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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칼럼

[정은정의 음식추억] 유월 참외에는 ‘사랑 받는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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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05, 2022, 22:06:12

 

 

정은정 농촌사회학자ㅣ성품이 훌륭했던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수업을 일찍 마치는 날이면 어김없이 놀이시간을 만들어주셨다. 짧은 시간 안에 반 전체 아이들이 몰입해서 할 수 있는 놀이라면 '빙고 게임'이나 '시장에 가면' 이란 놀이도 있었다. 시장통을 끼고 살았던 우리는 시장 물목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시장에 가면 배추도 있고, 오이도 있고, 오징어도 있고”. 이렇게 시장 물목들을 순서대로 읊다가 자기 순서에 말문이 막히면 인디안밥으로 등짝을 두들기거나 노래를 시키곤 했다.

 

나는 순발력이 워낙 부족해 '시장에 가면' 보다는 '빙고 게임'이 적성에 맞았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과일 종류를 쓰라 하고 빙고를 맞춰가는데 그때 참외는 과일이 아니라고, 채소라 우겨대며 꼭 젠체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초본식물이자 일년생인 참외나 수박, 토마토는 채소라 우기면 또 현실참여형 녀석들은 분명 참외와 수박은 과일장수들이 팔기 때문에 과일이라 하고, 생물학 지식도 얕고 현실외면형인 내게 채소는 ‘반찬으로 해 먹고 무엇보다 달콤하면 과일이지 대체 뭐가 과일이람’ 하면서 속으로 주억거리곤 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게 참외는 귀한 과일이다.

 

어릴 때는 곧잘 붕어나 메기, 쏘가리 같은 민물고기를 먹곤 했지만 지금은 그 흙내가 싫어서 입에 대지도 못한다. 아마도 억센 붕어가시에 된통 당하고 나서 뇌리에 먹지 못할 음식으로 갖다 박혔는지도 모르겠다. 남한강 줄기를 끼고 있던 동네에서는 올갱이는 가장 흔한 간식이나 국거리였고, 어른들은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아왔다. 아버지도 낚시를 좋아했다. 유일한 취미이기도 했을 테고, 생선을 구해오는 재미도 컸을 것이다. 대여섯 살 무렵 그날은 아버지가 엄마와 나까지 데리고 낚시를 하러 갔다. 봄이었을지 가을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봄으로 기억하는 몇 가지의 이미지가 있다. 강가의 나무가 푸르고 뭣보다 그날의 색깔은 노랗기만 했으니까.

 

젊은 부부가 어린 딸을 데리고 강가에 앉아 남편은 낚시를 아내는 아이를 돌보며 뜨개질을 하고 있을 풍경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아버지는 낚시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식재료 동원에 의의를 두는 사람이었으며 엄마의 뜨개질은 70~80년대 한국이 스웨터 수출에 열을 올리던 때여서 동네 여인들 모두 부업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무슨 연유로 그날 낚시터에 따라갔는지는 모르겠으나 큰 사달이 났다. 낚싯대를 멀리 투척하기 위해 아버지가 있는 힘껏 낚싯줄을 뒤로 당겼다. 낚싯대를 등 뒤로 뻗었다 강가로 휙 하고 바늘과 줄을 날려 보내는 장면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브래드피트와 같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날의 풍경은 내 인생에 가장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낚싯바늘이 남한강 붕어가 아니라 내게 와서 꽂혔다는 것이다. 아버지 손이 미끄러졌는지 낚싯대를 던지려다 뒤에 앉아 있던 내 얼굴에 바늘이 꽂혀버린 것이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는데 훗날 들어보니 슬쩍 스치는 정도였노라 엄마가 말해줬지만 절대 아닐 것이다. 분명 나는 눈을 잃을 뻔했을 거라며 평생 그리 믿어왔다.

 

그날 엄마가 나를 둘러업고 오는데 포대기 색깔이 하필이면 노란색이었다. 그래서 아마 봄날이라고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봄날의 색깔은 어쨌든 노랑이니까. 막내인 내 걸음은 느리고 건사할 자식은 많아서 엄마는 주로 나를 업고 다녔다. 그래서 다 크도록 노란 포대기를 종종 썼다. 그 포대기 속에서 펑펑 우는 나를 달랜다며 먹고 싶은 거 다 사준다고 했었고 생뚱맞게 “차미 사줘! 차미 사줘!”를 외쳤다고 한다.

 

고향 동네에서는 참외를 '차미'라 부르곤 했다. 아이스크림도 아니고 참외를 사 달라 울면서 왜 떼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노란 포대기 색깔을 보면서 노란 참외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아버지가 참외를 사 왔다. 날씨가 겨우 풀린 봄이었을 텐데 어떻게 참외를 구해왔나 모르겠다. 우리나라 참외 시설재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는 1988년 전후. 그때는 노지참외를 여름에 먹던 시절이었는데 이른 봄에 아버지가 사 온 참외는 시설재배 참외였을 것이다. 겨울 산딸기 구하는 것만큼은 아니어도 계절에 맞지 않은 봄 참외를 사 와서 나를 달랬다.

 

나중에야 그날 낚시터에 나만 간 것이 아니라 세 살 위 작은언니도 함께였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워낙 울어대고 엄마가 아버지한테 너무 화를 내서 작은언니는 지레 겁을 먹고 찍소리도 못했다나. 그래서 내 기억엔 언니는 없었던 거다. 하지만 아버지가 참외까지 사다 줬다니 그건 정말이지 우리집에선 드문 특별대접이었을 거라 언니가 기억을 보태줬다. 자기는 먹은 기억이 없는데 왜 너만 참외를 먹은 거냐며 추궁을 당했지만, 문득 참외 한 개는 어디로 갔을까 하다가 한 개는 분명 외아들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겠느냐며 '아들편애설'에 언니와 나는 합을 맞췄다. 다음에 만나면 쉰 줄에 접어든 오빠를 취조해 볼 요량이다. “그때 오빠가 참외 한 알 얻어먹었지?”

 

그 길로 아버지는 낚시를 그만두었다. 붕어 다듬고 부레 따는 일도 번거롭거니와 툭하면 민물고기 가시가 목에 걸려 컥컥대는 어린 우리들 건사도 귀찮아 엄마가 잔소리를 한참 퍼부을 즈음이었다고 한다. 다른 건 다 떠나서 먹고살려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낚싯대 던지던 아버지의 호시절도 끝나 버렸고 낚시는 그대로 녹이 슬어 어디 고물상이 들고 갔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참외를 좋아한다. 이제 계절과 상관없이 사철 참외가 나오지만 그래도 이맘때 쏟아져 나오는 참외가 맛있다. 지금의 우리가 먹는 참외는 품종 개량을 거듭해 당도도 높고 식감도 아삭아삭해서 명실공히 과일이라 불러주어도 어색하지 않다. 수박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참외는 맥을 못 추니 지금이 딱 제철이다. 참외는 내가 깎아 먹어도 맛있지만 누가 깎아줘야 더 맛있다. 골을 따라 껍질이 벗겨진 참외를 얻어먹고 있으면 사랑받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날도 참외를 사내라고 울고불고한 것은 오늘만큼은 나만 바라보고 나만 예뻐해 달라는 골질이었다.

 

참외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껍질 까기도 번거롭고 선호하는 과일 1위가 망고인 세상에서 망고와 멜론의 인기는 올라가지만 참외는 점점 어른들의 과일이 되어간다. 여기에 참외 농사 까다롭고 고되기로 이름나 있어 나이 든 농민들은 참외 농사에서 손을 떼거나 양을 줄인다. 그러니 이 늦은 봄날의 참외를 언제까지 이렇게 푸지게 먹고 살 수 있을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으니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자.

 

참외는 노란색 비닐봉지에 담아 팔곤 한다. 노란색이 더 도드라지고 예뻐 보이라는 뜻이다. 등급외품으로 배꼽이 불뚝 튀어나온 참외도 헐값으로 팔리고 있다. 그 시절 생각나서 부러 배꼽참외를 샀다. 돈 없어 산다 여길까 싶어 까만봉지에 담아주길 바랐건만 굳건하게 노란색 봉투에 담아온 배꼽 참외 몇 개. 어쩐지 그 노란색 비닐봉지가 엄마가 나를, 아니 나만 업어주었던 그때의 노란 포대기 같다.

 

나는 엄마와 배꼽 줄로 연결되어 이 세상 밖으로 나와 여태 살고 있다. 참외 배꼽 되면 보기 흉하다고 탯줄 떨어질 때까지 살살 씻겨 배꼽 자리는 예쁘게 잡혔노라 뿌듯해하면서도 정작 빼꼽 튀어나온 헐값의 참외를 잘도 사다 먹이셨지. 엄마 기일인 이맘때 참외가 한창이어서 제사에 참외가 빠지는 법이 없다. 하늘에서도 참외는 실컷 맛보고 계실 것이다. 참외 배꼽 자리가 참외꽃이 피었던 꽃자리다. 모든 생명은 그렇게 꽃자리로 연결되어 태어나고 멸한다. 참외꽃 한 송이로 태어나 참외꽃 한 송이로 져버릴 우리의 생이여. 그리고 나의 참외여!

 

■정은정 필자

 

농촌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등을 썼다. 농촌과 먹거리, 자영업 문제를 주제로 일간지와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나가 농촌과 음식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그림책 <그렇게 치킨이 된다>와 공저로 <질적연구자 좌충우돌기>, <팬데믹시대, 한국의 길>이 있고 <한국농업기술사전>에 ‘양돈’과 ‘양계’편의 편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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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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