맛도 쇠고기 육포의 맛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게 솔직한 소감이다.

 

진열대에 놓인 수많은 육포 중에서 최고의 브랜드를 꼽아보자면, 어린 시절부터 접해 온 ‘코OO’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식감이 촉촉한 육포가 많아진 요즘에는 다소 딱딱한 편이지만, 육포는 역시 오래 씹어야 제맛 아닌가.

 

시장에서 오래 버틴 브랜드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실 맛의 깊이를 따지면 종갓집에서 씨간장으로 절인 한우 우둔살로 정성스럽게 만든 육포를 따라올 제품은 없다. 하지만 그런 ‘하이엔드’는 지나치게 카리스마가 넘쳐 술을 즐기기 어렵게 한다. 적당히 비싸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손에 닿는 접근성, 몇 개 집어먹으면 사라지는 감질나는 양. 육포가 술상에서 다른 마른안주보다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귀함과 흔함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쫄깃한 매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정진영 필자

 

소설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다시, 밸런타인데이',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썼다. '침묵주의보'는 JTBC 드라마 '허쉬'로 만들어졌으며, '젠가'도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앨범 '오래된 소품'을 냈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이 있다.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

English(中文·日本語) news is the result of applying Google Translate. <iN THE NEWS> is not responsible for the content of English(中文·日本語) news.

배너

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배너

미 기준금리 0.25p 추가인하…“내년엔 2차례 인하 예상”

미 기준금리 0.25%p 추가인하…“내년엔 2차례 인하 예상”

2024.12.19 09:51:24

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8일(현지시간)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종전보다 0.25%p 낮은 4.25~4.50%로 조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9월 빅컷(기준금리 0.50%p 인하) 단행을 통한 통화정책 기조전환 이른바 피벗(pivot)에 나선 연준은 11월에도 베이비스텝(0.25%p 인하)을 밟은 바 있습니다. 이로써 미 기준금리는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2022년 3월부터 공격적으로 올린 이후 최고치(5.50%·2023년 7월~2024년 9월)와 비교하면 1%p 낮아졌습니다. 한국(3.00%)과 기준금리 차이는 상단 기준 1.75%p에서 1.50%p로 줄었습니다. 연준은 성명에서 "올해초부터 노동시장 상황은 전반적으로 완화됐고 실업률은 상승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낮다"며 "인플레이션은 위원회 목표치 2%를 향한 진전을 이뤘으나 여전히 다소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와 함께 연준은 경제전망예측(SEP)을 통해 내년말 예상 기준금리를 기존 9월 전망치(3.4%)보다 0.5%p 높은 3.9%로 제시했습니다. 내년 금리인하 횟수를 스몰컷(0.25%p 인하) 기준 4차례에서 2차례로 줄인 것입니다. 연준은 이날 성명에서 "금리 목표범위에 대한 추가적인 조정의 폭과 시기(the extent and timing)를 고려할 때 위원회는 지표와 전망, 위험균형을 신중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FOMC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오늘 결정문에 금리조정 폭과 시기라는 표현을 통해 금리 추가조정 속도를 늦추는 게 적절한 시점에 도달했거나 부근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며 "정책금리의 추가적인 조정을 고려할 때 우리는 더 신중을 기할(cautious) 수 있다. 이제부터는 새 국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연준은 이날 수정전망에서 2025년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 전망치를 종전 2.1%에서 2.5%로 상향조정했습니다.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은 2.1%로 예상했습니다.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