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찬 심리상담사ㅣ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연출:정대윤, 김상호/극본:김태희, 장은재/출연:송중기, 이성민, 신현빈 등)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웹소설을 각색한 드라마다.
MZ세대가 <재벌집 막내아들>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일 듯싶다.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숭중기 분)이 대학 신입생 때 이미 몇 백억을 벌고 계속 더 큰돈을 버는 모습이 나오니 말이다. 그래서 <재벌집 막내아들>은 드라마 전개와 상관없이 재벌 아들이라는 신분을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처럼 경제가 불안정하고 취업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말이다.
MZ세대의 꿈 중에 가능한 한 빨리 조기 은퇴하는 ‘파이어족’이 있다고 한다. 검색을 해보니 파이어족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10억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돈을 실제 모으는 것이 가능한 사람이 MZ세대 중 몇 프로나 될까. MZ세대가 파이어족에 합류하기 위해 10억을 모을 수 있는 확률이 1%보다 많을지 적을지 잘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한 달에 200만원씩 40년 정도 모아야 하는 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 글이나 유튜브에서는 누구나 파이어족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나만 못하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 몇 백억 정도는 실현 가능한 돈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열풍같이 몰아친 코인 투자, 주식 투자, 부동산 투자 등으로 말이다. 어릴 적 미드 ‘6백만불의 사나이’를 볼 때 600만달러는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100만달러만 있어도 재벌이었을 같다. 그런데 이제 100만달러는 재벌도 아닌 파이어족의 목표 정도다.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연봉 몇 십억을 꿈꾸며 사는 세상이니 말이다. 경제적 성공에 대한 꿈은 무한정 커지는데 현실적인 경제 감각과 능력은 발달하지 않아서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충격으로 좌절감이 클 것 같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대기업에서 머슴과 같이 살던 윤현우(송중기 분)가 재벌집 막내아들인 진도준(송중기 분)으로 다시 산다. 과거로 돌아가 환생과 빙의가 조합된 이야기다. <재벌집 막내아들> 드라마 기획의도를 보니 인상적이다. “양극화가 날로 극심해지고, 출신성분이 곧 계급이 되는 사회. 부모가 가장 큰 스펙이요, 재능인 세상. 태어나는 그 순간,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 방에 결정 난다면... 고단한 인생,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 감히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까?” 최소 강남 건물주의 자녀로 태어나지 않은 인생은 살아갈 희망이 없어 보이게 잘 썼다. 사회비판적인 뉴스 칼럼을 보는 듯하다. 코로나 3년여 과정을 겪으면서 20대 청년 실업률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MZ세대가 삶에서 희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염려된다.
우리 삶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우울하고 불안한 기분이 느껴지면서 불행해진다. <재벌집 막내아들> 기획의도 글에서 “헬조선 청춘들의 절망 시그널-‘이/생/망’”이라고 말한 것처럼 자기 삶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면 불행한 나날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매일매일 불행하면 우울장애나 불안장애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면 우울감과 불안감이 삶의 불행을 가중하고 가속화한다. 결국 인생은 ‘노답(no答)’이 된다. 그래서일까 요즘 MZ세대의 자살률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너무 안타깝고 무섭다.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와 같은 말은 MZ세대들이 현실 세계에서 행복을 의미하는 ‘파랑새’를 찾게 하지 못한다. 오히려 우울과 불안만 증폭시켜 중독 물질(술과 마약 등)을 찾게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성공의 꿈을 꾸기 어려운 사회경제시스템 안에서는 파랑새는 허상일 뿐이다. 그리고 허상을 쫓는 삶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실제 파랑의 영단어인 블루(Blue)는 우울을 의미한다. 그래서 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야망을 품는 것이 아니라 우울함으로 바다에 뛰어들고 싶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MZ세대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꿈꾸고 희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꿈꾸고 희망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행복하다고 하는데 ‘헬조선’에서는 행복을 꿈꾸면 안 되는 것일까. 일본의 ‘사토리 세대’처럼 삶을 초월한 듯이 살아가는 것이 대안적인 삶이 될 수 있을까. 아니다. 인생 초월은 충분히 살아 본 다음 노년기에 하자. 젊은 시기에 삶을 초월하는 것은 현실을 마주하지 않고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상담실에서 MZ세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비슷한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사회경제문화적 배경이 동일하니 추구하는 삶을 비슷하게 그리는 것 같다. 우리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면 각 사람들마다 개별적이고 독특한 인생 무대가 존재해야한다. 각자 살아가는 인생 무대는 자신이 디자인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 연극 무대는 인생의 수만큼 다 달라야 한다. 그런데 인생 무대가 비슷비슷해 보인다. 이미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정해진 무대 위에서 역할에 맞추어 성공하면 행복하고 실패하면 불행하다.
MZ세대가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무대 위의 삶의 모습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인생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흐름과 주제가 비슷해 보이는 것은 ‘인스타’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현상일까. 상담실에서 내면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나만의 착각은 아닌 것 같다. MZ세대들이 비슷한 인생 각본으로 살려고 애쓰다가 마주한 고통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 싶을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삶이 고통스러운지 말이다.
드라마 1화 마지막에 윤현우(송중기 분)가 죽기 전, 신 대리(박진영 분)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유를 묻는 윤현우에게 말한다. “팀장님이 그러셨잖아요. 윗선의 명령엔 거절하지 말고, 질문하지 말고, 그 어떤 판단도 하지 말라고, 전 그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윤현우는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인생이 아니었다. 그래서 죽었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인생 이야기를 쓸 수 있어야 살 수 있다. 물론 환경적으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실존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말이다. 당신이 인간 삶의 한계 상황(상황, 사고, 죽음 등)을 이해한다면 더 나은 삶을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ps. 2022년도 쉽지 않은 한 해를 살아낸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한 해의 후회는 잘 흘려보내시고 새로이 밀려오는 2023년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 힘내시기 바랍니다.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진정한 삶은 좌절하는 고통을 겪는 가운데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 최옥찬 심리상담사는
‘그 사람 참 못 됐다’라는 평가와 비난보다는 ‘그 사람 참 안 됐다’라는 이해와 공감을 직업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내 마음이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받다보니 힐링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드라마와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 소비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