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찬 심리상담사ㅣJTBC 드라마 <나쁜 엄마>(연출:심나연/극본:배세영/출연:라미란, 이도현, 안은진, 유인수, 최무성, 정웅인, 홍비라 등)는 임신을 하자마자 남편이 죽고 태어난 자식을 위해서 악착같은 삶을 선택한 엄마인 영순(라미란 분)과 아들 강호(이도현 분)의 이야기다.
엄마인 영순은 사교육도 없는 산골 마을에서 아들 강호를 서울대 법대에 보내고 법관을 만들기 위해서 '나쁜 엄마'가 된다. 그리고 검사가 된 후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강호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다시 한번 '나쁜 엄마'가 된다. 그런데 영순의 삶을 보면 전혀 나쁘지 않은 나쁜 엄마다.
영순(라미란 분)은 아들 강호(이도현 분)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희생했던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을 보여준다. 자식을 위한 엄마의 절대적인 희생이 미덕이었던 과거의 어머니상이다. MZ세대가 경험하고 MZ세대가 양육을 하는 현재의 어머니상과는 다르다. 그런데 현재의 어머니상과 과거의 어머니상이 사뭇 다르기는 하지만 둘 다 '나쁜 엄마'인 것은 비슷해 보인다. 자녀의 학업 성취에 대한 기대가 높고 통제하는 것이 비슷하다. 심리상담학적으로 아이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억압하면서 통제하는 양육 태도는 나쁘다.
과거의 어머니는 자녀가 성공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 현재의 어머니는 자녀가 행복하게 살려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교육비를 서슴지 않고 지출한다. 이것 또한 엄마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는 돈을 자녀를 위해서 쓰는 것이니 희생이다. 과거나 현재나 엄마의 희생으로 자녀의 성공을 기대한다. 특히, 일류 대학 입학이 그 성공의 기준이다.
다만, 과거에는 엄마의 희생으로 자녀의 성공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엄마의 희생으로 자녀의 성공이 어렵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서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졌다고 한다. 여기에 MZ세대의 어려움이 있다. 의대에 갈 정도로 학업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면 말이다.
<나쁜 엄마>의 프로그램 정보를 보면 “엄마에게 받았던 그 사랑을 떠올린다면 이 힘든 시대의 초라한 점 같이 느껴지는 지금의 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가치 있는 사람이었는지 기억하게 될 것이다”라는 글이 있다. 심리상담사로서 이런 말을 참 좋아한다. 심리상담학 이론서에 나오듯이 엄마의 사랑은 아이의 심리 즉, 마음의 힘을 키워준다. 엄마의 사랑으로 아이는 자신이 사랑스럽고 가치 있다는 튼튼한 심리적 기반인 자존감을 형성한다.
그런데 상담실에서 마음이 고통스러운 MZ세대를 만나다 보면 이러한 엄마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기대한 학업 성취를 이루지 못했던 안 좋은 기억만 가진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삶이 엄마가 지출한 사교육비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어서도 그렇다.
우리는 누구든지 엄마라는 존재가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실재하는 엄마가 없더라도 엄마라는 존재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분명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형의 존재가 엄마라는 매개를 통해서 유형의 존재인 ‘나’가 되는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더라도 새로운 생명의 존재는 여성의 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고 진리이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생물학적인 엄마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몸을 향해서 ‘엄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엄마에게 수식어들을 붙인다. 좋은 또는 나쁜 엄마로 말이다. 그런데 엄마를 이분법적으로 좋다 또는 나쁘다로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모든 인간관계를 통틀어서 가장 깊은 정서 경험을 하게 한다. 그래서 아이가 경험하고 느끼는 정서적인 엄마가 만들어진다. 생물학적인 엄마는 이미 존재하는데 정저석인 엄마는 아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 하면서 긍정적 감정을 많이 느끼면 좋은 엄마가 된다. 반대로 아이가 부정적 감정을 많이 느끼면 나쁜 엄마가 된다. 아이가 엄마에게 정서적 친밀감을 안정적으로 많이 느낄수록 좋은 엄마다.
드라마 <나쁜 엄마>에 나오는 진영순(라미란 분)은 심리상담학적으로 보았을 때 분명히 나쁜 엄마이다. 한국 사회의 입시 현실을 보여 준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나쁜 엄마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나쁜 엄마들은 자녀의 성적을 위해서 지나치게 통제하고 공부만 시킨다. 그러면서 자녀의 욕구는 철저하게 무시하고 억압한다.
최강호(이도현 분)가 야구를 좋아했지만 TV로 야구 경기를 보거나 친구들과 야구를 하지도 못했다. 강호는 아동·청소년기에 오로지 엄마의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공부만 해야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거 아닌가. 그런데 인간의 심리는 그렇지가 않다.
최강호(이도현 분)가 엄마와 관계를 끊는 모습을 보면 엄마에게 화가 난 성인 자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이후에 강호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일부러 한 것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성인 자녀의 상처가 매우 오래간다. 만약에 MZ세대가 자기 자신이 못마땅하고 자신의 삶이 못마땅해서 우울하다면 깊이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혹시 엄마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인지 말이다.
심리상담사로서 엄마들을 만나보면 자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는 엄마들은 거의 없었다. 다만, 엄마로서 자녀 양육에 서툴렀을 뿐이다. 그리고 엄마의 서툰 부분을 채워 줄 드라마 <나쁜 엄마>의 조우리 같은 마을 사람들이 없었을 뿐이다. 어린 아이의 마음과 어른의 마음은 다르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아이는 미성숙하다고 하고 어른은 성숙하다고 한다.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엄마에게 더 크게 상처받았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성인의 마음으로 엄마에 대한 기억의 퍼즐을 다시 맞추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 최옥찬 심리상담사는
‘그 사람 참 못 됐다’라는 평가와 비난보다는 ‘그 사람 참 안 됐다’라는 이해와 공감을 직업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내 마음이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받다보니 힐링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드라마와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 소비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