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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의 음식추억] 명절 ‘전’ 부치기…하라 마라 말은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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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September 09, 2022, 21:09:52

 

정은정 농촌사회학자ㅣ명절이 또 돌아왔다. 설날, 추석 일 년에 두 번이라지만 종종 돌아서면 명절이다 싶어 버거울 때가 있다. 명절 두 번에 어버이날, 부모님 생신과 기일까지 챙기다 보면 어떻게든 두 달에 한 번은 만나고 살라는 조상님들이 요행수를 쓴 건 아닐까 생각마저 든다. 명절 상여금을 받는 직업도 아니고 용돈 받을 일보다는 여기저기 챙길 일이 많은 나도 명절이 다가오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명절에 대한 기억이 많은 편이어서 때가 되면 자동반사로 전을 부칠 재료와 고기 몇 근을 더 장바구니에 넣는다.

 

명절 음식 중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것이 늘 전이지만 따지고 보면 단순한 음식이다. 육해공 식재료를 손질해서 밀가루 반죽에 묻혀서 부치거나, 계란에 묻혀서 부치면 된다. 살림을 하면서도 만만한 게 전이다. 반찬도 마땅찮고 찌개나 국도 끓이기 귀찮은 날 김치전 몇 장 부치면 한 끼가 해결된다. 식재료가 남아서 상하기 직전에도 전은 유용하다. 밀가루와 계란, 식용유만 있으면 만사형통인 전,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의 밥상이다.

 

애청자이기도 하고 연구자로서도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한국방송의 <6시 내고향>과 <한국인의 밥상>이다. 장수 프로그램이고 특히 전국의 독특한 산물이나 음식들 구경이 쏠쏠해서 재밌게 보는 편이지만 점점 더 음식들이 엇비슷해지고 때로는 천편일률이다.

 

지역의 특산물을 가지고 그 지역에서 해 먹는 독특한 방식을 알려주는 것이 핵심인데 종종 들어가는 식재료만 다를 뿐 웬만하면 다 부쳐 먹거나 튀겨먹는 장면이 나온다. 산나물 많이 나는 곳에서는 산나물 전, 비트 주산지에서는 비트 전이 나오는 식이다. 식재료는 채를 치거나 믹서기에 갈아 넣는 방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찐’ 한국인의 밥상이다.

 

코팅이 다 벗겨진 프라이팬에서도 전을 그렇게 잘 부쳐내는 할머니들이 수십 년 전부터 해 먹어 온 음식이고 외국인들도 한국에 방문하면 꼭 먹는 K푸드이기도 하다. 오래도록 뿌리를 내린 음식은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도 각각이다. 서울말을 기준 삼아 ‘부침개’라고는 하지만 내 고향 충북 내륙은 ‘부치기’라고 부른다. 어릴 때는 곧잘 ‘지름떡’이락도 불렀는데 이제 그 말을 쓰는 이는 어느덧 여든이 넘으신 아버지 정도다. 경상도에서는 ‘지짐’이라 쓰고 ‘찌짐’이라고 말한다. 또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는 ‘부추적’, ‘배추적’ 하면서 적이란 말을 붙여서 쓰는 것을 들었다.

 

지역마다 나는 산물이 다 달라서 전이야말로 지역색이 강한 음식 중 하나다. 밀가루는 접착제 정도로 쓰는 경상도식의 부추전은 땡초를 넣어 ‘땡초부추전’이라 해서 전국에서 꽤 알려진 음식이 되었고, 배추전도 어느 순간 미디어를 타고 많이 알려진 음식이다. 호박전이면 당연히 애호박을 동그랗게 잘라 계란물에 입혀 부쳐내는 것을 상상하지만 우리 동네에선 둥근 조선호박을 채 쳐서 부치는 전을 호박전이라 한다.

 

저 경상북도 모처에서 늙은 호박을 채를 쳐서 부쳐낸 늙은 호박전을 뜻하기도 한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불천위 제사를 지내는 전국의 종가 제사 기록을 보면 희한한 음식들이 많이 올라간다. 세월이 지나면서 조선시대에 있기 어려운 과일도 올라가고 늙은 종부는 더 이상 떡을 혼자 만들지 못해 방앗간 떡을 보기 좋게 올리는 역할만 해내기도 한다. 전국의 종가 제사, 차례상에서 지역색이 뚜렷한 것이 전인데 이유야 그 동네에서 가장 많이 나는 물산을 활용한 것들이 많아서다.

 

대체로 바닷가 쪽에서는 생선이 많이 올라오고 내륙에는 고기와 밀가루로 어떻게든 상을 차려내곤 한다. 우리 고향은 물산이 부족한 곳이어서 ‘밀전’이라 해서 얇게 밀가루 부침개를 부쳐 그 위에 다시마와 대파, 고사리, 씻은 김치 한 줄을 얹는 전을 부쳐낸다. 어릴 때는 밀전엔 손도 안 댔는데 그 희어멀건한 밀전을 먹고 있는 나를 보니 그 시절의 엄마 나이가 되어 있다. 모르긴 몰라도 세상은 넓고, 우리가 먹어야 할 부침개는 더 많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전을 많이 부쳐 먹은 것일까? 유지작물이라고 해봤자 깨 정도일 뿐이었고, 정말 부쳐 먹으려면 그나마 참기름보다는 들기름을 쓰곤 했다. 돼지기름이라도 쓸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던 시절을 건너 1971년부터 콩기름이 본격적으로 대량생산되면서 부치고 튀겨먹는 세상이 열렸다.

 

어릴 때 할머니가 전을 부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면 지금처럼 식용유를 병째 붓는 것이 아니라 기름을 밥공기에 따로 부어 숟가락으로 번철이나 가마솥 뚜껑에 조금 붓고 무로 기름을 넓고 얇게 펴 발라 기름을 최대한 쓰지 않고 전을 부쳐내시곤 했다.

 

식용유가 아무리 흔해졌어도 시골 살림에 흔전만전하게 써본 적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강원도 영서 지역에서 파는 메밀전을 보면 우리 할머니가 하던 딱 그 스타일이다. 최고의 기술자는 기름 적게 붓고 부쳐내는 실력이고 이제 기름진 음식이 부담스러워진 시대에 기름 없이 구워내고 튀겨내는 일이 중요한 기술이다. 이런 시절에 우리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생활의 달인’에 뽑히고도 남을 양반이다. 딱 밥 한 공기의 기름으로 전을 산더미처럼 부쳐내시곤 했으니 말이다.

 

할머니는 기름 냄새를 맡고 조상들이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제사상을 받으러 온다고 말씀하셨다. 고루한 아버지는 할머니 말씀을 금과옥조 삼아 지금도 전은 사지 말고 몇 장이라도 꼭 부쳐야 한다고 믿는 분이다. 효모처럼 자손 번창하라는 의미에서 막걸리를 제주로 쓰곤 하는 우리집 차례상을 보면서, ‘아무렴 전엔 막걸리지! 조상님들도 저 조합은 못 참지’. 속으로 되뇌곤 한다.

 

전은 취향 타지 않고, 아주 뛰어난 음식솜씨가 없더라도 전은 부치면 부칠수록 실력이 는다. 아예 이제 프리믹스 시대가 열려서 간 맞추기가 어려운 이들도 집에서 전을 부쳐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나는 집에서 늘 전 담당이었는데 이 일이 썩 창조적인 일이 아니어서 덤벙대는 나한테 맡겨도 그럭저럭 해낼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밀가루와 계란, 식용유가 만나서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 그 전이 종종 명절의 원흉으로 지목받았다. 많은 종류의 전을 한꺼번에 부치다 보면 기름 냄새에 질리기도 할 테지만 질리는 건 사실 ‘관계’일 것이다. 고부든 장서든 혼인으로 맺어진 이 관계에서 여전히 전으로 ‘전투’를 치러내는 일이 여성들의 몫인 경우가 허다하고,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명절은 여성들에게 썩 즐거운 일이 아닐 때가 많다.

 

시절 변해 이제 차례 문화도 많이 변했다. 아예 거르는 경우는 더 많아졌다. 얼마 전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명절에 전을 부치지 않고 간소하게 차려도 된다고 했지만, 전이란 것이 누가 부치라고 부치고 말라 해서 부치지 않는 음식은 아니다. 여차하면 전집에서 사다 써도 되는 일이고 명절 때 전집은 최고 성수기를 맞는 것을 보면 여전히 명절에는 그래도 기름진 전이 당기게끔 한민족 유전자에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제 차례 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정상가족’ 혹은 ‘전통가족’의 범주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것일 뿐. 오랫동안 가부장 사회의 모멸을 여성뿐만 아니라 가부장성을 갖추기 어려운 남성들마저 배제시키면서 이 사회에서 명절은 그 자체로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전은 부치지 않아도 된다는 저 뒤늦은 캠페인이 덧없어 보이는 것이다. 문제는 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은정 필자

 

농촌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등을 썼다. 농촌과 먹거리, 자영업 문제를 주제로 일간지와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나가 농촌과 음식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그림책 <그렇게 치킨이 된다>와 공저로 <질적연구자 좌충우돌기>, <팬데믹시대, 한국의 길>이 있고 <한국농업기술사전>에 ‘양돈’과 ‘양계’편의 편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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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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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글로벌 생산량 확대에 8300억원 투자…매출 5조 가속화

오리온, 글로벌 생산량 확대에 8300억원 투자…매출 5조 가속화

2025.04.15 12:34:53

인더뉴스 김용운 기자ㅣ오리온[271560]이 총 8300억원을 투자해 매출 5조원, 영업이익 1조원 달성을 위한 글로벌 중장기 성장기반 구축에 나선다고 15일 밝혔습니다. 오리온은 15일 이사회를 열고 충청북도 진천군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내 생산∙포장∙물류 통합센터 구축에 4600억원을 투자하는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최근 5년 내 식품기업의 국내 투자로는 최대 규모입니다. 진천 통합센터는 축구장 26개 크기인 18만8000㎡(약 5만7000평) 부지에 연면적 14만9000㎡(약 4만5000평) 규모로 건설되며 생산, 포장, 물류까지 연결된 원스톱 생산기지입니다.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올해 중순에 착공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 수출 물량에 대한 제품 공급을 담당할 예정입니다. 진천 생산공장이 완공되면 국내 생산능력은 최대 2조3000억원 수준까지 확대됩니다. 진천 통합센터 조성에는 중국과 베트남 법인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을 사용할 방침입니다. 오리온은 2023년부터 해외 법인의 국내 배당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2900여억원을 수령할 예정이며, 3년간 누적 배당금액은 약 6400억원입니다. 오리온은 해외 배당금을 식품사업 투자 및 주주환원 확대를 위한 배당 재원으로 사용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오리온은 러시아와 베트남 등 고성장하고 있는 해외 법인에 대한 투자도 늘릴 계획입니다. 러시아 법인은 현지 판매물량이 최근 6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공장가동률이 12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도 초코파이 공급량이 부족함에 따라 트베리 공장 내 새로운 공장동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 트베리 신공장을 가동한 이래 3년 만입니다. 총 투자 금액은 2400억원 규모이며 파이, 비스킷, 스낵, 젤리 등 16개 생산라인을 증설합니다. 투자가 마무리되면 연간 총 생산량은 현재의 2배인 7500억원 수준까지 확대되어 러시아 법인의 성장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성장잠재력이 큰 시장인 만큼 총 1300억원을 투자해 베트남 1등 식품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한다는 계획입니다. 먼저 올 하반기에는 하노이 옌퐁공장 내 신공장동을 완공하고, 쌀스낵 라인 증설로 공격적인 시장 확대에 나섭니다. 기존 제품의 추가 생산라인도 순차적으로 확대해 향후 9000억원 수준까지 생산능력을 키울 계획입니다. 물류센터와 포장공장이 들어서는 하노이 3공장은 올해 착공해 2026년 완공이 목표입니다. 오리온 관계자는 "1993년 첫 해외 진출 이래 지난 30년간 '성장-투자-성장'의 선순환 체계를 완성하며 해외 매출 비중이 65%를 넘어서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국내를 비롯해 해외 전 법인이 매년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어 생산능력 확대를 통해 중장기 성장기반을 더욱 공고히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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