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박경보 기자ㅣ지금으로부터 4년 전, 르노삼성자동차가 출시한 SM6는 국내 중형 세단 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국산차가 맞나 싶을 정도의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편의사양까지.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정확히 꿰뚫은 SM6는 기존 쏘나타와 K5를 위협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초기형 SM6에 적용된 LED 방향지시등과 퀼팅 나파가죽 시트, R-MDPS 조향 시스템 등은 동급 최초로 적용된 고급옵션들이었는데요. 여기에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멋진 디자인까지 더해지면서 단숨에 르노삼성의 기둥으로 자리잡았죠.
하지만 기쁨도 잠시, SM6에 대한 호평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후륜에 멀티링크가 아닌 토션빔 서스펜션을 적용한 탓에 주행감성과 승차감을 모두 놓쳤기 때문인데요. 토션빔은 저렴하고 공간을 덜 차지하기 때문에 소형차급에 주로 쓰입니다.
좌우 차륜을 하나로 연결한 토션빔 서스펜션은 멀티링크 방식보다 승차감이 떨어지고, 오버스티어 현상도 자주 발생하는데요. 소형차가 주력인 르노는 멀티링크 서스펜션이 들어갈 만한 섀시가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참고로 중형 SUV인 QM6는 르노가 아닌 닛산 로그가 기반이라 멀티링크가 들어갑니다.
게다가 SM6에 적용된 2.0ℓ 가솔린 엔진은 심장병(부족한 가속성능)을 호소했고, 야심차게 선보인 S-링크는 부족한 직관성이 문제가 됐는데요. 최근엔 차로유지보조 기능의 부재까지 더해지면서 예쁘기만 한 ‘패션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더 뉴 SM6는 작정한 듯 이 같은 약점을 모두 지워버렸습니다. 시장의 니즈와 고객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반영한 결과인데요. 최대 장점이었던 디자인은 그대로 살리면서 내실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둔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입니다. 외모만 보면 “바뀌긴 한건가” 싶지만, 실제로 타보니 완전히 다른 차가 됐습니다.
르노삼성이 더 뉴 SM6를 언론에 발표하기 위해 택한 장소는 다름 아닌 인제스피디움. 서킷에서 ‘환골탈태’한 SM6를 직접 경험해보라는 일종의 자신감일 겁니다. 서킷은 차량의 코너링 성능과 가속성능을 테스트하기에 딱인 곳이죠.
◇ 완성도 높았던 외관은 디테일만 수정…힘준 곳은 ‘램프’
일단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니 외관부터 보겠습니다. 앞서 수차례 언급했던 SM6의 최대 장점은 누가 뭐래도 ‘디자인’인데요. 르노삼성은 잘생긴 SM6의 외모에 굳이 칼을 대지 않았습니다. 대신 앞뒤 램프의 디테일을 좀 더 세련된 모습으로 다듬었습니다. 개인적으론 4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산 중형세단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외관입니다.
특히 헤드램프의 디자인은 겉으로 보기엔 똑같아 보이지만 성능은 크게 진일보했습니다. 신형 SM6에는 일부 대형세단과 마세라티 등 고급 수입차에만 적용된 ‘LED 매트릭스 비전’이 동급 최초로 적용됐는데요. 마주오는 차나 앞차를 신경쓰지 않고 상향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이 핵심입니다.
SM6는 국산차 가운데 가장 많은 좌·우 각 18개, 총 36개의 LED 램프를 매트릭스 방식으로 다중 제어하는데요. 전방 카메라가 주행환경을 인식해 총 30개의 영역으로 나눠진 상향등 각도를 각 영역별로 정교하게 제어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주변 차량에는 하향등이 비춰지고 나머지 시야는 상향등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죠.
리어램프도 생각보다 변화의 폭이 큽니다. 큰 틀에선 비슷하지만 미등과 브레이크등의 형상이 바뀌었고, LED 방향지시등도 다이내믹하게 움직입니다. 일부 수입차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옵션을 국산 중형세단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겁니다.
◇ 직관성 개선에 집중한 실내…드디어 S-링크 버렸다
이제 실내로 들어가 볼까요. 실내 변화의 핵심을 꼽으라면 풀컬러 계기판과 티맵이 지원되는 9.3인치 중앙 디스플레이, 그리고 물리버튼이 적용된 공조장치입니다. 신형 SM6엔 앞서 XM3, 캡처에서 만났던 컬러 계기판이 고스란히 들어갔는데요. 다양한 주행정보를 화려한 그래픽으로 표출하는 것은 물론, 내비게이션 지도까지 볼 수 있습니다.
직관성이 매우 떨어져 불편했던 중앙 디스플레이는 S-링크 대신 ‘이지 커넥트’라는 이름을 새로 달았습니다. 이름에서 볼 수 있는 듯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개선한 것이 특징인데요. 더 이상 스마트폰을 따로 거치하지 않아도 티맵을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점도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다만 르노 캡처처럼 플로팅 디자인으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운전 중에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려면 시야를 다소 밑으로 내려야 하는데요. HUD를 옵션으로 추가할 수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페이스리프트이다 보니 최근 신차들의 경향을 완전히 따라가진 못했습니다.
특히 화면에서 조작해야 했던 공조 시스템은 물리버튼이 따로 떨어져나와 매우 편해졌습니다. 더이상 운전하면서 손을 더듬거리지 않아도 될 만큼 직관화에 성공한 모습인데요. 확연히 용량이 커진 컵홀더와 확대 적용된 앰비언트 라이트도 소소한 변화입니다.
◇ 1.3ℓ 가솔린 터보, 가속력·정숙성·승차감·연비 ‘기대 이상’
이번 시승 프로그램은 총 세 가지로 나눠졌는데요. 공도 주행, 서킷 주행, 그리고 슬라럼 테스트입니다. 가장 먼저 시승한 차는 공도시승에 투입된 1.3ℓ 가솔린 터보(TCe 260) 모델. SM6에 적용된 엔진은 XM3·캡처와 공유하지만, 최대토크(156마력)는 4마력이 더 높습니다. 최대 토크는 전작 대비 29%나 향상된 26.5kg·m를 확보했죠.
강원도 인제의 시내와 국도 일대를 두루 주행하면서 느낀 점은 전작 대비 몸놀림이 굉장히 경쾌해졌다는 점입니다. 더 뉴 SM6는 가속성능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을 반영해 신형 터보엔진을 새롭게 탑재했는데요. 특히 낮은 배기량에도 4기통을 유지하고 있다 보니 가속과 추월 시에도 여유롭게 차체를 이끌어 줬습니다.
차체는 중형급으로 휠씬 커졌지만 동력성능은 XM3에서 느꼈던 경쾌함 그대로였는데요. 이 정도로라면 기존의 ‘심장병’이라는 놀림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평범한 운전자라면 1.8ℓ 터보모델을 굳이 선택할 필요가 없을 정도.
특히 SM6의 최대 약점으로 꼽혔던 승차감도 상당히 개선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실, SM6는 이번 페이스리프트에도 토션빔은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설계상 멀티링크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인데, 대용량 하이드로 부시(Hydro Bush)를 적용하는 방법으로 승차감 향상을 꾀했습니다.
르노삼성은 SM6의 서스펜션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후륜은 물론 전륜에도 모듈러 밸브 시스템을 적용했다고 하는데요. 전작과 비교하면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의 충격과 노면진동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2열에 타보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지만, 운전석에선 ‘진화’를 단 번에 느낄 수 있었죠.
일반적인 중형세단 운전자들이라면 스포티한 주행보다 정속 주행 비중이 높을 텐데요. 과속으로 코너를 돌거나 노면 상태가 나쁜 곳만 아니라면 SM6의 서스펜션이 토션빔인지 알아차리기 힘들 겁니다. 그렇다고 멀티링크를 적용한 동급모델들을 능가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토션빔이 낼 수 있는 능력치를 최대한 이끌어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노면을 읽어들이는 건 토션빔의 숙명일테니까요.
또 하나 놀랐던 건 고급 대형세단 부럽지 않은 정숙성입니다. SM6는 앞서 시승해본 쏘나타나 K5와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매우’ 조용했습니다. 르노삼성에 따르면 신형 SM6의 엔진룸, 대시보드, 도어 등 곳곳에 흠읍재가 보강됐다고 하는데요. 고속에서도 A필러 부근의 풍절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던 것이 압권입니다.
SM6 1.8ℓ 터보모델엔 엔진 소음을 마이크로 측정해 스피커로 반대 위상의 음파를 내보내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ANC)도 적용돼 있는데요. 덕분에 엔진음 유입이 크게 줄었지만, 상대적으로 노면 소음이 부각되는 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면소음마저도 경쟁차종보다 휠씬 잘 잡은 느낌입니다.
SM6 1.3ℓ 가솔린 터보모델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연비’였습니다. SM6의 엔진은 고효율을 내는 습식 7단 DCT와 맞물려 있는데요. 특히 1.3ℓ 모델은 엔진 크기도 상대적으로 작다보니 그만큼 연료 소비도 많지 않습니다. SM6는 국산 가솔린 세단 중 최고 수준인 13.6 km/ℓ의 복합연비를 달성했고, 이번 공도시승에서도 이와 비슷한 평균연비를 보여줬습니다.
또 K5 등 경쟁차종과 달리 하위트림인 1.3ℓ모델에도 R-MDPS 방식의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이 적용돼 있는 것도 장점으로 보여집니다. 저가형인 C-MDPS 방식에 비해 직결감이 뛰어나고 부드러운 조향이 가능한데요. 덕분에 이번 시승에서도 정교한 핸들링 감각을 보여줬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번에 새롭게 적용된 차로유지보조 기능입니다. 신형 SM6는 정차 및 재출발이 가능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로유지보조 기능을 새롭게 탑재했는데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능은 나쁘지 않았지만, 차선의 중앙을 인식하는 능력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도로 환경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만, 한쪽으로 치우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거든요.
◇ 서킷 달린 1.8ℓ 가솔린 터보, 파워풀한 가속성능 일품
공도 시승을 마친 후에는 곧장 TCe300 모델로 갈아타고 서킷에 올랐습니다. 1.8ℓ 가솔린 터보엔진을 얹은 SM6는 최고출력 225마력, 최대토크 30.6kg·m의 힘을 뿜어내는데요. 이 엔진은 르노의 스포츠카 브랜드 알피느(Alpine), 유럽에서 i30 N과 경쟁하는 고성능차 ‘메간 RS’에도 적용됩니다.
물론 SM6의 파워트레인은 안락함을 추구하는 패밀리 세단에 적합하도록 세팅돼 있는데요. 날렵하게 질주하는 고성능차들과 심장을 공유하는 만큼, SM6도 서킷에 오를 자격은 충분한 셈입니다.
서킷 주행에 앞서 가장 먼저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꿨습니다. 그러자 웅웅거리는 다이내믹한 엔진음이 귀에 들려왔는데요. 비록 스피커로 내보내는 인공적인 소리이지만, 운전의 재미를 한껏 끌어올려 주기엔 충분했습니다. 실제 주행 시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쏘나타는 아예 없고 K5도 1.6터보에만 적용돼 있는 기능입니다.
스포츠모드를 활성화한 SM6는 서킷 위에서 강렬한 엔진음을 내뿜으며 질주했습니다. 터보엔진임에도 엑셀레이터 반응속도가 상당히 빨랐던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가속페달에 힘을 줄 때마다 툭툭 치고 나갔는데, 평범한 패밀리 세단임을 잊게할 정도로 운전의 재미가 느껴졌습니다.
특히 인제스피디움은 코스 길이는 평범하지만 고저차가 크다보니 최상급의 난이도를 자랑하는데요. SM6는 컴포트 타이어인 금호 마제스티9을 쓰고 있는데도 내리막 코너를 공략할 때 차체의 안정감을 잃지 않았습니다. 고속으로 코너를 돌아나갈 때 롤링과 피칭이 상당히 억제된 느낌.
다만 코너링 시 차량의 뒷쪽, 즉 토션빔이 적용된 후륜은 한 박자 늦게 따라오는 모습이었습니다. 공도주행에선 거의 느낄 수 없었지만 서킷에선 언더스티어 현상도 부각됐는데요. 종합해보면 R-MDPS 방식의 전륜 조향 시스템이 토션빔 서스펜션의 한계를 어느 정도 보완한 듯한 주행 감각입니다.
◇ 총평
르노삼성은 신형 SM6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해 철저히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했습니다. 최대 단점으로 지적됐던 후륜 서스펜션을 크게 보완했고, 직관성이 떨어졌던 공조장치도 개선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첨단 운전자보조 시스템(ADAS)도 경쟁차종 수준까지 따라왔죠. 무엇보다 새로운 터보엔진을 두 종이나 적용하면서 ‘심장병’ 우려를 멀리 날려보냈습니다.
여기에다 경쟁모델 대비 우위에 있었던 디자인도 더욱 우아한 모습으로 다듬어졌는데요. R-MDPS, LED 매트릭스 헤드램프, 실시간 길안내가 가능한 티맵 내비게이션 등 고급사양들도 SM6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겁니다. 동급 최고 수준의 연료 효율과 정숙성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죠.
약점을 지우고 장점을 키운 SM6는 상품성 면에서 동급 최고 수준으로 평가해도 좋을 듯합니다. 물론 토션빔의 한계를 완전히 넘어서진 못했지만, 승차감 면에선 확실하게 개선된 모습입니다. 문제는 시장에 깊게 박힌 부정적인 선입견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일 텐데요. 달라진 SM6의 진가가 제대로 알려진다면 4년 전 영광 재현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