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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의 안주잡설]평양냉면, 소주와 함께 느닷없이 젖어 드는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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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19, 2022, 11:06:09

 

 

정진영 소설가ㅣ좋아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음식 중 최고봉은 단연 평양냉면이 아닐까 싶다.

 

짙은 육향과 깊은 감칠맛이 느껴진다는 찬사와 걸레 빤 물처럼 밍밍한 색깔에 비싸다는 비난 사이에 건너기 어려운 강이 흐르게 된 이유 중에는 남성들의 일방적인 가르침을 빗댄 맨스플레인에서 유래한 '면스플레인'이 있다. '빠'가 '까'를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평양냉면의 대단함에 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아봤자 사주고도 뒤에서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면스플레인의 심정을 모르지는 않는다.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투덜대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맛의 세계에 눈을 뜬 경험을 했으니 말이다. 이 맛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게 몹시 안타까운 거다. 궂은날에도 애타게 거리에서 전도하는 신앙인의 마음처럼. 전략을 바꿔야 한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느닷없이 다가와 인상이 좋아 보인다며 도를 아느냐고 물어봤자 반감만 살뿐이다. 다들 거리에서 겪어보지 않았는가.

 

내 경험을 비춰 보면, 평양냉면 전도에 가장 좋은 방법은 느닷없이 젖어 들게 하는 거다. 그러려면 입을 닫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 평양냉면집에 가면 어복쟁반, 불고기, 수육, 제육, 녹두전, 만두 등 냉면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만한 음식이 있다. 맛있는 음식은 곧 맛있는 안주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평양냉면집에서 나오는 음식 모두 소주와 잘 어울린다.

 

테이블 위에 오른 음식을 안주 삼아 소주 몇 잔을 마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국물로 마실 무언가를 찾게 된다. 그때가 바로 평양냉면을 거부감 없이 맞이할 최적의 타이밍이다. 찬 소주가 혀에 남긴 씁쓸한 맛을 육수로 헹군 뒤 후루룩 면을 빨아들여 씹다 보면, 구수한 향과 담백한 맛이 입안에서 어우러져 처음 먹었을 때보다 짙은 여운이 느껴진다. 혀가 예민해졌다는 신호다. 그때 육수를 한 모금 더 마신다.

 

이게 뭐지? 조금 전에는 잘 느껴지지 않았던 감칠맛이 혀 위에서 폭발한다. 다른 음식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 육수가 당긴다. 육수를 마시면 바로 소주가 당기고, 소주를 마시면 다시 육수가 당기는 즐거운 악순환! '면스플레인'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몇 차례 평양냉면집에 더 오면 상대방이 먼저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겠다고 고해성사를 할 테니까. 내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평양냉면과 소주를 사랑하게 됐다.

 

 

지난 2011년 말에 내가 두 번째 신문사로 이직한 직후의 일이다. 편집국장은 점심시간에 나와 동기로 묶인 기자들을 데리고 충무로에 있는 필동면옥으로 향했다. 그곳에 나는 평양냉면과 첫 인연을 맺었다. 냉면이 나오기 전에 제육을 담은 접시가 나왔다. 이곳에서 먹은 제육의 맛은 내 상식에서 벗어나 있었다. 쫀득하면서도 탄탄한 제육의 식감과 새콤하면서도 달달한 양념장의 조화, 여기에 새우젓과 편마늘을 곁들이니 소주 몇 잔이 절로 넘어갔다.

 

이후 전국의 여러 평양냉면집을 돌아다니며 적지 않은 소주병을 비웠지만, 제육만큼은 이곳을 능가하는 집이 없었다. 맛있는 제육을 먹으니 처음 접하는 평양냉면을 향한 기대도 커졌다. 생수처럼 맑은 육수와 그 위에 떠 있는 소량의 고춧가루가 낯설었지만, 이미 제육과 소주로 몸과 마음을 연 나는 평양냉면을 남들보다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육수를 모두 비운 그릇이 그 증거였다.

 

그날 테이블에 제육이 없고 달랑 평양냉면뿐이었다면, 내가 과연 평양냉면과 친해질 수 있었을까. 진입장벽이 있는 음식은 그 장벽을 무너뜨릴 계기를 마련해줘야 한다.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 때문에 나는 평양냉면을 처음 접하는 사람을 냉면집에 데려가는 일이 생기면 반드시 다른 음식과 소주를 함께 주문해 대접한다. 상대방이 가위로 면을 잘라도, 육수에 식초를 뿌려 먹어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그저 평소 먹던 대로 먹을 뿐이다. 그런 자리를 통해 상대방이 평양냉면과 인연을 맺으면 좋은 일이고 아니면 마는 거다. 어차피 인연을 맺을 사람은 맺는다.

 

그 어떤 안주보다 소주와 훌륭한 마리아주를 자랑하는 평양냉면이지만,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집 근처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평양냉면은 유명세에 비해 다루는 음식점의 수가 매우 적은 편이다. 평양냉면은 금단증상이 꽤 심각한 음식인데,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 금단증상을 견디지 못한 나는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유사 평양냉면 레시피를 만들어냈다. 금단증상을 완벽하게 해결해줄 수는 없어도, 다음 금단증상이 올 때까지 진정제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는 레시피여서 여기에 공유한다.

 

 

대형마트 간편식 코너에 가서 양지육수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평양냉면 육수의 핵심이 소고기 양지 육수라는 점에서 착안했다. 그다음에는 라면 코너로 가서 청수물냉면이 있는지 살핀다. 100% 메밀로 만든 제품의 맛이 가장 좋다. 집으로 돌아와 물병에 양지육수, 청수물냉면에 포함된 육수, 적당량의 물을 함께 넣고 섞는다. 여기에 미원을 살짝 뿌려 감칠맛을 더한다. 이 간단한 레시피만으로도 평양냉면 육수와 꽤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 나만큼 평양냉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내 박준면 배우도 인정한 맛이다. 청수물냉면 포장지에는 면을 4분 동안 익히라고 적혀 있는데 조금 짧다. 5분 30초 정도 익히면 실제 평양냉면과 유사한 식감을 낼 수 있다. 다만 인스턴트 식품이어서 구수한 메밀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이다.

 

삶아낸 면을 그릇에 담은 뒤 육수를 붓고 그 위에 양지육수에 함께 들어있던 고기를 고명으로 올린다. 삶은 달걀이나 파, 오이를 면 위에 올리면 더 그럴싸한 모양이 된다. 먹을 준비가 끝나면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낸다. 빈 속에 소주 한 잔을 마신 뒤 육수를 마셔보자. 말도 안 되게 간단한 과정으로 만든 육수인데도 그 맛이 꽤 괜찮아서 놀라울 테다. 더운 여름에 마땅한 소주 안주가 없을 때 식사를 겸한 안주로도 딱이다. 남은 육수는 하루 이틀 냉장고에 묵혔다가 냉면을 만들 때 사용해보자. 더 맛이 좋아져서 어이가 없다. 이게 뭔가 싶어 어이없었다가 느닷없이 빠져들었던 노포의 평양냉면처럼 말이다.

 

■정진영 필자

 

소설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다시, 밸런타인데이',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썼다. '침묵주의보'는 JTBC 드라마 '허쉬'로 만들어졌으며, '젠가'도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앨범 '오래된 소품'을 냈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이 있다.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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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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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글로벌 생산량 확대에 8300억원 투자…매출 5조 가속화

오리온, 글로벌 생산량 확대에 8300억원 투자…매출 5조 가속화

2025.04.15 12:34:53

인더뉴스 김용운 기자ㅣ오리온[271560]이 총 8300억원을 투자해 매출 5조원, 영업이익 1조원 달성을 위한 글로벌 중장기 성장기반 구축에 나선다고 15일 밝혔습니다. 오리온은 15일 이사회를 열고 충청북도 진천군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내 생산∙포장∙물류 통합센터 구축에 4600억원을 투자하는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최근 5년 내 식품기업의 국내 투자로는 최대 규모입니다. 진천 통합센터는 축구장 26개 크기인 18만8000㎡(약 5만7000평) 부지에 연면적 14만9000㎡(약 4만5000평) 규모로 건설되며 생산, 포장, 물류까지 연결된 원스톱 생산기지입니다.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올해 중순에 착공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 수출 물량에 대한 제품 공급을 담당할 예정입니다. 진천 생산공장이 완공되면 국내 생산능력은 최대 2조3000억원 수준까지 확대됩니다. 진천 통합센터 조성에는 중국과 베트남 법인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을 사용할 방침입니다. 오리온은 2023년부터 해외 법인의 국내 배당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2900여억원을 수령할 예정이며, 3년간 누적 배당금액은 약 6400억원입니다. 오리온은 해외 배당금을 식품사업 투자 및 주주환원 확대를 위한 배당 재원으로 사용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오리온은 러시아와 베트남 등 고성장하고 있는 해외 법인에 대한 투자도 늘릴 계획입니다. 러시아 법인은 현지 판매물량이 최근 6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공장가동률이 12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도 초코파이 공급량이 부족함에 따라 트베리 공장 내 새로운 공장동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 트베리 신공장을 가동한 이래 3년 만입니다. 총 투자 금액은 2400억원 규모이며 파이, 비스킷, 스낵, 젤리 등 16개 생산라인을 증설합니다. 투자가 마무리되면 연간 총 생산량은 현재의 2배인 7500억원 수준까지 확대되어 러시아 법인의 성장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성장잠재력이 큰 시장인 만큼 총 1300억원을 투자해 베트남 1등 식품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한다는 계획입니다. 먼저 올 하반기에는 하노이 옌퐁공장 내 신공장동을 완공하고, 쌀스낵 라인 증설로 공격적인 시장 확대에 나섭니다. 기존 제품의 추가 생산라인도 순차적으로 확대해 향후 9000억원 수준까지 생산능력을 키울 계획입니다. 물류센터와 포장공장이 들어서는 하노이 3공장은 올해 착공해 2026년 완공이 목표입니다. 오리온 관계자는 "1993년 첫 해외 진출 이래 지난 30년간 '성장-투자-성장'의 선순환 체계를 완성하며 해외 매출 비중이 65%를 넘어서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국내를 비롯해 해외 전 법인이 매년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어 생산능력 확대를 통해 중장기 성장기반을 더욱 공고히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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