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권지영 기자ㅣ #.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로 인해 아들을 잃은 A씨. 남편과 이혼 후 힘들게 식당일을 하면서 키운 아들이 사망하자 실의에 빠지게 됐다. 그러던 중 동부화재에 단체로 든 여행자보험에서 아들의 사망보험금 1억이 지급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아들의 사망보험금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전 남편이 친권행사를 하며 보험금의 절반인 5000만원을 요구한 것. 10여년 동안 연락도 없이 지내온 사람이 보험금을 내놓으라고 하는 통에 A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계약에서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지정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수익자 지정은 계약자가 보험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사망보험금을 누구에게 남길 지 결정하는 것으로 만약에 일어날 보험금 분쟁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부모가 이혼한 가정인 경우 보험금 분쟁의 소지가 더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1월 기준 우리나라 이혼율(혼인건수 대비 이혼건수)은 30%에 웃돌고 있다. 하지만, 수익자 지정을 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이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 인연끊긴 가족 "보험금 줘"..대비책은 '보험금 수익자 지정'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적절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험금을 타지 못하도록 '수익자 지정제'의 중요성에 대해 알렸다.
앞서 예로 든 것처럼 사망보험금 수익자가 지정되지 않아 사망한 단원고 학생의 보험금 중 일부가 이혼 후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아버지에게 지급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만약, 단체보험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수익자를 어머니로 지정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보험금 전액이 어머니에게 지급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따로 보험금 수익자 지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상속인에 따라 친권자인 아버지와 반반으로 나뉜 것이다.
보험금 관련 분쟁은 세월호 사건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난해 1월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건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부산외대 학생의 사망보험금이 키워준 조부모 대신 법적 상속 순위에 따라 양육책임을 지지 않은채 남남이나 다름없던 부모에게 지급됐다.
이같은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자 금감원은 세월호 사건 이후 보험사에 일제히 보험수익자 지정제도에 대해 알리기를 강조했다. 특히 설계사가 보험계약자에 수익자 지정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세월호 사태를 비롯해 경주 체육관 붕괴 사태 등 대형 사고가 터질때마다 법적으로만 부모였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보험금을 지급받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며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엉뚱한 사람에게 보험금이 지급되지 못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금 관련 분쟁을 막기 위한 또 다른 방법도 있다. 보험 가입 후 가족관계에 변화가 생긴 경우라면 '보험 수익자 변경권'을 활용해 수익자를 부모로 해놓은 계약을 아버지나 어머니 어느 한 쪽만 받을 수 있도록 변경하면 된다.
반면 보험 수익자를 지정하지 않았거나 편의에 따라서 법정상속으로 기재했을 경우, 민법상 사망보험금은 법정 상속인에게 지급된다. 법정 상속인은 직계비속과 배우자가 가장 우선이고, 직계존속(배우자 포함), 형제자매, 4촌 이내 방계혈족 등의 순이다.
만약 수익자를 자녀로 지정할 경우 미성년자 혹은 성인일 경우엔 차이가 있다. 미성년자인 자녀로 지정하면, 부모 중 한 명이 사망해 보험금을 받게 되면 친권에게 우선적으로 간다. 자녀가 성인일 경우면 보험금 전액이 자녀에게 지급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계약 과정에서 수익자 지정은 설계사와 계약자에 다소 번거로울 수 있지만, 나중에 보험금이 지급될 때 계약자를 투텁게 보호할 수 있는 장치다"면서 "설계사는 가급적 수익자 지정을 권유하고, 필요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지정하지 않을 경우 나중에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일어날 수 있는 보험금분쟁이나 못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 수익자 지정 "참 좋은데..현실에선 글쎄?"
수익자 지정의 취지는 좋지만 이를 적용하기에는 제반여건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보험계약에서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설계사들이 간과하기 일쑤고, 수익자를 직접 만나 사인까지 받아야 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주된 이유다.
일례로, 서울에 있는 계약자가 부산에 사는 수익자를 지정하면 사인받기 위해 지방엘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 생명보험사 설계사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수익자를 만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만약 수익자가 미국에 사는 경우라면 어떻게 되는건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보험사들은 수익자 지정 문제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는 눈치다. 제도에 대한 강제성이 없어서 굳이 설계사들에게 부담을 지울 필요가 없는 데다 수익자를 지정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가 흔치 않다는 논리다.
한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세월호 때문에 보험 수익자 지정이 강조됐지만, 그동안엔 법적 상속인으로 자동 지정돼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면서 "수익자 미지정으로 인한 분쟁이 100건의 계약 중 1~2건에 해당될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생보사의 한 설계사는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고객들은 보험금의 수익자를 지정하는 문제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며 "가족간에 보험금 분쟁을 막을 수 있는 '보험금 수익자 지정제'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