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김용운 기자ㅣ현대차의 첫 경형 SUV인 캐스퍼의 가격이 지난 14일 공개됐습니다. 기아차의 경차 모델인 레이와 비슷한 가격대에 나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캐스퍼의 가격은 기존 경차 모델들보다 높게 책정됐습니다.
캐스퍼는 가솔린 1.0 엔진이 기본이며 ▲스마트 1385만 원 ▲모던 1590만 원 ▲인스퍼레이션 1870만 원 등 총 3가지 트림으로 구성했습니다. 여기에 가솔린 1.0 터보 엔진을 얹은 터보 모델은 ‘캐스퍼 액티브’라는 선택 사양으로 판매합니다. ‘캐스퍼 액티브’는 모든 트림에서 선택할 수 있고 ▲스마트ㆍ모던 95만 원 ▲인스퍼레이션 90만 원이 추가됩니다.
따라서 캐스퍼의 인스퍼레이션 트림에 터보 엔진을 얹으면 1960만 원이 됩니다. 캐스퍼 인스퍼레이션 터보 1.0 모델에 선루프 등 옵션을 모두 추가할 경우 판매가는 2100만 원에 육박합니다.
캐스퍼보다 한 등급 윗 차량인 현대차의 베뉴(배기량 1600cc)의 스마트 트림(A/T) 가격이 1689만 원이고 경차인 레이는 1260만 원, 모닝은 1175만 원, 쉐보레의 스파크가 977만 원에서부터 기본 트림 가격대를 책정한 것과 비교해보면 캐스퍼의 가격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캐스퍼의 가격에 소비자와 업계의 관심이 유독 집중됐던 까닭은 캐스퍼의 생산 과정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캐스퍼는 현대차가 자사 공장에서 출시하는 차량이 아닙니다.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서 위탁생산하는 차량입니다.
GGM은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대신 일자리를 늘린다는 문재인 정부의 노사 상생형 일자리 정책에 따라 광주시와 현대차, 광주은행, 산업은행 등 34개 회사가 자본금을 출자해 2019년 설립했습니다.
이른바 국내 제1호 상생형 일자리 기업입니다. GGM은 20~30대 취준생을 신규 채용해 생산직 380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주 52시간을 일할 경우 평균 연봉은 3500만 원 수준입니다.
국내 자동차 가격의 상승 요인으로 지목 받았던 인건비 측면에서 GGM은 기존 자동차 회사와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캐스퍼는 현대차에서 처음으로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차량으로 낙점을 받았습니다.
소비자들은 캐스퍼의 외양이 공개됐을 때, 참신한 디자인에 호평하면서 가격에 대한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인건비를 비롯해 판관비용이 다른 차량보다 적게 든다면 자연히 차량 가격도 비싸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캐스퍼를 다룬 자동차 유튜버들의 유튜브 댓글 창에서는 소비자들은 캐스퍼의 가격이 800만 원 대부터 나올 수도 있다며 비싸더라도 레이 가격과 비슷할 것으로 전망하는 의견들이 대다수였습니다.
하지만 캐스퍼의 가격이 공개된 이후 소비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캐스퍼 보다 상위 모델인 베뉴의 가격을 싸게 느끼도록 해 베뉴의 판매량을 늘리겠다는 현대차의 ‘빅픽처’가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왔습니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캐스퍼에 적용한 신기술과 기본으로 정착한 옵션들이 많아 원가 상승의 요인이 있었다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캐스퍼는 ▲전방 충돌방지 보조 ▲차로 이탈방지 보조 ▲차로 유지 보조 ▲운전자 주의 경고 ▲하이빔 보조 ▲전방 차량 출발 알림 등을 경차 최초로 기본 적용했습니다.
앞좌석 센터에는 사이드 에어백을 기본으로 갖춰 차량 측면 충돌 시 운전석ㆍ동승석 승객 간의 충돌과 내장부품과의 충돌에 의한 상해 위험성을 줄였습니다. 경량화 공법인 핫스탬핑을 주요 부위에 집중적으로 적용해 충돌 시 차체가 틀어지는 현상을 최소화했습니다. 고강성 경량 차체를 구현해 비틀림 강성과 평균 인장 강도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에서의 여론을 보면 캐스퍼의 가격이 향후 판매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캐스퍼가 아무리 신차에다가 기본적인 옵션이 많이 적용됐다 하더라도 결국 100~200만 원에 민감한 경차 및 준중형 시장에서 베뉴 뺨치는 캐스퍼의 가격은 결코 유리한 조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캐스퍼는 아직 언론을 통한 시승기가 나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본격적인 출고 역시 오는 29일 이후 이뤄질 예정입니다. 현대차에 따르면 14일 시작한 캐스퍼 온라인 예약판매는 동시 온라인 접속자 70만명이 넘게 몰리며 서버가 일시 다운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는 상생형 일자리기업의 1호 제품인 캐스퍼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광클’을 통해 캐스퍼를 예약했다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습니다.
따라서 캐스퍼의 가격이 판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출고 시점 이후에나 판가름 날 것입니다. 하지만 2017년 1월 쉐보레가 의욕적으로 선보였던 준중형 모델 ‘올 뉴 크루즈’가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들의 이탈을 막지 못하고 단종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캐스퍼 또한 ‘가격’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현대차에 따르면 캐스퍼를 올 연말까지 1만 2000대가량 생산할 예정이며 내년에는 연 생산량을 7만 대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캐스퍼라는 차명은 스케이트보드를 뒤집어 착지하는 기술인 ‘캐스퍼(Casper)’에서 따왔습니다. 현대차는 새로운 차급, 기존 자동차의 고정관념을 바꾸고 싶은 의지를 담은 작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경차라면 저렴하다는 고정관념을 바꾼 캐스퍼가 과연 국내 시장에서 얼마나 파란을 일으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