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문정태 기자ㅣ “지금은 뭐하고 있냐는 질문을 들을 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라고 답하면 나 자신에게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왠지 모를 미안함, 그리고 아쉬움 같은 게 남아 있어서인가 봐요.”
90년대 후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크)’는 충격이었고 문화였다. 20대 대학생들은 물론 30~40대 직장인들까지 PC방으로 우르르 몰려가 배틀넷(여러 명이 게임을 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2:2, 3:3, 4:4’의 대전을 치르며 우의를 다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스타크는 방송사를 통해 중계가 되는 프로 스포츠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 ‘폭풍 저그’ 홍진호의 인기는 아이돌 스타에 버금갈 정도. 그리고, ‘스타크의 하일성’인 엄재경 해설자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여성 최초의 게임 캐스터’로 자리매김했던 최은지(여주대학교 교수) 씨다.
최 교수는 생김새와는 달리(?) 법대 출신이다. 법대를 택한 건 ‘조신한 신붓감’이 되기를 바라신 부모님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었다. 그러다 대학 4학년 때인 1997년에 자신이 원하던 길로 들어섰다. 울산 백화점에서 개최한 청바지 모델 경연대회에 나가 1등을 한 것이 인연이 돼 울산MBC에서 리포터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2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울산MBC에서 아침방송 MC자리까지 꿰찼다. 울산에서 가장 큰 문화행사인 ‘고래축제’의 메인 행사까지 진행한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울산에서 할 건 다했어. 나에겐 울산이 너무 좁아.’
수도권에 있는 경인방송(iTV)로 이직을 했고, 게임방송을 진행했다. ‘최초의 여성 게임캐스터’의 칭호를 부여받은 게 바로 이 때다. 당시, 본격적인 게임방송을 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으니, 사실상 ‘세계 최초의 여성 게임 캐스터’이기도 하다. 이후로 투니버스, 온게임넷, MBC게임 등의 채널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해 각종 게임방송을 진행하며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다.
“대학 졸업 전까지 오락실도 안 가봤어요. 방송 녹화를 하고, 게이머와 함께 고시공부하듯 게임을 배웠습니다. 여자가 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었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쪽잠을 자는 건 그나마 나은 편이었어요.”
늘 긴장하고 살았던 탓인지 6개월 후엔 악관절에 병을 얻었다. 입을 벌리지 못해 티스푼으로 밥을 먹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 상태에서도 방송을 계속해야 했다고. 몸이 힘든 건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지만, 악플러들에게서 상처를 받는 건 너무 힘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친구가 없었어요. 외지에 나 하나 딱 떨어져있는 상황에서 외로움이 컸습니다. 그런 와중에 시청자들 중에서 일부가 ‘게임을 못 하는 여자가 MC를 하네. 방송진행자를 바꿔라.’ 등의 말을 하는데, 상처를 많이 받았죠.”
그래도, 힘이 되는 건 사람이었다. “후배들에게 ‘저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제 롤모델이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열심히 해 왔나보다.’라고 생각했어요. 팬클럽 분들이 달아 주시는 응원댓글도 기운이 나게 하는 데 특효약이었지요. 하하.”
2008년. MBC게임의 해체와 함께 최 교수도 게임방송을 떠났다. 지금은 여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시간 강사가 아닌 전임 대우를 받고 있다. 꽤 긴 시간 동안 강단에 서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고 있지만, 스스로에겐 혹독하다.
“교수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는 만족해요. 스스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죠.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좀 미안해요. 아직 나는 많은 걸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인 듯해요.”
최 교수는 여전히 ‘꿈 많은 소녀’다. “영화, 드라마, 연극을 간간히 해 왔는데,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서 기획사와 협의를 하고 있는 상태에요. 꿈꿔왔던 것들은 늘 다 이뤄왔어요. 내 미래에 뭔가 정해져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호호”
다음은 최은지 교수와 일문 일답.
▲팬이었다. 게임방송을 하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얘기해 달라.
- 게임방송을 진행하는 부스는 정말 작다. 부스 안에 한 두 시간 동안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한다. 어느 날 남자 MC가 방송 중에 화장실을 가고 싶어 했는데, 가지 못 했다. 소리가 안 났지만, 냄새가 났다. 부스 안에는 창문도 없고, 냄새가 빠져나갈 아무 것도 없다. 너무 더운 날이었는데, 땀을 흘리면서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생방송 도중에 말도 못하고, 본인도 얼마나 미안했을까 싶다.
▲페이스북 활동을 열심히 하던데, 다소 민감해 보이는 사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타내더라. 좀 부담스럽지는 않나.
- 정치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인간(사)에 대한 관심을 가져졌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나 혼자 얼마나 잘 사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는데, 아이가 커가는 걸 보면서 이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할까. 긴 숟가락을 가지고 나만 떠먹으려고 아등바등 댈 것인가, 서로 떠먹여 주려고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답지 나오지 않을까?
▲이것저것 욕심이 참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 맞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과 연기를 하고 싶은 것 말고도 이것저것 관심이 많다.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해 공부를 하다보니 MBTI(성격심리테스트) 강사 자격증을 땄다. 검사를 해보면 사람들이 어떤 유형이라는 걸 안다.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고, 이해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 같다.
경제활동에 대해서도 관심을 키우고 있다. 해외 유명브랜드 패션의류와 소품을 저렴하게 판매 중인 카라샵(KARA SHOP)의 SNS 몰(mall)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강남 로데오거리에 문을 연 또 다른 숍의 홍보와 마케팅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보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어릴 때 부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보험과 관계된 사람은 다 사기꾼이야.” 하지만, 찾아보니 좋은 보험이 많더라. 건강보험, 암보험, 저축성보험, 개인연금보험, 변액보험 등 5~6개의 보험에 가입했다. 아무리 좋은 보험이라도, 판매하는 사람이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사기성 보험이 되는 것 같다. 다행히, 좋은 설계사분을 만나서 좋은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