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정석규 기자ㅣ하룻밤 사이 57조원 정도가 증발한 루나·테라 코인 사태로 가상자산에 관한 입법이 동력을 얻고 있습니다.
루나·테라 사태는 시가총액만 50조원이 넘어섰던 테라폼랩스 코인의 연쇄 급락 사건을 뜻합니다. 지난 10일 가상화폐의 가치 유지에 쓰이는 테라폼랩스의 '스테이블코인' 테라의 가격이 1달러 아래로 내려가면서 테라와 연동된 가상화폐 '루나'의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이후 전세계에서 일주일 사이 증발한 루나와 테라의 시가총액은 약 450억 달러(57조78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루나·테라 사태와 관련해 발행사 테라폼랩스와 암호화폐 거래소에 자료를 요구하거나 검사·감독이 불가한 상황입니다. 특정 암호화폐의 가격이 급등락하거나 거래소가 상장·상장폐지를 결정할 때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가상자산거래소에 관한 법적 규제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이 유일합니다. 다만 특금법은 가상자산거래소에게 '신고' 의무를 규정할 뿐, 가상자산 이용자에 대한 규정은 전무합니다. 또한 특금법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가상자산이 자금 세탁 수단으로 쓰일 때만 제재할 수 있습니다. 가격 급등락에 의한 투자자 피해를 막을 수단이 없는 것입니다.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가상자산 관련 법률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디지털 자산관리법 관련 제정안이 7개 상정돼있습니다.
이들 법률안은 가상자산의 진입규제와 투자자보호 등 핵심 사안을 규정하고 있으며, 현재 모두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입니다. 루나 테라 코인 사태로 계류 중인 규제법안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가상자산업 인가제VS등록제, 어떻게 제도권 안착시킬까
가산자산사업자를 제도권에 안착시키려면 우선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업체들에게만 시장 진입을 허용해 시장의 자본 건전성을 확보하는 '진입규제'가 필요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가제'와 '등록제'에서 보는 시각이 갈라집니다.
인가제·등록제 두 제도는 가상자산사업자의 거래소 진입장벽 설정 방식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인가제’는 가상자산사업자의 신청 접수 여부를 금융당국에서 결정하는 시스템입니다. 가상자산사업자가 신청서를 접수하면 금융당국은 신청서가 요건에 맞아도 다른 이유로 인가를 거부할 수 있으며, 인가를 할 때 사업자에게 이용자 보호에 필요한 조건을 붙일 수 있습니다.
인가제를 주장한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의 ‘가상자산업법안’에 따르면, 가상자산거래업자가 인가신청서를 금융위에 제출하고 금융위는 내용을 심사한 뒤 대통령령에 따라 인가 여부를 결정합니다.
금융위의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주식회사 또는 금융기관 ▲자본금 30억원 이상 ▲타당하고 건전한 사업계획 ▲가상자산거래업에 충분한 인적·물적 설비 ▲사업자의 건전한 재무상태 및 사회적 신용 등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한편 ‘등록제’는 가상자산사업자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등록을 신청하면 금융당국이 별다른 조건 없이 등록을 접수하는 제도입니다. 등록제 하에서 신청서 접수를 맡은 금융위원회는 신청서가 거짓이거나 사업자가 등록요건을 갖추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등록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등록제 도입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법은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디지털자산산업 육성과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입니다. 해당 법률안은 가상자산사업자가 금융위에 등록신청서를 접수하고, 금융위는 3개월 이내에 등록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에 가상자산사업자로 등록하기 위한 요건은 ▲상법 상 주식회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 예치 ▲법무법인, 회계법인에 의한 검증 ▲금융위 투자자 보호 정책 준수 ▲재무건전성, 디지털자산 건전성 기준 확보 등입니다.
현재 모든 가상자산업에 등록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법률안은 민형배 의원의 발의안이 유일합니다. 대부분의 법률은 인가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으며, 윤창현·김은혜 의원의 법률안은 ‘가상자산 발행’에 한해 등록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가제와 등록제는 각기 장단점이 있습니다. 인가제를 도입하면 진입요건이 까다로워 가상자산사업자의 건전성을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한된 사업자만 시장진입이 가능한 만큼 가상자산시장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등록제는 금융당국이 제시한 요건을 갖춘 사업자 모두가 시장 진입이 가능해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사업자별 세부 규제 없이 시장의 대부분을 자율 규제에 맡겨 시장 과열과 투기가 조장될 수 있습니다.
불공정거래 방지책은 한 목소리…고객 계정 분리·거래소 기능 분할 제안도
인가제와 등록제로 진입규제 방식에 대한 의견은 갈리지만, 법안의 근본 목적인 '소비자보호'를 위한 불공정거래를 금지 방안은 7개 법률안에서 모두 일치합니다.
법률안들은 모두 불공정거래를 금지하기 위해 ▲시세조정행위 ▲미공개정보이용 ▲투자금 예치의무 ▲사업자 정보공시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 역시 지난 17일 루나·테라 사태 관련 임원회의에서 "앞으로 제정될 디지털자산기본법에 불공정거래 방지·소비자피해 예방·적격 ICO(가상화폐공개) 요건 등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전문가들은 디지털 자산관리법 관련 제정안 관련해 인가제와 등록제의 여부에 앞서 고객 자산과 사업자 자산의 분리가 핵심이라고 강조합니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11월 2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가상자산 '커스터디(custody, 신탁)' 업무의 특성을 반영해 가상자산사업자의 고객자산보호의무를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조적으로 가상자산을 보관하는 사업자의 고유계정과 고객계정을 분리해 고객자산을 사업자의 파산위험으로부터 절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김 연구위원은 "고객계정에 보관된 가상자산에 관한 고객의 재산권을 법적으로 명확히 하고, 고객의 동의 없이 가상자산사업자가 사용·수익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가상자산업법안에 포함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계정 분리를 넘어 현행 가상자산거래소 기능을 기관별로 나누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소 명예연구위원은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증권시장의 발행 및 유통과정과 비교하면 가상자산시장은 이해상충·상호감시의 취약성·불공정거래·대리인비용 문제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현재와 같이 가상자산거래소 한 곳에서 ▲증권거래소 ▲예탁결제원 ▲증권사 ▲은행과 유사한 업무를 모두 수행하는 체제는 거래자 보호에 취약하다는 지적입니다.
손 연구위원은 이해상충 및 불공성거래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행 거래소의 기능을 기관별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기능을 분리할 경우 가상자산거래소는 증권거래소와 유사한 기능을 하고 '가상자산예탁결제소'를 새로 만들어 가상자산의 청산·결제·예탁기능을 전담하게 합니다. 나머지 고객 자금 수탁 업무는 은행 등 신탁기관이 담당한다는 설명입니다.
손 연구위원은 "시장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자가 이익이나 손실을 보는 것은 자기책임이지만 거래소에서 시장가격이 불공정행위로 인해 왜곡되거나, 시장의 거래시스템 자체의 결함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는 방지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