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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의 안주잡설] 가까운 이와 점잖지 못하게 먹어야 더 맛있는 ‘족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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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pril 17, 2022, 09:04:42

 

정진영 소설가ㅣ지난 2009년 늦가을 어느 날 밤 북한산의 한 사찰. 그곳에서 나는 몇 달 동안 매달렸던 두 번째 장편소설 초고 집필을 마쳤다.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는 과정은 지난했는데, 나를 축하해줄 사람은 없었다. 당시 나는 등단을 꿈꾸며 습작을 쓰는 수많은 작가 지망생 중 한 명일뿐이었고, 문학을 전공하거나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문우도 없는 외로운 처지였다.

 

몇 년 전에 쓴 첫 번째 장편소설 원고를 수많은 출판사에 투고했지만 어떤 곳도 받아주지 않았다. 세상에 자기 이름으로 책 한 권도 못 낸 나는 남들 눈에 헛된 꿈을 가진 백수에 불과했다. 운이 좋아 책을 내도 작가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 현실을 자각하니 초고 집필의 기쁨이 빠르게 사그라졌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고자 노트북을 덮고 절방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그 길로 한참을 걸어 내려와 등산객을 상대하는 족발집에 들러 3000원짜리 애기족발 두 개를 샀고, 가까운 구멍가게에도 들러 소주 두 병을 챙겼다. 다시 절방으로 돌아온 나는 스산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風磬) 소리를 들으며 족발을 뜯고 소주를 마셨다. 달짝지근한 육수가 깊게 스민 따끈따끈하고 야들야들한 껍질, 촉촉함이 살아있는 속살. 그 뒤를 쫓는 차가운 소주 한 잔은 청량했다. 부처님께는 죄송했지만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그로부터 2년 후, 두 번째 장편소설 원고는 제3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도화촌기행'이란 제목으로 출간돼 나를 작가로 만들어줬다. 그보다 10년이 더 흐른 후에는 첫 번째 장편소설 원고도 '다시, 밸런타인데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집필 2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오래 묵혀둔 원고가 뒤늦게 책으로 묶일 때마다, 나는 홀로 절방에서 애기족발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던 순간을 회상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면 기분이 아련해진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별한 기억을 부르는 안주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사실 '도화촌기행' 집필을 마친 그날 밤에 나는 딱히 족발을 안주로 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피로감과 해방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홀가분한 마음을 소주로 달래고 싶었고, 절에서 나와 걷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안주가 족발이었을 뿐이다. 돌이켜보니 그날 무렵부터 내 족발 취향이 바뀌었다. 쫄깃한 껍질을 가진 차가운 족발보다 물렁물렁한 껍질을 가진 뜨끈한 족발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이다. 의미 있는 순간을 함께 했던 안주가 취향에도 변화를 준 게 아닐까. 앞으로도 나는 평생 그때 먹었던 족발을 잊지 못할 테다.

 

족발은 단언컨대 껍질 맛으로 먹는 안주다. 족발 껍질은 육수에 오랜 시간 삶으면 반투명한 짙은 갈색으로 물이 드는데, 그 빛깔만큼 술꾼을 유혹하는 빛깔도 드물다. 보기만 해도 입 안에 침이 고이게 하는 빛깔이니 말이다. 족발의 맛은 빛깔로 상상할 수 있는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고기의 고소하면서도 기름진 맛과 껍질에 스며든 육수의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감칠맛의 절묘한 조화. 이 맛은 식혀서 내놓는 족발 껍질보다 육수에서 막 꺼내 젤리처럼 흔들리는 껍질에서 훨씬 농후하게 느껴진다. 누가 뭐래도 족발은 촉촉하고 부드러워야 맛있다. 그것은 편견이라고 반발해도 나는 내 의견을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다.

 

야들야들한 족발 껍질이 입안에서 무너지며 혓바닥을 덮는 순간, 소주 한 잔을 건너뛰면 족발에 예의가 아니다. 와인을 잘 아는 이들은 '마리아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와인을 잘 모르는 나도 입안에서 족발 껍질과 소주가 결합하는 순간만큼은 ‘마리아주’라고 표현하며 허세를 부리고 싶다. 그만큼 족발과 소주의 결합은 환상적이다. 흔한 조합은 아닌데, 위스키도 족발과 은근히 잘 어울리는 술이다. 탈리스커나 조니워커처럼 스모키한 위스키에 족발을 더해보자. 족발의 캐러멜 향과 위스키의 알싸한 향이 희한하게 잘 어울려 훌륭한 '마리아주'를 경험할 수 있다.

 

족발은 오랜 시간 동안 불을 써야 조리할 수 있는 안주다. 내 손으로 집에서 족발을 만들어 먹는 일은 쉽지 않다. 족발이 치킨, 피자와 더불어 배달 음식 삼대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일 테다. 나는 이사할 때마다 가까운 족발집 목록을 뽑아 두루 주문해 먹어본 뒤 한 곳에 정착한다. 배달앱 별점만 믿다가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족발집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가 사는 김포 양촌과 가까운 곳에 꽤 괜찮은 족발집이 있어서 고민을 덜었다. 배달앱 별점만으로 판단했다면 지나쳤을 족발집이다. 집과 가까운 곳에 언제든지 믿고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족발집 하나가 있다는 건 복된 일이다. 가끔 배달앱이 대중의 입맛을 획일화시키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여도 가까이서 보면 까다롭고 천차만별인 게 사람 입맛 아닌가. 누가 뭐래도 자신의 혀가 자신에게 정답이다.

 

족발에 관한 썰을 풀다보니 문득 또 다른 술자리 풍경이 떠오른다. 나는 신문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여러 부서를 떠돌아다녔는데, 가장 즐겁게 근무했던 때는 문화부에서 대중음악 취재를 맡았을 때다.

 

당시 나는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여러 인디 뮤지션과 친분을 맺었고, 홍대 앞과 가까운 공덕동 족발 골목에서 그들과 종종 저녁에 만나 함께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족발만큼 저렴한 가격에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안주가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들과 족발을 손에 들고 술에 취해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며 키득거렸다. 내 생에 가장 팔자 좋았던 시절 중 하나다. 그 시절에 맺은 인연은 내가 기자 명함을 버린 후에도 오랫동안 꾸준히 이어져 내 일상을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공연 대부분이 취소되거나 중단됐고, 뮤지션은 삶의 터전인 무대를 잃었다. 암울한 시간이 2년 넘게 흐를 줄은 몰랐다.

 

이제 저녁 술자리를 막았던 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업제한이 조만간 풀린다고 한다. 빠른 시일 안에 그들이 다시 무대에 서서 열정적으로 땀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는 무대 아래에서 마스크를 벗고 그들을 향해 목이 쉬도록 환호하고 싶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그들과 함께 족발을 뜯으며 술에 취해 예전처럼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는 위로를 족발 위에 곁들이면서. 족발은 역시 가까운 사람과 점잖지 못하게 먹어야 더 맛있는 안주다.

 

■정진영 필자

 

소설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다시, 밸런타인데이',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썼다. '침묵주의보'는 JTBC 드라마 '허쉬'로 만들어졌으며, '젠가'도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앨범 '오래된 소품'을 냈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이 있다.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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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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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서비스·B2B 투트랙 AI로 간다…제조업 AX도 가속

네이버, 서비스·B2B 투트랙 AI로 간다…제조업 AX도 가속

2025.11.06 10:48:33

인더뉴스 이종현 기자ㅣ네이버[035420]가 6일부터 7일까지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팀네이버의 통합 컨퍼런스 '단25(DAN25)'를 개최, 서비스부터 B2B까지 아우르는 두 축의 AI 전략 방향성을 공개했습니다. 네이버는 주요 서비스를 중심으로 AI 에이전트를 전면에 도입하고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핵심 제조 산업의 AX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입니다. '단25' 키노트세션의 오프닝을 맡은 최수연 대표는 "팀네이버는 지난 1년간 독자적 기술력으로 검색, 쇼핑, 로컬, 금융 등 주요 서비스에 AI를 접목한 결과, 사용자 만족도가 증가하고 매출 성장을 견인하는 등 긍정적인 시그널을 얻었다"라며 쇼핑을 시작으로 검색, 광고 등 주요 서비스에 순차적으로 고도화된 에이전트를 본격 도입한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먼저, 내년 1분기에는 AI 쇼핑 서비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에 쇼핑 에이전트가 출시될 예정이며 2분기에는 통합검색이 AI 에이전트를 기반으로 진화한 'AI탭'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네이버는 서비스 전반의 데이터와 기술 인프라를 하나로 통합한 '에이전트 N'을 새롭게 구축했습니다. '에이전트 N'은 '온서비스 AI'를 통해 축적된 버티컬 AI 역량을 고도화해 사용자의 맥락을 이해하고 다음 행동을 예측·제안하며 실행까지 완결하는 구조로 설계됐습니다. 최 대표는 "사용자는 어떤 검색어를 입력할지 고민하지 않고 '에이전트 N'과의 대화만으로 AI 에이전트가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해 원하는 콘텐츠·상품·서비스로 연결하고 실제 행동까지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온서비스 AI'를 '에이전트 N'으로 고도화하는 프로젝트를 리딩하고 있는 김범준 COO는 '에이전트 N'이 실제 서비스에 구현되어 구매와 결제까지 이어지는 사례에 대해 미리 공개했습니다. 김COO는 "다양한 유형의 메타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네이버만의 장점을 살려 쇼핑 에이전트의 경우 실제 구매자와 예약자만 남길 수 있는 리뷰, 판매자와 직접 연결된 재고 데이터 등 신뢰도 높은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했으며 이를 분석하는 기술적 검증 체계도 갖췄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네이버는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비즈니스 통합 에이전트 '에이전트 N 포 비즈니스'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종민 광고 사업 부문장은 "네이버 비즈니스 에이전트는 쇼핑, 광고, 플레이스 등 모든 사업자들을 위한 AI 솔루션으로, 그동안 분산되어 있던 사업자 솔루션과 데이터를 하나의 비즈니스 허브로 통합해 사업자가 AI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환경을 분석하고 현황을 손쉽게 진단,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네이버는 창작자들이 AI·XR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창작 실험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이재후 네이버앱 서비스 부문장은 "AI와 XR 기술을 통해 크리에이터들이 창작의 영역을 확장하고 사용자는 초몰입·초실감의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네이버는 AI 생태계에서 창작자들의 가치를 지키고 생태계에 대한 기여를 보상하기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도 도입합니다. 네이버에 따르면 2009년 1000명으로 시작된 창작자 보상 프로그램은 올해 61만명으로 확대됐습니다. 내년에는 2000억원 규모를 콘텐츠 투자 및 창작자 보상에 지원한다는 계획입니다. 네이버는 국내 최대이자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목표로 AI 생태계 경쟁력을 위한 데이터센터와 컴퓨팅 투자를 확대합니다. 우선 2026년까지 1조원 이상의 GPU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며 올해 하반기부터는 네이버 제2사옥 1784와 각 세종 데이터센터를 연결하는 '피지컬 AI'의 테스트베드가 본격 운영됩니다. 최 대표는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한국 제조 핵심 산업의 탄탄한 경쟁력 위에 네이버가 갖춘 독보적인 AI 소프트웨어 역량을 더해 대한민국 산업 전반의 AI 전환과 혁신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풀스택 AI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산업 특화 AI(버티컬 AI)와 글로벌 시장 확장을 중심으로 한 산업 AI 전략을 공개했습니다. 김유원 대표는 "AI는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라며 "네이버는 자국의 언어·데이터·산업 구조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기업으로서 '소버린 AI 2.0'을 기반으로 산업별 버티컬 AI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제조·방산 등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작동하는 '피지컬 AI' 기술을 내재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 특화 AI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조선, 에너지, 바이오 등 주요 산업의 기업들과 협력해 제조 전 과정의 AI 활용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이 기술을 사우디·태국·일본 등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해 소버린 AI 레퍼런스를 넓혀갈 것"이라며 "헬스케어·농업 등 AI 접근성이 낮은 분야에도 AI 기술 활용을 확대해 산업과 사회 전반의 AI 혁신을 이끌겠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최수연 대표는 키노트 세션의 클로징에서 임팩트 펀드 기반의 '네이버 임팩트'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공유했습니다. 최 대표는 "'네이버 임팩트'를 통해 AI 기술을 기반으로 파트너들이 함께 경험을 공유하고 성장하는 '물결효과'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라며 "네이버는 AI 교육, 기술 등의 격차를 줄이고 SME와 창작자, 그리고 로컬 사업자들이 AI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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