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문정태 기자ㅣ #. 2년 전 사업을 시작한 민한기(가명) 씨는 매월 30만원씩 내야하는 종신보험이 부담스러웠다. 그가 가입한 보험은 6년 전에 지인의 부탁으로 가입했던 상품. 지인은 설계사를 시작한지 2년도 안 돼 그만뒀다. 바뀐 설계사로부터 전화를 한 번 받은 기억이 있지만, 그 후로 연락해 본 일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어 상담사와 얘기를 나눴다. 그가 들었던 말은 해약을 할 경우 납입한 돈의 절반 정도밖에 돌려받지 못 한다는 것. 보험료를 두 달 동안 내지 않으면 실효가 된다는 얘기도 더해졌다. “나중에라도 보험을 되살릴 수는 없나”하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없다”였다.
무언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해지환급금으로 낸 보험료의 절반 남짓을 받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한동안 이 일을 잊고 있었던 민 씨는 최근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실효가 된지 2년 안에 미납 보험료를 납부하면 보험을 되살릴 수 있다는 거였다.
그는 “설계사에게 몇 번씩이나 보험을 되살릴 수는 없느냐고 물어봤지만, 한결같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애초에 가입한 설계사(지인)에게 물어봤으면 이 같은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 봤음직한 사례다. 생명보험에 가입한 소비자 100명중 65명이, 손해보험에 가입한 소비자 100명중 60명이 애초에 가입한 설계사가 아닌 낯선 설계사에게 보험 관리를 맡겨야 한다. 이런 상황을 속칭 ‘고아계약’이 발생했다고 표현한다.
고아계약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입 설계사들의 퇴직 때문이다. 통상 신입 설계사들은 가족이나 친척, 친구 등 지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1년 안에 ‘밑천(지인수)’가 떨어지기 마련. 더 이상 보험을 판매하기 어려운 시기가 오면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게 된다.
보험사와 설계사는 월급을 주고받는 ‘고용계약 관계’가 아니다. 보험사들이 생활비 성격의 초기 정착비를 설계사들에게 지급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돈은 빌려주는 것이다. 결국, 설계사들이 보험을 판매하지 못 하면 한푼도 못 받게 된다. 퇴직할 경우에는 정착비 또한 갚아야 한다.
한 생보사 설계사는 “보험사 차원에서 신입 직원들이 새로운 계약을 발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하지만, 보험을 판매하고 못 하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는 문제여서 어려움을 겪는 설계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경력 설계사들의 ‘이직’ 또한 고아계약을 발생시키는 무시 못 할 요인이다. 한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최근 독립법인대리점(GA)이나 다른 보험사로 이동하는 설계사가 늘어나면서 고아계약 수가 급증하고 있다”며 “고아 계약은 보험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민원 발생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학영 의원이 지난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년 이내에 해촉된 설계사는 17만7505명(생보: 10만7497명, 손보:7만명)에 달한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해촉된 설계사가 모집한 보험계약은 생보가 219만2000여건(초회보험료 7653억원), 손보는 126만900여건(4277억원)에 이른다.
신입이든 경력이든 설계사들이 퇴직을 하면 가입자와 보험상품이 남는다. 보험 업계에서는 이런 보험을 통상 ‘관심 계약’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는 앞서 언급한 대로 ‘고아 계약’으로 칭한다.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기도 하고, 낳아준 부모로 볼 수 있는 담당 설계사가 떠나버린 상황을 빗댄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설계사들의 퇴직이나 이직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아계약 문제는 소비자는 물론 보험사에서도 골치가 아픈 문제”라며 “하지만, 해를 거듭해도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