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2021년 가을 오랜만에 배우 이영애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구경이>가 방영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영애의 극 중 직업이 ‘보험조사관’이라길래 평소 드라마를 그리 즐겨보지 않던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긴 보험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영화나 드라마에 보험 관련 직업이 등장한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주인공 ‘구경이(이영애 분)’는 예전에는 경찰이었으나 어떤 사건이 계기로 경찰직을 그만둔 후 보험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보험조사 업무를 하는 동안 그녀는 경찰 재직 시절부터 쌓아온 탁월한 사건 해결 능력과 날카로운 촉을 활용해 보험금을 부당하게 타내려는 의심이 드는 이들을 명탐정처럼 골라내 부당수급을 막는 모습을 보여준다.
1, 2화에서 보험조사관 구경이는 실종된 어느 보험 가입자의 사망보험금 지급 건을 조사하게 되는데, 실종 사건이 잔인한 연쇄살인 사건으로 바뀌면서 드라마 초반부터 매운맛이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실종자의 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보면서 그런 의문을 가진 시청자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망하면 병원에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는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고인의 사망을 인정하게 된다. 고인이 피보험자일 때 보험사는 그 자료를 근거로 보험계약에 명시된 사망의 종류-일반사망, 질병 사망, 재해 사망-에 따라 보험금을 지정된 수익자에게 지급한다.
물리적으로 확인된 사망 외에 실종자에 대해 사망 가능성은 매우 높으나 명확한 확증이 없을 경우 이해 관계인의 불안정한 법률관계 해소를 위해 우리나라는 실종선고제도를 두고 있다. 부재인의 생사가 불분명한 경우 이해 관계인에게 해당하는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후견인, 검사의 청구가 있으면 일정 절차를 거쳐 법원에서 사망하는 것을 실종선고라 하고, 실종 선거를 받은 후 법원에서 인정한 실종기간이 끝나는 때를 사망으로 간주한다. 이 경우 사망보험금 청구도 가능해진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가입한 보험이 악용되는 사례가 발생하자 보험조사관이라는 직업이 생겼다. ‘보험조사관’은 과연 드라마 속 구경이처럼 탐정에 준하는 일을 하는 건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굉장한 능력을 갖추어야만 보험조사관이 되는 건 아닌지, 이런 궁금증이 피어날 법도 하다.
지난 11월 30일 ‘보험 사기 방지법’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를 통과했다. 이 특별법은 여야 간 특별히 이견이 없는 만큼 올해 안으로 국회 본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내용을 살펴보면 보험업 관련 종사자가 사기행위를 벌이면 가중 처벌하고 보험 사기를 벌인 병원, 정비업체, 보험대리점 등의 명단을 공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보험 사기 알선 및 권유 행위를 처벌하고 보험 사기 목적의 강력범죄는 가중 처벌하는 등 보험 사기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 대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2년 보험 사기 적발 금액은 1조 818억원에 달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겼다고 한다.
보험 사기 사례는 드라마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매우 다양하다. 고의적인 보험사고 유발 행위를 비롯해 통증 등을 과장하여 허위로 입원하는 사례, 사고 차량이 아님에도 차량파손을 보험으로 처리하거나 병력을 숨기고 보험에 가입하는 등 보험금을 부당하게 수취 또는 보험료를 덜 내는 행위 모두 보험 사기에 해당한다.
보험 사기가 심각한 이유는 직접적인 피해도 피해지만 보험 사기의 증가와 함께 보험금이 부당하게 새어나가 이는 결국 보험료의 인상으로 이어져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해서다. 금융감독원은 보험 사기를 단속하기 위해 보험 사기 방제센터를 설립했으며 IFAS(보험 사기 인지 시스템), VL(협의자 간 연계 분석 기능) 등 첨단시스템을 통해 보험 사기를 분석하여 보험 사기 적발에 힘쓰고 있다.
보험조사관은 보험 사건이 발생하면 보험 사기가 없었는지를 조사하는 직업이다. 일부 보험사는 자체적으로 내부 보험조사관 팀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사설탐정이나 손해사정업체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신용 정보 보호법 규제로 변호사나 법무사에 의해 고용된 법률 사무 보조원이 탐정과 유사한 일을 한다. 드라마 속 구경이는 전직 경찰이라는 경험이 있어 보험조사관으로 매우 적합한 캐릭터라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탐정 같기도 한 보험조사관은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나라에는 ‘보험조사 분석사’라는 공인 자격증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2016년에 도입돼 국가자격증은 아니지만 보험범죄 조사 인력의 전문성을 평가하기 위해 보험연수원에서 시행하는 민간자격이다. 사실 보험조사관이 되기 위해 의무적으로 이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매해 예상을 웃도는 숫자가 시험에 응시하는 데다 전, 현직 경찰과 검찰 조사관들도 상당수 이 시험에 응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나 영국, 가까운 일본만 해도 조사관들이 경찰과 긴밀하게 밀착해 보험 사기 해결에 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점점 나아지고는 있으나 아직 보험 사기를 현장의 민간 보험조사관에 상당 부분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보험 사기가 강력범죄 연관성이 커지고 지능적으로 변화하는 만큼 추후 전문 보험조사관 양성과 충원이 더 필요해 보인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악귀> 에서도 살인을 사고로 위장해 보험금을 타내려는 보험 사기가 등장했는데, 비단 드라마에만 등장하는 허구의 스토리가 아니라 뉴스 등을 통해 접하는 현실 보험범죄 사례는 결코 적지 않다.
그렇다고 보험조사관이 매번 강력범죄에 해당하는 보험 사기에만 투입되는 직업은 아니다. 고객이 보험금 청구를 위해 제출한 서류만으로 보험금 심사가 어려우면 추가적인 사실 확인을 위해 손해사정사가 직접 방문하거나 보조인 자격으로 보험조사관을 보낸다. 종종 보험조사관 방문을 받은 고객으로부터 마치 취조당하는 피의자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호소를 듣기도 하는데, 그때 고객은 당황하지 말고 먼저 보험조사관의 보험조사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험조사관에게 고객의 권리를 침해할 법적 자격은 없기 때문에 조사관이 조사 이상의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면 이를 근거로 소비자는 조사관을 교체할 수 있다. 또한 고객이 직접 독립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모든 비용은 보험회사가 지불해야 하므로 상황에 따라 보험회사 소속 또는 위탁된 보험조사관이 아닌 고객이 선임한 손해사정사가 업무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학창 시절 즐겨 읽은 추리소설 때문인지 설계사로 일하는 동안 보험조사관에 로망을 품은 적이 있다. 굉장한 신념이 있었다기보다는 어딘가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공정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일이 가장 어려워 보였다.
보험조사관이 방문은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의미기 때문에 유쾌할 수는 없다. 보험조사관의 방문 횟수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은 현장에서 가입자와 함께 보험을 설계하고 청약을 진행하는 설계사가 완전 판매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일 테다. 이는 나아가 가입자의 권익 보호와도 연결된다. 탐정처럼 일하는 것도 멋지지만 탐정이 필요 없는 사회가 사실은 더 근사하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