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주총에서 주주들이 연임을 지지해준 것으로 형식은 충분하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2020년 3월 25일 열린 우리금융 주주총회 후 별도의 취임행사를 갖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손 회장이 첫 공식일정으로 잡은 것은 남대문지점 방문이었습니다.
우리금융지주는 2019년 1월 우리은행 등 6개의 자회사로 출범했습니다. 손 회장은 앞서 2017년 12월말 우리은행 대표이사 행장으로 선임됐습니다.
우리은행은 2018년 11월 임시이사회를 열어 2020년 3월 주주총회까지 손태승 우리은행장이 우리은행지주사(우리금융지주) 회장을 겸직하도록 했습니다.
지주사 설립 초기에는 우리은행장이 지주사 회장을 겸직하면서 지주-은행간 업무효율과 조직안착을 도모하는 것을 최우선과제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손 회장은 우리금융그룹 초대회장으로 내년 3월 재신임을 받아야 비로소 자타공인 '연임' 회장직에 오르게 됩니다.
손 회장에게 2022년 12월 15일은 일종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사태 여파로 인한 금융당국의 문책경고 중징계가 이날 대법원 상고심에서 '잘못된 법리적용'이라고 최종결론나면서 사법 리스크를 털어냈기 때문입니다.
금융사 임원 제재 수위는 '해임권고-직무정지-문책경고-주의적경고-주의' 등 5단계로 나뉘는데 문책경고 이상은 중징계로 분류되고 금융사 취업이 3∼5년간 제한됩니다.
이번 법원 판결로 손 회장 자신의 연임 의지와 무관하게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중징계에서 벗어나 연임을 '선택지'의 하나로 고려해 볼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된 것입니다.
또 우리금융그룹은 올 3분기 누적 2조6617억원의 순이익을 내면서 전년동기(2조1979억원) 대비 21.1%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호실적은 지주사 출범 당시 '1등 종합금융그룹'을 선언한 우리금융그룹의 수장으로서 손 회장의 연임가도에 '플러스 요인'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손 회장 본인의 연임 의지를 전제로 넘어야 할 장벽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불과 한달 전입니다. 11월9일 금융위원회는 이른바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손태승 회장에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 조처를 의결했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4월 제재심의위원회를 통해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 당시 우리은행장이던 손 회장에 문책경고 제재처분이 필요하다며 금융위에 제재안을 송부했고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라임사태는 2019년 7월 라임자산운용이 코스닥기업 전환사채(CB) 등을 편법거래하며 부정하게 수익률을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져 라임자산운용 펀드에 편입돼있던 주식 가격이 폭락, 환매가 중단돼 고객들의 피해가 발생한 사건입니다.
라임펀드 판매규모는 우리은행이 3577억원으로 은행권에서 가장 많았던 데다 원금보장을 원하는 고령자에게 위험상품을 판매하거나 고객 투자성향을 공격투자형으로 임의작성해 고위험상품을 판매했다고 금융당국은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라임펀드가 한창 인기있을 때였고 판매량이 늘자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판매를 중단했다"고 우리금융은 해명합니다.
두 사건을 들여다보면 DLF 손실과 라임 사태의 핵심은 '영업현장 일선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의 여부 입니다.
다만 적용법조는 다릅니다. DLF 손실과 관련해 금융당국과 손 회장 측은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을 두고 다퉜습니다.
이 법은 '금융회사는 법령을 준수하고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 및 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금융회사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 및 절차(내부통제기준)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법원은 "현행법상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가 아닌 '준수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금융사나 임직원을 제재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판단해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라임 사태에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적용됩니다. 금융당국은 라임펀드를 불완전판매(부당권유 등)한 우리은행에 업무일부정지 3개월, 손태승 회장에 대해선 문책경고 상당의 제재를 의결했습니다.
금융권에선 두 사건을 규율하는 법조는 다르지만 CEO 문책 가능성을 두고는 DLF 손실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DLF 손실 사태 징계와 마찬가지로 법원에 징계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취소소송을 낸다면 역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손 회장이 연임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금융당국과 맞서 또 다시 쟁송을 불사할 만한 구조이기도 합니다. 법원의 가처분 신청 인용이라는 구도 아래 내년 3월 연임 도전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59년생인 손 회장이 새롭게 마주한 관문이 있습니다. 바로 세대교체론 입니다. DLF 중징계 취소소송 최종승소를 계기로 사법 리스크는 차치한다 해도 최근 금융권 수장들의 이른바 '세대교체' 흐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3연임 확정설'까지 나돈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의 전격 용퇴와 후임 회장으로 내정된 진옥동 신한은행장, 손병환 회장 연임이 유력하게 점쳐진 NH농협금융그룹 차기 회장으로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이름을 올린 것을 두고 해당 금융사에서는 소위 '세대교체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대교체론의 반대편에서는 '관치금융'의 부활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신한금융그룹이나 NH농협금융그룹 차기 회장 인사가 예측가능성을 중요시하는 금융권의 일반적인 분위기와 다른 상황에서 진행된 까닭입니다. 그 배경에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커지고 있습니다.
손 회장의 연임, 혹은 재신임에 금융권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래서 '관치금융'과 연결이 됩니다.
우리은행은 DLF 중징계 취소소송 승소가 확정된 이날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며 "금감원 분쟁조정안을 수용해 대다수 고객들의 보상을 완료하는 등 고객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왔다"는 짤막한 입장을 냈습니다.
그러면서 "글로벌 수준의 모범적 내부통제체제 구축과 함께 금융시장 안정화, 취약차주 지원 등 국가경제에 적극적으로 역할하는 것은 물론 금융당국과 긴밀한 소통과 정책 협조로 금융산업 발전과 고객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은행이 말한 "금융당국과 긴밀한 소통과 정책 협조"가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하는 말인지, 혹은 손 회장의 앞날에 대한 포석인지, 내년 3월 우리금융그룹 회장 인사가 답을 해줄 듯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손 회장은 어떤 방식으로 재신임 행보를 이어갈 것인지 금융권의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