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금융당국이 22일 발표한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은 과거 금융회사 사고에 대한 향후 예방책이면서 당시 아쉬움과 한계에 기반한 일종의 자기성찰적 '백서'로 다가옵니다.
개선안의 여러 가지 중 핵심은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 도입입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function)별로 책무(responsibility)를 배분한 내역을 기재한 문서'라고 정의합니다.
책무는 금융사의 법령준수, 건전경영, 소비자보호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업무분야별 내부통제 책임을 의미합니다.
책무구조도에 기재된 임원은 자신의 책임범위 내에서 내부통제가 적절히 이뤄질 수 있도록 내부통제기준의 적정성, 임직원의 기준 준수여부, 기준의 작동여부 등을 상시점검하는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특히 대표이사는 내부통제 총괄책임자로서 전사적 내부통제체계를 구축하고 각 임원의 통제활동을 감독하는 총괄관리의무가 부여됩니다.
금융위원회는 제도개선안 발표에 앞서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백브리핑에서 “금번 제도개선의 핵심은 임원제재에 있다기보다는 임원이 스스로 내부통제를 더욱 충실히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금융당국의 획일적인 규율이 아닌 금융사가 스스로 각자의 특성과 경영여건 변화에 맞는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하는 동시에 임원 개개인의 책임을 명확히 정함으로써 내부통제에 대한 임원들의 관심과 책임감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금융당국은 최근 수년간 벌어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사태,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 디스커버리·옵티머스 등 펀드 불완전판매와 함께 잊을만하면 터지는 금융사고와 이에 따른 일련의 사후 재판 과정에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일련의 사고를 두고 금융당국은 법에서 정한대로 해당은행 등 금융사에 제재조처를 취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기 때문입니다.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은 24조(내부통제기준)에서 '금융회사는 법령을 준수하고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금융회사의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절차(내부통제기준)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치열한 법리다툼이 벌어지는 법적 쟁송에서 법원은 "현행법상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가 아닌 '준수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금융사나 임직원을 제재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판단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것으로 하급심도 아닌 대법원에서 이같은 판례가 나오면서 주무행정청인 금융당국으로서 영이 서지 않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번 내부개선안처럼 미비한 내부통제 규율을 명확히 해야 할 절박함을 갖게 된 배경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업권의 가장 큰 우려는 우리 당국의 제도개선안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가는 게 아니냐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평소에 '상당한주의'를 다해 내부통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임원은 금융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받을 수 있다는데 방점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금융위는 이번 제도개선 방안 발표 이후 공청회와 업권별 설명회를 열어 업계 의견을 수렴한 뒤 속도감 있게 입법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1단계로 은행이나 금융지주는 법 공포 1년 후 시행하는 등 충분한 준비기간을 주고 업권별로 적용시점을 달리할 예정입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고객의 정당한 이익보호나 위험관리 노력은 뒷전으로 미루고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조직문화, 그러한 방식의 영업을 하는 직원들이 인사나 보수에서 대우받는 조직문화를 바꾸지 않고는 금융산업에 대한 국민 신뢰확보와 사고방지 노력이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가장 중요한 건 형식적인 제도 변화가 아니라 조직 전체 구성원의 인식과 가치관을 바꿈으로써 실질적인 행태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라며 "이번 제도개선 취지를 감안해 '정직한 영업'에 대한 최고경영진 의지를 직원들이 공감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수익률 0.01%라도 올리고자 이른바 목숨을 거는 기업들에게 '정직한 영업'을 강조한 정부 개선안에 담긴 메시지가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지 아직 미지수입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대형 금융사고 이면에는 기업 내부 통제규율이 없어서 생겼다기보다 소위 정치권의 청탁이나 압력이 작용했거나 금융정책의 헛점을 노리고 발생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익성을 앞세우는 기업을 질타하는 금융당국의 지적이 보다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정부 내에서도원칙이 확고해야 합니다. 정부 역시 '효율성'만 강조하며 정부의 가장 큰 가치인 '공공성'을 놓치고 있는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문해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