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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도시의 낯섦보다 소외와 외로움이 더 짙은 순간,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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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September 11, 2023, 17:09:52

인더시티 필름 페스티벌 개막작 <라이스보이 슬립스> 씨네토크
7일 서울 신문로 에무시네마에서 열려
여주인공 맡은 최승윤 배우, 강나연 허프포스트 편집장과 대담

 

인더뉴스 권용희 기자ㅣ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에무시네마에서 인더뉴스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주최한 '人(인)더시티 필름 페스티벌'의 개막작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씨네토크 행사가 열렸습니다. 

 

인더시티 필름 페스티벌은 '우리가 몰랐던 도시(Unseen city)'를 부제로 서로가 낯선 도시에서 지속가능한 삶과 도시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주는 8편의 영화와 2편의 다큐멘터리를 선정해 관객들에게 선보였습니다.  

 

<라이스보이 슬립스(Riceboy sleeps)>는 이민자로서 느끼는 도시 속 현대인의 고독을 담은 앤소니 심 감독의 반자전적 작품입니다. 한국계 캐나다인인 앤소니 심 감독은 <라이스보이 슬립스>에서 1990년 낯선 캐나다로 이민을 간 엄마(소영)와 아들(동현)이 온갖 차별과 난관을 극복하면서 치열한 삶을 살아나가다가 엄마의 암 선고를 계기로 한국으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을 섬세하게 담았습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 포워드상과 토론토국제영화제 토론토 플랫폼상을 포함, 28개의 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된 작품입니다. 

 

이날 씨네토크 행사는 극중 주인공 '소영' 역을 맡은 최승윤 배우가 참석해 허프포스트 코리아와 씨네플레이의 첫 통합 편집장을 맡았던 강나연 허프포스트 편집장과 작품에 대한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 배우는 이화여대 무용학과를 졸업한 발레리나 겸 안무가 출신으로 첫 장편 영화 주연을 통해 인상적인 연기력을 펼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강나연(이하 강) 최 배우께서는 어렸을 적 발래를 시작해 대학 때 발레를 전공했고, 발레리나로 활동하다가 댄서겸 안무가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고 <아이 바이 유 바이 에브리바디>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공동으로 연출하고 주연을 맡으면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까지 받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어떤 내면의 변화를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됐는지? 앞으로 어떤 변화를 꿈꾸는지? 궁금하네요.

 

▲최: 그렇게까지 언급을 해주시니 다양한 일을 한 것 같지만 사실 한 가지 일밖에 안 한 것 같습니다. 떠오르는 어떤 것들을 표현하고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공유하기 위해서 매체를 계속해서 찾았고, 그게 처음에는 무용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무용가이자 안무가이자 감독이자 배우 이런 게 아니라 스스로 안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반응하려고 항상 노력과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목표는 죽기 전까지 스스로를 더 많이 알고, 해 볼 수 있는 것을 다 완성해보고 죽는 것입니다.

 

▲강 : 극중 소영이라는 캐릭터는 강인한 인물입니다. 인종 차별하는 교장한테 항의 표시도 하고 성추행한 가해자한테 거칠게 얘기도 하고 삼시 세끼 밥도 하고 아들 챙기면서 학교 선생님 면담도 하고 와중에 김장까지 하더라구요. 부모가 같이해도 힘든 일을 혼자서 고군분투해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소영은 겉으로는 강해보일지언정, 내면이나 감정을 정면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외면한다는 측면에서 건강한 인물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사람이 자기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통제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극중에서 소영은 분노 이외에는 감정 표출을 하지 않더군요. 

 

▲최 :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잘 느끼고, 올바르게 표현하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그런 경험을 하게 됐을 때 심장 박동이 빨라집니다. 화가 날 때 보통 사람들은 다음에 오는 구체적인 생각들, 권력 관계가 존재하고 그렇기에 내가 여기서 느끼는 감정을 이 사람한테 얘기를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을 고려하면서 오히려 감정을 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소영은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거든요. 

 

다만 아들한테는 조금 다르긴 했습니다. 극중 아들인 동현이가 더 이상 한국 음식을 싸지 않아도 된다고 부탁했을 때, 아들이 처음으로 등교할 때 차에서 혼자 눈물을 훔칩니다. 고생을 해서 키운 아이가 드디어 학교에 가게 된다는 감격스러운 마음 때문이었겠지요 한국에서는 학교도 못 다닐 판이었는데, 캐나다에 데리고 와서 고생은 했지만 아들이 학교는 가는구나 하는 벅차오름이 있었을 텐데 눈물을 훔치는 정도로만 그쳤거든요. 

 

소영이는 일반 어른들에게 하듯이 동현이한테 하지 않습니다. 동현이한테 서운함을 느끼고 멀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무슨 감정일까에 대해 소영은 천천히 느끼고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표현할까를 고민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영이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니라 표현하는 방식이 즉각적일 때도 있고, 즉각적이지 않을 때도 있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강 : 심리학적으로 슬픔이나 우울, 좌절, 낙담, 불안이라는 감정은 일상에서 표면적으로 분노나 짜증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소영이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하느라 자기의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하고 그나마 분노로나마 표현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먹고사니즘'이라고도 하는데, 요즘에도 먹고 사느라 힘든 집이 있지만 7~80년대에는 그야말로 먹고사느라 급급한 시대였지요. 그 시대 할머니들은배 곪지 않고 생존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소영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할 때 윗 세대 여성들, 할머니나 어머니 같은 모델로부터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최 : 사실 그 분들은 우울이나 좌절에 빠질 틈이 없었던 듯 합니다. 소영이도 그렇고, 7~80년대 한국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러지 않았을까요? 우울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준비하면서 7~80년대에 제작되고 발표된 영화들을 많이 찾아봤습니다. 그때 나온 여성상이 매우 독특했습니다. 톡톡 쏘는 인물이 많았고 기가 센 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캐릭터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자기 인생을 책임지는 여성들의 모습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강 : 그 시대를 돌이켜보면 젊은 남자들은 월남전이나 혹은 중동 건설현장으로 다 나가고, 사실상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은 여성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거시적인 역사에서는 묻혀있지만 미시사로 들어가면 사실상 여성들이 그 시대 식구들의 생존을 책임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억척스러운 여성이란 표현이 그런 곳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영도 그런 모습이 보였습니다. 책임감이 강하면 자기를 돌보는 데 소홀할 수 있습니다. 극중에서 소영은 보면 쉬지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유일무이한 장면이 '췌장암' 선고 받고 보드카 마시면서 사이먼이랑 춤추는 장면 밖에 없더라구요. 실제로 자연인 최승윤은 무용과 배우를 같이 병행하고 있고, 이 영화가 잘되면서 일정이 많을 것 같은데 일과 휴식 배분을 어떻게 하는지? 번아웃되지 않도록 나 스스로를 돌보는 편인지? 쉴 때 어떻게 쉬는지? 궁금했습니다. 

 

▲최 : 영화가 생각보다 잘돼서 1년동안에는 바쁘게 살았으나, 생각보다 널널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루에 스케쥴 1개 이상 잡으면 부담스럽더라구요. 에너지가 분산이 되기 때문인데요. 하나에도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어 그렇습니다. 오로지 집중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의도적으로 스케쥴을 널널하게 잡습니다. 집을 좋아하는 완전 집순이입니다. 그래서 MBTI가 'INTJ'인듯 합니다. 

 

▲강 : 일에 대한 열정도 있겠지만 텀을 두면서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일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일의 수위를 조절하거나 낮추려고 해도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태해지는 게 아닌지에 대해 걱정하고 거부감을 넘어선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편이신지요?

 

 

▲최 : 열정이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가장 최적의 상황에서 최고의 스스로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자질구레한 것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물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이야기가 많지만, 밀물과 썰물이 번갈아 오지 않나 생각하는 편입니다. 

 

▲강 : 연예계를 보면 정신건강에 위기를 느끼는 배우나 가수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일이 많았다가 적었다가 기복이 있다보니 그런데요.

 

▲최 : 대학 졸업하고 해외 생활 마치고 한국에 와서는 자칭 풀타임 아티스트였지만 밖에서 보면 백수와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식으로 삶을 살기 시작했을 때, 고민하고 생각하고 다뤄야했던 게 '불안'이었습니다. 풀타임 아티스트는 불안의 감각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롱런할 수 있는지 없는지와 연결된다고 봅니다. 일이 많을때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준에 따라서 최적의 상황을 찾아서 기다릴 때는 일이 없다고 느껴지니 불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불안이 아닌 에너지를 어떻게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낼지 고민이기도 합니다. 

 

번데기가 번데기 안에 있을 때 나비가 될 줄 알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나도 그냥 계속 번데기이지 않을까. 일의 주기에 따라. 디데이를 세면서 내일 나비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버티는 게 아니고 그냥 하루하루 자기 해야 될 일 하면서 버티다가 갑자기 나비가 되는 것이지요. 이를 상상하니까 위로가 됐습니다. 

 

▲강 : 영화에서 메인 플롯이 이방인 서사. 디아스포라를 다룬 것인데, 이민자의 면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주변인, 경계인이라는 정서에 공감되는 포인트가 많았습니다. 극중에서 소영의 캐릭터도 캐나다로 이민을 간 여성이지만, 남성중심적 공장에서 일을 하는 여성 노동자이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싱글맘, 사춘기 아들을 키우는 전업맘, 워킹맘,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이기도 합니다.

 

이민자로서의 고독 말고 주변인, 경계인, 이방인으로서의 고독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도 국적뿐 아니라 가족, 성별, 성정체성, 세대, 직업, 가족, 직장 등을 두고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면, 소외감이나 차별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해외를 많이 다녔고, 베를린 체류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제 좀 그런 것들을 느껴봤는지요?

 

 

▲ 최 : 해외에 잠깐 살려고 간 것이라 애초에 이민자가 아닌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 나라의 도시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것들이 상처가 되지 않았습니다. 막연히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던 듯 합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소외감이나 차별감을 느끼곤 합니다. 예를 들어 가족 여행을 갔는데, 내가 이런 가족에서 어떻게 나왔지라고 생각이 들 때 소외감을 느끼고 외로워지죠. 나랑 내 가족이 닮지 않았을 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짜증 날 때 등등이요. 

 

여기에 우리나라 특유의 '국민 OO'이라는 것이 나올 때 보면, 오히려 그런 걸 주입당한다 싶을 때 오히려 외롭다는 감정이 듭니다. 

 

▲ 강 : 베를린 체류는 어떤 계기로?

 

▲최 : 다섯 살 때 발레를 시작해 예고를 나오고, 이화여대에서 발레를 전공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때 국립 발레단 오디션도 보러 다녔는데 올림픽 선수처럼 번호표를 달고 오디션을 겪다보면 요즘말로 현타가 옵니다. 오디션을 끝내고 집에 와서 유튜브를 통해 유럽에 있는 무용단을 봤더니 문화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 무용단에 있어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고, 취직을 하게 된다면 더 큰 세상을 봐야겠다고 해서 아버지한테 요청을 드렸습니다. 1년만 놀게 해달라. 이왕 노는 거 큰물에서 놀고 싶다. 나에게 돈을 달라. 아버지가 계획서를 써오라고 해서 정말 계획서를 제출했죠. 잠깐의 해외 생활이 지금의 ‘내’가 있게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처음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거든요.

 

▲강 : 어떤 경우를 통해 좋은 것인지 알게 되었을까요? 필름 페스티벌의 콘셉트 자체가 '인더시티'고 도시와 인간에 대한 얘기가 주제인 만큼 베를린에서도 유의미한 경험을 한 것 같고, 좀 다양한 도시에서 어떤 것을 느꼈는지 알고 싶네요. 

 

▲최 : 한국은 일방적으로 "이게 좋은 거야"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좋다고 하는 것은 좋은거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해외에 나가보니까 "너 뭐 할래?". "뭐 먹을래?" 간단한 음식 주문도 구체적으로 하나를 정해야 하는 게 많았습니다. 어떤 맥주를 시켜야하는지부터 사소한 혼란을 겪었지요.

 

발레도 다섯 살때부터 시작했기에 발레가 최고의 무용이라고 생각했고 발레에서 만들어진 예술관이 있었습니다. 베를린에서 공연을 보면서 오히려 다양한 형식의 예술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머릿속에서 천둥이 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도시라기 보단 유럽은 여행 다니기 쉬운 만큼 매달 베를린 말고도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의 큰 페스티벌을 가서 보고 오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강 :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이 제목의 의미를 물어봅니다. <라이스보이 슬립스>에서 슬립스가 무엇인가? 시나리오를 쓸 때 '라이스보이 슬립스'라는 동명의 앨범을 듣고 가제를 정해놨다가 최종 제목으로 확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현이가 마리화나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영원히 잠들면 어떡하지 조마조마하기도 했는데요. 인상 깊은 장면이 있는데 강원도에 떠나기 전에 동현이가 흠씬 맞고 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소영이가 피를 닦아주고 어릴 때처럼 옆에 뉘어놓고 재워주면서 자장가 허밍이 나오는데, '잘자라 우리 아가' 였지요. 동현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고 어느때보다 평온해보였습니다. 

 

잠을 잠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요즘입니다. 자료를 보니 한국에서도 7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불면증으로 고생을 한다고 합니다. '슬립스'라는 게 동현이가 강원도에 가서 부재했던 고향과 부친의 존재를 확인하고 난 다음에 얻게 되는 내면의 평화를 암시하는 복선으로 보였습니다. 제목이 실제로 잠, 평화, 평온 이런 것과 연관이 있는지? 최승연 배우는 실제로 잘 자는 편인지요?

 

▲최 : 자정 넘어서 깨어있기가 어렵습니다.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에게 열린 제목입니다. 감독이 따로 설명을 해준 적은 없지만 배우들이 각자 자기만의 해석을 가지고 촬영을 했습니다. 찍고나서 영화를 보고 생각한 것은 '동현이 아빠도 원조 '라이스보이'가 아니었을까?' 였습니다. 촬영은 아버지의 시선으로 이뤄집니다. 그래서 처음 내레이션도 아빠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아빠는 사랑하는 사람들 주변에서 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와이프와 아들이 자신이 묻힌 곳에 찾아왔을 때 그가 갖게되는 안식을 '슬립스'로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놓고 가는 마음에 주는 안식 이런 것들이요.

 

▲강 : 라이스보이가 인종 차별 멸칭으로 쓰이다가, 강원도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바뀝니다. ‘쌀’에 대한 의미가 변합니다. 강원도 장면 중에서는 정다우면서도 찡한 장면이 많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나중에 동현이를 안아주는 장면이 특히 그랬습니다. 동현이는 환대받아본 경험이 캐나다에선 없었거든요. 캐나다에선 멸시, 왕따 안당하려고 노력해야 했기에 그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해주는 사람은 엄마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할아버지가 동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장면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강원도 촬영을 어떤 마음으로 촬영했는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는지요?

 

▲최 : 강원도 장면은 나흘만에 촬영을 마쳤습니다.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MT 간 것 같았거든요. 캐나다 스태프들은 코로나19여서 서울도 못 보고 촬영만 하고 떠났습니다. 마음가짐을 어떻게 임해야하겠다는 것도 없었죠. 감독님의 말을 빌리자면 "소영은 너무 소영이었고 동현은 동현이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모든 촬영이 자연스럽게 진행됐습니다. 

 

MT같다고 말하는 이유는 농어촌 체험하는 공간 전체를 대여해서 촬영했기 때문입니다. 한 건물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이 같이 생활을 했습니다. 감독님이 먹는 것에 진심인데 케이터링이 원활하지 않은 곳이다보니 감독님 식구분들이 와서 직접 밥을 해주셨어요. 실제 감독님 외할아버지가 강원도 양양 분이시기도 했구요. 감독님 외할아버지가 자랐던 마을에서 촬영했습니다. 엑스트라 분들이 마을 분들이었는데 영화를 위해 감독님 일가족이 총출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에 나왔던 무덤도 감독님의 실제 친족분 무덤이었죠.

 

 

▲강 : 영화를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크게 눈에 띄는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먼저 디지털이 아닌 16mm 필름 카메라로 찍은 것. 한국과 캐나다의 화면 비율 차이. 한국에서는 화면 비율이 좁다가 캐나다에서 넓어지더라구요. 그리고 롱테이크씬. 오프닝시퀀스에 나온 목소리가 소영의 죽은 남편이다보니 카메라 기법이 시점과 관련이 있을 것 같고, 등장인물과 심리 변화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최 : 감독의 의도라 자세하게 설명하진 못하지만 감독이 카메라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해 누구의 '시선'인가에 대해서 아빠의 '시점'으로 정하고 나서 카메라 감독의 고민이 사라졌었습니다. 아빠가 있다면 누굴 쳐다볼 것인가. 그것을 떠올리고 다시 보면 주인공 시점 샷이 없어요. 다 제 3자의 시점입니다. 영화가 다른 인물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게 묘미였습니다. 필름으로 찍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강 : 필름으로 촬영을 하면 현장에서 확인하지 못하는 불안감도 있었을 텐데요. 특히 롱테이크 같은 장면은 궁금하잖아요. 

 

▲최 : 과거의 무용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듯 합니다. 거의 대부분 롱테이크로 찍었기 때문에 감정이 자연스럽게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무용을 하면서 훈련한 방식으로 영화를 찍어서 스스로 장점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무용을 할 때 무대에 오르면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 하는 것을 못하기 때문에 롱테이크가 이와 비슷했고 도움이 됐습니다. 촬영을 끊어서 갔으면 감정을 끌어낼 수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내 연기를 바로 확인 할 수 없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감독님을 믿고 가면 됐거든요. 다른 촬영 할 때 확인해보면 너무 자의식이 커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작은 모습들도 중요하게 느껴져서 흐름 안에 들어가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어서요. 스스로가 몰입하기가 힘들어지는 데 필름 촬영 롱테이크는 이 부분에서 상쇄되는 게 있었습니다. 

 

▲강 : <최승윤 배우 만들기>를 보면 흥부자이고, 끼가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철학원에선 성격이 급하고, 승부욕이 강하다는 말도 들으셨잖아요. 실제 성격은 어떠신가요? 연기와 무용은 '일란성' 쌍둥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한 것인지? 얼핏 생각했을 때에는 몸을 쓴 다는 점에서 비슷하고, 치열하게 노력해야한다는 점에서는 기본값이라도 차이는 있을 것 같습니다. 배우는 어느정도 궤도를 오르기 전까지는 선택권이 없어서 괴로워 하지 않았는지요?

 

 

▲최 : 연기와 무용은 모두 몸을 매체로 하기 때문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고 그래서 쌍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얼핏 했을 때는 다른 줄 알았지만 같은 측면이 많았거든요. 말을 하느냐 안하느냐 차이 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 연기와 무용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단계라 제 생각을 공유할 단계는 아닌듯 합니다. 그래서 항상 스스로를 궁금해하는 편입니다. 

 

▲강 : 영화에서 동현의 선생이 가계도를 그려오라면서 "나는 과거를 존중한다. 우리가 온 곳을 모르면 앞으로 간 곳도 모를테니까"라는 말을 하는데요. 마얄 엔젤로가 한 말로 유명하죠. 마야 엔젤로는 미국 화폐에 얼굴이 새겨진 인물이지요. 인권운동가이자 작가이자 배우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여성입니다. 

 

미래 지향적으로 살아야한다고 많이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과거를 반추하지 않고 미래를 좇기만 한다면 진정한 성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라이스보이 슬립스>도 성장 영화라고 볼 수 있는데요. 동현도 성장을 했지만 소영도 성장을 합니다. 소영은 과거에 남편이 떠났던 충격적인 사건으로부터 최대한 도망가고 싶어합니다. 그 사건으로 누구보다 고통 받았을 사람이 소영이었거든요. 

 

동현이 아빠이자 소영의 남편에 관련된 건 집안에서 터부시 되는 질문입니다. 소영이는 화제를 회피합니다. 표면적인 서사로만 보면 동현이 아빠가 조현병으로 인한 극단적인 선택을 숨기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소영이야말로 그때 받았던 고통, 슬픔, 충격을 마주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소영이 남편의 묘소에 가서 소리를 지르는 데 온전히 자신의 고통과 슬품, 충격이 배출되는 경험이라고 보였습니다. 가장 회피하고 싶었던 것을 회피하지 않게 됐다는 점에서 소영도 성장했습니다. 동현과 소영의 성장포인트가 어디에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최 : 마야 엔젤로가 이야기한게 '온 곳을 모르면 앞으로 갈 길도 모른다'는 것을 성장으로만 해석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동현은 극중에서 확실히 성장합니다. 알아야만 했던 한조각을 얻었기에 성장한 게 맞지만, 소영은 성장이라는 단어 대신에 다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 동현이 자신의 아빠에 대해서 물어 볼 때 소영은 회피하고 싶은 게 맞습니다. 일관되게 어린 동현이가 물어봤을 때 잘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는걸 보면 정말 몰랐던 것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지요. 마지막에 시아버지가 이야기했을 때에도 소영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아팠잖아요"뿐이었거든요. 남편을 이해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지요. 동현이 자신의 아빠를 궁금해 할 때, 이야기 할 수 없는 사람. 흉보고 싶은 사람은 아니라고 동현에게 설명해줬어야 하지 않을까요?소영이가 병을 얻어서 그런 시간이 없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소영이 다른 선택을 하게 된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소영은 성장보다는 쉽지 않은 일에 ‘용기’를 낸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강 : 집에 가자라는 대사만 보면 울컥하게 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집이라는 건 관객마다 해석이 다양하겠지만 진정한 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최 : 내 마음이 쉴 수 있는 곳. 공간, 사람 상관 없이. 내 마음이 정말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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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희 기자 brightman@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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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밸류업’ 가이드라인 공개…‘쪼개기상장’ 시장에 설명 권고

2024.05.02 16:14:17

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금융당국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인 '기업가치 제고계획' 수립 원칙과 세부 작성법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습니다. 밸류업 당사자로 새로운 형태의 공시라는 숙제를 받아든 상장기업에 길라잡이를 제시해 이행 초기 혼란을 최소화하고 적극적인 밸류업 프로그램 동참을 독려하기 위한 조처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기업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배구조'를 한국증시 주요 저평가 요인중 하나로 지목하고 개선방안 공시를 권고하면서 일선 기업들의 수용성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금융위원회는 2일 한국거래소·자본시장연구원과 함께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세미나를 열고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안)'을 공개했습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기업가치 제고계획 흐름도를 '기업개요-현황진단-목표설정-계획수립-이행평가-소통'으로 구성했습니다. 먼저 '기업개요'에는 기업가치 제고계획이 그 자체로 기업에 대한 완결성 있는 보고서로 기능할 수 있도록 업종, 주요 제품·서비스, 연혁, 재무상태 등 기본적인 정보를 기재합니다. '현황진단'은 기업의 사업현황에 대해 시장환경·경쟁우위요소·리스크 등을 입체적으로 진단하고 다양한 재무·비재무 지표 중 중장기적인 가치제고 목적에 부합하는 핵심지표를 선정·분석하는 단계입니다. 주요 재무지표는 ▲PBR(주가순자산비율), PER(주가이익비율) 등 시장평가 ▲ROE(자기자본이익률), ROIC(투하자본이익률), COE(주주자본비용), WACC(가중평균자본비용) 등 자본효율성 ▲배당(금액·성향·수익률), 자사주(보유분·신규취득·소각내역), TSR(총주주수익률) 등 주주환원 ▲매출액·영업이익·자산 증가율 등 성장성 ▲자산 포트폴리오(영업·비영업자산), FCF(잉여현금흐름), 부채비율 등 기타로 분류해 다각적인 지표를 예로 제시했습니다. 비재무지표는 지배구조 관련 일반주주 권익제고, 이사회 책임성, 감사 독립성을 위한 여러 요소를 기존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항목 및 기관투자자 등 시장참여자가 주목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합니다. 가령 상장기업이 성장성 높은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한 뒤 분할자회사를 상장하는 모자회사 중복상장 이슈가 있다면 기업은 모회사 일반주주 권익을 보호·증진하는 계획을 설명하거나 물적분할 후 분할자회사를 비상장 완전자회사로 유지하는 계획을 밝히는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쪼개기 상장'은 핵심사업부를 자회사로 쪼개 신규상장하면서 모회사 기업가치를 떨어뜨리고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가 훼손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습니다. 또 다른 예로 상장기업 지배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의 비상장 개인회사 보유 이슈가 있는 경우 상장기업과 비상장 개인회사간 이해상충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정확한 사실관계와 향후 계획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통한 감사 독립성 강화도 좋은 예시로 기업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밝힐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목표설정'에서는 일시적·임시방편적 개선이 아닌 중장기 목표를 제시합니다. 중장기적 사업전략없이 단기적인 주가부양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기업가치 제고계획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가이드라인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계량화된 수치로 명료하게 제시하는 것이 권장되지만 정성적인 서술 또는 구간제시 등 다양한 방법의 목표설정도 가능합니다. '계획수립'에서 기업은 목표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작성하며 사업부문별 투자, R&D확대, 사업 포트폴리오 개편, 자사주 소각·배당 등 주주환원, 비효율적인 자산처분 등 다양한 사업전략적·재무적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기업은 연 1회 공시 사이에 어떤 노력을 이행했는지 잘된 점과 보완 필요사항을 기재(이행평가)하고 주주·시장참여자 의견이 경영에 반영될 수 있는 공식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해 쌍방향 '소통'을 확대합니다. 상장사 이사회는 경영진이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적절히 수립·이행하는지 감독하고 필요하다면 이사회 보고, 심의 또는 의결을 거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금융위는 강조합니다. 공시는 연 1회 등 주기적 공시와 외국인투자자를 위한 영문공시 병행이 권장되며 예고공시도 가능합니다. 이번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해설서 제정안은 최종 의견수렴을 거쳐 이달중으로 확정·발표될 예정입니다. 이후 준비가 되는 기업부터 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KIND)을 통해 공시를 시작합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축사에서 "기업 밸류업은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이며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은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와 유관기관은 밸류업 세제 지원방안 마련·발표,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 연계 상장지수펀드(ETF) 상장, 우수기업 표창 등 과제를 차질없이 추진하며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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