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보험계약의 성립은 보험계약자의 청약과 보험회사의 승낙으로 이루어진다. 보험사는 인수하고자 하는 위험 대상(피보험자)의 위험 정도에 따라 승낙을 거절하거나 보험의 가입 금액을 제한할 수 있고, 보장의 제한 및 보험료를 삭감 또는 할증을 할 수 있다.
특히 보험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상품이라 일반적인 제조 상품에 비해 계약자와 보험사 간에 주고받는 정보의 내용과 양이 대칭적이지 않을 수 있고, 한 번 체결한 후에는 장기간에 걸친 계약이라는 특징이 있어 다른 상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중함이 더 요구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보험은 계약 체결 후에도 본인이 청약한 계약에 대해 철회할 수 있는 청약 철회 기간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청약 철회 기간을 장기화하는 것은 계약의 안정성과 신뢰에 반할 수 있으므로 약관을 통해 그 기간을 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청약 철회 가능 기간은 보험증권(보험 가입증서)을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로 정해져 있지만 청약일로부터 30일을 초과한 경우는 청약 철회가 불가능하다. 또한 진단을 통한 계약이나 전문보험 계약자(국가, 한국은행, 지방자치단체, 금융기관 등)이 체결한 계약, 보험기간이 1년 미만인 계약도 청약 철회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청약 철회와 계약 해지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 청약 철회는 말 그대로 보험계약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철회 시 회사는 청약 철회 접수일로부터 3일 이내에 기납입 보험료를 계약자에게 반환해야 하며, 부득이한 이유로 반환 지연이 발생한 경우에는 기납입 보험료에 보험계약 대출이자를 연 단위 복리로 계산한 금액을 더해 지급해야만 한다.
신용카드로 초회 보험료를 납부한 계약의 철회는 반환이 지연되어도 매출만 취소되고 이자는 지급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계약자가 보험계약을 청약 철회 가능 기간이 지난 시점에 해지하면 보험료가 반환되는 것이 아닌, 해지 시점에 남아있는 해지환급금을 받게 되고 해지 시기에 따라 다르나 해지환급금이 거의 없거나 원금에 도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청약 철회와 계약 해지를 요청하고자 할 때는 이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청약 철회 신청 후 보험료 반환 전에 발생한 보험사고는 어떻게 될까?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할까? 답은 ‘아니오’다. 보험료 반환 전이라도 보장은 하지 않는다. 다만, 청약 철회 당시 이미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하였으나 계약자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경우 청약 철회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보장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
청약 철회가 계약자의 상황이나 의지에 의한 것이라면, 청약 거절은 보험사가 보험의 위험 대상(피보험자)에 대해 해당 보험의 인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인수를 거부하는 것으로, 무진단 계약의 경우 청약일로부터 30일 이내, 진단 계약의 경우 진단일로부터 30일 이내에 거절할 수 있다. 30일 이내에 거절을 통지하지 않았다면 보험계약을 승낙한 것으로 간주한다. 만일 초회 보험료를 이미 수납한 후 청약을 거절할 때는 거절 통지와 함께 이미 받은 보험료를 돌려주는데 이때 보험료를 받은 기간에 대해 평균 공시이율에 1%를 더한 금액을 연단위 복리로 계산해 반환한다.
최근에는 스마트 기기의 발전으로 과거와 같이 종이 청약서를 통한 계약은 거의 드문 일이 되어 대부분 태블릿 기기나 모바일을 통한 전자 청약으로 진행된다. 약관이나 청약서 부본 및 증권 또한 계약자 명의의 모바일 기기로 발송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그러므로 계약자 및 청약을 진행하는 설계사는 이 부분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다.
보험증권의 경우 모바일로 받았어도 열람 기간이 만료되었거나 과거에 받아둔 종이 증권을 분실했다면 본이 확인을 통해 언제든 재발행이 가능하다. 약관은 그 내용이 방대하고 보험사에서는 지속적으로 상품의 개정 및 절판이 반복되기 때문에 약관은 해당 보험사의 공시실을 통해 현재 판매 중지된 상품이라 할지라도 언제든 열람이 가능하다.
청약 철회 제도는 해당 보험 상품에 대해 가입 여부가 고민되는 경우 시간을 벌 수 있는 유용한 제도지만, 이를 악용하면 보험사 및 보험계약자, 해당 계약을 진행한 설계사 사이의 신뢰가 무너져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실제로 청약 철회가 수차례 거듭해 반복되는 경우 보험사는 해당 고객에 대한 청약을 제한할 수 있다.
보험 상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상품이지만 정해진 요식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상호 계약으로, 한쪽의 의지만으로 성립되지 않으며 청약 철회가 계약자의 권리이듯, 청약 거절은 보험사의 권리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보험계약은 그 바탕에 소통과 신뢰를 주단처럼 두툼하게 깔아야 청약 과정에서 그 어느 쪽도 상처받지 않은 상태로 장기 유지가 가능하다.
짝사랑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다른 누군가를 남몰래 흠모하는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짝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 생각한다. 사랑은 서로가 같은 마음이어야 진짜가 된다. 보험도 사랑의 행로와 비슷하다고 본다. 사랑은 하루 이틀 가볍게 사귀려고 가지는 만남이 아니며, 일방의 의지만로는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그렇기에 그 과정에서 상호 믿음은 매우 중요하다. 청약 철회나 청약 거절이 나를 보호하기 위한 권리가 될 수는 있어도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오랜 만남 후 상대를 향한 설렘이나 흥분은 잦아들지 몰라도 믿음의 밀도는 촘촘해지기 마련이다. 보험 또한 장기간 유지하는 동안 어려움도 있고 유혹에 시달리기도 하겠지만 청약을 진행할 당시 철회나 거절이라는 장애 없이 무사히 인수된 계약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 사람에는 분명 존재한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비단 침대 매트리스만의 미덕은 아니다. 보험 역시 계약 기간 동안 그런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다가가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사무실 문을 밀고 외근에 나선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