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보장성 보험 하면 대부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상품이 '암보험'일 것이다. 다들 막연하게나마 암보험 하나 정도는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TV 보험 광고만 봐도 암에 걸리면 1억원은 있어야하지 않겠냐며 목소리를 모은다. 암이 그만큼 흔한 질병인 탓이다.
사실,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의 경우 '본인 일부부담금 산정특례제도'를 통해 암 진단 시 산정특례 대상으로 등록하면 진료비의 5%만 본인이 내고 95%는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민영보험사에 의료실비보험까지 가입하고 있다면 100% 내 부담이 되는 고가의 비급여 치료도 마음 편히 받을 수 있다. 때문에 굳이 암보험이 필요가 있을까? 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암 치료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암의 경우 산정특례를 등록한 날을 기점으로 5년간 진료비 본인부담율이 5%로 낮아진다. 암 산정특례 코드는 보건복지부가 고시하며, C로 시작하는 악성신생물/D로 시작하는 제자리 신생물 및 양성신생물 중 일부와 불명 도는 미상의 신생물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암은 긴 시간 치료를 요하는 질병인 만큼 산정특례 혜택을 통해 치료비 부담을 덜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본인부담금과 비급여의료비는 환자가 모두 치러야 한다. 또한 실손 보험으로 이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하더라도 실손 보험의 경우 연간 한도를 모두 소진한 후에는 ‘면책기간’이라고 해서 실손 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없는 기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의 치료는 오롯하게 환자가 부담해야할 몫이 된다.
게다가 실손 보험 역시 내가 실제 쓴 의료비를 100% 보장하는 것이 아닌 20~30%의 자기부담금이 존재하므로 치료비의 전부를 감당하기에는 산정특례와 실손 보험만으로는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암 생존율은 높아졌으나 새로운 의료기술의 치료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는 것이 함정이다.
한 예로, 암 치료에 획기적인 한 획을 그은 ‘표적항암약물치료’의 경우 2021년까지는 ‘신 포괄수가제’에 따라 전액이 아닌 일부만 부담을 했지만 현재는 전액 환자 본인 부담이며 종류별로 금액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한 달에 500만원 정도가 드는 치료법이다. 3개월에서 길면 1년 이상으로 치료기간도 결코 짧지 않아 실손 보험이 있어도 감당이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치료기간 동안 경제활동을 중장기적으로 중단해야할 경우 생활비에 대한 걱정 또한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치료비에 대한 부담도 있는데 생활비 부담까지 더해지면 마음 놓고 치료에 전념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안타깝게도 건강할 땐 떠올리지 못 했던 보험의 필요성을 비로소 그 때 실감한다. 암보험이라도 들어두었으면 지금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사실 암보험과 같이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보험 계약 시 약속한 금액을 지급하는 ‘정액형 보험’의 경우 해당 질병에 진단을 받고 보험금을 타거나 아무 일 없이 보험료만 납입을 하더라도 현재의 내 경제생활에 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장치라 할 수 있다.
보통 정액형 암보험 금액을 산출할 때 현재의 소득수준과 생활비를 먼저 가늠하고, 치료 후 다시 사회에 복귀해 경제활동이 가능해지는 시기를 예상해 진단금의 기준으로 삼는다. 현재 내 소득수준이 높고 건사해야할 가족이 많은 경우 그 금액을 높게 책정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다. 그러므로 광고 등에서 암 걸리면 1억은 있어야지! 라는 주장이 어쩌면 크게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납입여력과 경제수준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보험금과 보험료 산출은 자신의 현 상황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해야 함이 마땅하다.
대한민국의 암으로 인한 실직율은 46.6%(출처: 서울삼성병원)로, 암 경험자 3년 내 직장복귀 비율 또한 해외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라고 한다. 암 산정특례 적용 기간은 5년이므로 그 이후의 치료와 관리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국립 암센터가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을 대한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암 발병 시 가장 고민되는 문제를 67.5%가 치료비라 답했는데, 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12.2%에 비해 5배나 높은 수치다.
주요 암 별 치료비는 1위 간암(6623만원), 2위 췌장암(6372만원), 3위 폐암(4657만원), 4위 위암(2686만원), 5위 대장암(2352만원)이며 그 뒤를 유방암(1769만원), 방광암(1464만원), 갑상선암(1126만원)이 잇고 있다. 여기에 생활비와 암 후유증으로 인한 요양치료비 등을 더할 경우 보험사 TV 광고의 ‘암 진단비 1억’이라는 문구가 그리 과장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 4명 중 1명은 암에 걸린다는 통계가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인 20대에서 40대까지의 대장암 발병률은 세계 42개 국가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는 유전적 요인으로 80%는 생활환경적 요인으로 발생된다고 추정된다고 하니 식습관의 중요성에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다.
암을 예방하는 생활습관을 익히고 음식에 신경 쓰는 일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숫자로 보여주는 통계 결과를 간과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 내게 증상이 나타난 이후에는 늦다. 보험사가 봉사단체가 아닌 이상 현재 아픈 사람을 보험에 가입시켜주지 않는다. 암 보험은 가입 후 90일이라는 면책기간, 즉 보장을 해주지 않는 기간이 존재하는 보험이자 가입 후 1년 동안은 감액기간이라고 해서 진단금의 50%만을 보장한다는 것도 기억해야할 부분이다.
다행히 요즘은 일반 보험 상품보다 보험료는 다소 높지만 유병자도 가입이 가능한 보험 상품을 각 보험사마다 출시하고 있다. 생존율이 늘어난 만큼 치료기간이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공포마케팅에 지나치게 현혹될 필요는 없겠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모든 보장성 보험은 건강할수록, 연령이 어릴수록 보험료는 낮아진다. 젊음이 재산이라는 말은 보험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암에 걸리고 싶어 걸리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당장 내게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지, 가족에게 부담을 주게 되지 않을지, 고민해 보아야할 지점이다. 그것은 내가 혼자 몸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암 걸리면 죽지 뭐,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나는 그 문장이 참 무책임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질병이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는 일이듯, 사람의 생사 또한 그러하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