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50년대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사실상 유일한 국가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사십대는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오롯이 겪은 세대이자 한국 사회의 정확히 중간을 차지하고 있는 세대입니다. [인더미들 in the middle]은 인더뉴스가 한국 사회의 중추로 자리잡은 사십대들의 삶과 일, 그리고 꿈꾸는 미래를 들어보는 인터뷰 입니다. 세대의 가교이자 시대의 중심에 서 있는 사십대들의 진솔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한국 사회의 여러 갈등을 조율하고 해법을 찾는데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인더뉴스 김용운 기자ㅣ정진영 작가는 1981년생입니다. 2011년 장편소설 <도화촌 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습니다. 하지만 정 작가는 소설가, 혹은 작가라는 호칭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사회생활을 언론계에서 시작해 ‘기자’라는 호칭이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나름 잘 다니던 일간지 기자를 관두게 된 계기는 급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2020년 2월 출근길에서 드라마 판권 계약금으로 산 차를 몰고 출근하다가 폐차를 시켜야 할 만큼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다행히 몸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어떤 깨달음이 왔다고 합니다.
“차가 빙글빙글 돌던 순간, 아 이러다 죽겠구나 했었거든요. 다행히 따라오던 뒷차가 없어 가드레일만 받았습니다. 그때 마흔에 접어들면서 어떻게 살까? 고민을 하던 시기였는데. 언론사 기자로 사는 것도 좋겠지만 출티근하다 죽는 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시 정 작가는 2018년 발표한 소설 <침묵주의보>가 JTBC 드라마 <허쉬>로 각색되었고 기자와 작가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을 하던 때였습니다. 결국 정 작가는 사고 후 며칠이 지난 날 회사에 사표를 냅니다. 만류하는 부장에게 정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소설 쓰다 굶어 죽는 게 출퇴근하다 죽는 것 보다 나을 것 같습니다."
올해 초 첫 산문집 <안주잡설>을 낸 정 작가와 인터뷰를 위해 만난 곳은 서울 중구의 유명한 평양냉면 전문점인 필동면옥이었습니다. <안주잡설>은 정 작가가 인더뉴스에 연재했던 칼럼에 새로운 원고를 더해 낸 음식 에세이입니다. <안주잡설>의 여덟 번째 소재인 평양냉면은 정 작가가 2011년 두 번재로 이직한 신문사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편집국장이 동기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필동면옥에서 제육과 평양냉면을 사주었는데 그날 이후 정 작가는 평양냉면 예찬론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전국의 평양냉면 전문점을 도장 깨듯 다니고 기어이 자신만의 평양냉면 레시피까지 <안주잡설>을 통해 공개하는 경지까지 올랐습니다.
평양냉면에 편육을 곁들인 인터뷰는 ‘마흔’과 ‘중간’에 맞춰졌습니다.
"사실 제가 언론사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가 우리나라 나이로 딱 마흔이 되던 때였습니다. 교통사고가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정말 그때 계속 기자로 살아야 하나? 아니면 작가로서 승부를 걸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런 찰나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을 하고 나니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정 작가의 결혼은 언론에도 보도될 만큼 '연예계 화제'인 뉴스였습니다. 정 작가의 아내는 배우 박준면씨입니다. 정 작가는 당시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로 박준면 배우를 처음 만났습니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던 기자와 취재원은 결국 라면을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취중을 핑계로 정 작가의 자취방에 쳐들어갔던 박 배우는 정 작가가 끓여준 해장라면을 먹고 마음을 굳혔기 때문입니다.
둘은 결혼식 없이 동사무소에서 혼인신고만으로 평생을 약속합니다. 그때가 2015년 8월이었습니다.
"준면씨가 저와의 연애하고 결혼한 이야기를 가끔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서 밝히곤 합니다. 사실 준면씨 말대로 결혼부터 한 셈이죠. 준면씨와 살면서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서로 술을 좋아하다보니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점이에요. 더군다나 준면씨는 저의 가장 준엄한 독자이고 평론가기도 하거든요."
사십대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숱한 불화는 결국 서로 대화가 부족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요?라는 뻔한 질문에 정 작가는 "서로 술잔만 잘 기울이는 사이가 되어도 대화가 부족할 리는 없다"면서 "이번 첫 산문집이 만들 때도 준면씨가 여러면에서 도움을 많이 주었다"고 아내 자랑을 몇 분 늘어놓았습니다.
이야기의 주제를 애써 돌렸습니다. 사실 정 작가는 김훈과 장강명 작가의 뒤를 잇는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대개 기자로 일하면서 겪었던 사회의 여러 모순적인 부분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시원하게 풀어나가는 성향이 강합니다. 언론사 내부와 기업의 카르텔이 주요 소제인 <침묵주의보>와 <젠가>가 대표적입니다. 차기작으로는 여의도 정치권을 다룬 소설과 드라마 극본도 준비 중입니다.
"저는 딱히 어떤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보수적인 측면이 더 있다고 할 수 있지만요. 중요한 건 사회에서 잘못된 부분은 잘못되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현실에 입각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정 작가는 이야기의 폭을 넓히는 작가가 목표라고 합니다. 한국의 소설들이 개인의 내면 서사에만 집중하는 점이 아쉽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세계로 깊게 침잠하는 이야기도 소설의 재미지만 소설이 독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건 가시적 현실을 이야기로 풀어낸 이른바 ‘사회파’ 작가들의 힘이 컸던 덕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통해 세상을 봤던 정 작가의 작가적 신념이기도 합니다.
정 작가는 마흔 초입에 월급을 받는 기자에서 일종의 자영업자인 소설가로 삶의 행로를 바꿨습니다. 두 가지 다 병행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궁금했습니다.
정 작가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기자라는 직종이 가진 고뇌가 있었다고 합니다. 기자 이전의 언론사라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감내해 할 무엇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서로 애써 더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 술잔을 기울인 뒤 정 작가는 강조했습니다. 세상의 보이는 기준에 맞춘 삶에 예속되면 결국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일종의 허상 같은 삶 속에서 살다가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는 작가님처럼 어떤 예술적 재능이 있어야만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닌가? 되물어 봤습니다.
"제가 글 쓰는 재능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처음 도화촌 기행으로 등단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름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정작 원고 청탁은 오지 않았고 작가로서의 어떤 자부심은 갈수록 약해지더라구요. 작가분들 가운데 타고난 글쟁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꾸준히 계속 글을 썼기 때문에 작가가 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작가가 된다고해서 또 그 자체로 끝은 아니죠. 정말 기사 쓰듯 꾸준히 남들이 보든 안 보든 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만약 계속 신문사에 있었다면 그게 가능했을가요?"
그리고 이렇게 한마디 더했습니다.
"바깥은 지옥이라는데 저는 오히려 왜 빨리 나오지 않았나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회사 바깥은 나를 보호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보니 분명 거칠고 힘든 게 맞습니다. 그런데 바깥을 겪어보지 않으면 내가 어떤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고 평생 살 수도 있거든요. 물론 결혼하신 분들은 부부가 바깥에서 살자는 결의를 같이 하셔야 가능하긴 합니다. 그래서 안주잡설을 읽어보시면 제가 결혼을 잘..."
정 작가의 말을 끊고 2차를 가자는 말은 이때 나왔습니다.
■정진영 작가
1981년 대전에서 태어나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고시를 준비하다가 진로를 바꿔 기자가 되었습니다. 기자를 하면서 편집부와 사회부, 산업부와 문화부 등을 거쳤습니다. 2008년 장편소설 <발렌타인데이>로 한양대 학보 문예상 대상, 2011년 장편소설 <도화촌 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았고 2018년 세 번째 장편소설 <침묵주의보>를 썼습니다. <침묵주의보>는 백호 임제문학상을 받았고 JTBC 금토 드라마 <허쉬>로 제작됐습니다. 이후 <젠가>, <다시 밸런타인데이>,<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출간했습니다. 오래전에 작곡한 연주곡을 모아 2014년 ‘육지거북’이라는 이름으로 앨범 <오래된 소품>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