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주동일 기자ㅣ “이런 거 말고 공부를 가르쳐 주세요.”
심리상담사 최옥찬(46) 씨가 교육 분야에서 일할 때 종종 들었던 말이다. 열심히 예술교육 콘텐츠를 기획해서 제공했지만, 지원받은 저소득층 가정의 반응은 ‘차라리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교육보다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찾은 길은 심리상담. 최씨는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청소년들과 아동들을 만날 기회를 넓히는 데 학원만큼 좋은 곳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학(고려대학교)에서 어학을 전공했던 최 씨가, 심리상담사가 되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무의식중에 피해왔던 심리적인 상처들을 모두 직면하고 치유해야만 타인을 상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마치 구도자의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결국 심리상담사가 된 그의 주특기는 교육과 상담. 그는 학업과 인성을 균형 있게 갖춘 교육이 성공적인 입시와 아이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정답 없는 입시 균형이 답이다’라는 책까지 써냈다. 그를 만나 상담사가 되는 과정과 자녀교육에 대해 들어봤다.
◇ 직업 바꾸게 만든 ‘이런 거 말고’ 한 마디
- 상담사가 된 과정이 궁금하다.
“전문성을 갖고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예술교육 콘텐츠를 기획해 저소득층에게 전하는 일을 2년 정도 했다. 예술과 문화로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거 말고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말하는 학부모가 있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생각해보니 예술보다 직접적인 치유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상담 공부를 시작했다.”
- 저소득층 학부모의 말대로 교육을 하지 않은 이유는?
“조급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심리적으로 안정된 후에 학습해야 한다. 실제로 심리상태는 학습 효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공부를 못 하거나 안 하는 학생에게 비난이나 야단보다 세심한 관찰과 도움이 필요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 뒤늦게 시작한 공부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나.
“상담 공부를 시작하면서 학원을 같이 차렸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관심이 많았던 아동·청소년과 자주 접촉하기에도 좋았다. 지금은 학원을 정리한 상태다. 작년부터 새롬심리상담센터 원장을 맡고 있다.”
◇ “부모 역할 제쳐놓고 교육자 되려는 과욕 금물”
- 사교육과 상담을 해본 사람으로서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정답 없는 입시 균형이 답이다’를 퇴고할 때 스카이캐슬이 나왔다. 학부모들의 성격을 과장되게 그리긴 했지만, 실제 학부모들이 조금씩 가진 모습들이라고 생각했다. 그중 자식들에게 코치 역할을 해주던 노승혜(윤세아)가 엄마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실제로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을 믿고 지지해줄 엄마를 통해 안정감을 느껴야 한다.”
- 실제로 입시 전형이 복잡해지면서 불안해하는 부모들이 많을 것 같다.
“대치동 쪽에선 사교육을 통해 비교과 활동을 한다. 실제로 중학교 3학년 때 입시공부를 끝내고 고등학교에서 포트폴리오를 쌓는 학생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지치지 않으면서 적성을 찾는 법, 돈을 들이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쌓는 법 등을 책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작가로, 책 내용을 요약해서 말해준다면.
“부모는 먼저 엄마·아빠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걸 못하고 교육자나 코치 역할을 자처하는 부모들이 많다. 아이들이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매커니즘을 이해하면서 아이들에게 충분한 애착 관계를 쌓은 뒤 청소년기에 독립시켜줘야 한다.”
-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매커니즘이 뭔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적절한 시기는 중학생 때다. 그 전에 지나치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지치기 쉽다. 또 부모가 학습 코치 역할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아이들은 기대고 의지할 대상이 사라진다. 안정감을 느끼지 못 한 아이들이 진로를 찾거나 높은 학업 성취도를 내기 어렵다. 반대로 중학생 때에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 하면 성적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제때에 맞춰 인성과 학습 교육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 지나친 제재는 독...울타리 안에서 “괜찮아” 해줘야
- 인성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하나.
“부모가 아이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게 학교공부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인간관계를 가르치는 등 사회성을 키우는 일은 부모가 해줘야 한다.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강준상(정준호 역)은 고학력자이지만 외톨이에다가 삶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다.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 자녀들이 진로를 못 정해 답답하다는 부모가 많은데 이것도 인성교육 탓인가.
“부모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들은 이는 나이가 들었을 때 뭔가를 시도할 줄 안다. 그러지 못한 이들은 최선의 선택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내거나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압박을 받는다. 사실 어떤 일이든 직접 해봐야 자신과 잘 맞는지 알 수 있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내면화된 이들은 시도를 하지 못한다.”
- 부모 입장에서 어디까지 ‘괜찮다’고 허용해야 할지 정하기 어려운데.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거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허용해야 한다. 그 울타리 안에서 아이가 스스로 경험하면서 자기주도성을 쌓게 해야 한다. 아까와는 반대로 사회에서 허용하지 않는 범위까지 아이의 행동을 허락하는 부모도 있는데, 이건 자율이 아니라 일탈을 방치하는 거다. 이런 아이들은 품행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동시에 아이들은 불안해하면서 반대로 부모가 뭔가를 정해주길 바란다.”
◇ 피하고 싶은 자기 내면 봐야 하는 직업...그래도 뜻깊어
- 일하면서 힘든 때가 있다면.
“학위를 받은 후에도 계속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내면의 상처를 극복해야 상담사가 될 수 있다.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내담자를 만났을 때 방어기제로 문제를 회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담자의 감정이 내담자에게 전해지는 때도 있다. 실제로 같은 방법으로 상담을 해도 어떤 상담자가 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크게 차이나기도 한다.”
-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게 얼핏 듣기에 좋을 것 같은데.
“마주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마음이 아파서 못 다룰 정도로 큰 상처들이다. 이럴 땐 상담사들도 다른 상담사를 찾아가 상담받는다. 상담사가 된 후에도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자신의 심리적인 결핍이나 편협한 모습을 극복하면서 성장해야 한다. 재밌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이들도 많다.”
-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가?
“일정 단계를 넘어 전문가가 될수록 직업 만족도가 높아진다. 의사들은 눈에 보이는 상처를 치료한다. 그런데 마음은 아픈 부분을 정확히 찾기 힘들다. 부족한 게 많은 나를 찾아온 누군가가 상처를 찾아내고 치유하면서 행복을 찾는 걸 보면 희열이 크다. 사람을 사랑하고 의미 있는 삶을 쫓는 이들은 상담사가 되면서 겪는 어려움도 견딜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