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만약 세상에 태어나기 전 내가 엄마 배 속에 있는 태아일 때 나의 탄생을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태아의 건강에도 문제가 없고 아홉 달 동안 이어진 부모의 세심한 관리에도 불구하고 어떤 아기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보험설계사라는 직업 외에도 일본어 문학 서적 번역을 겸하고 있다. 최근 작업 중인 작품은 몇십 년 후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SF 소설이다. 그때에는 안락사와 같이 나의 죽음을 합법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의 출생도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 선택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이야기가 펼쳐진다.
2023년 6월부터 우리나라의 민법과 행정 분야에서 나이를 따질 때 '만 나이'로 통일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나이 계산은 그동안 다른 국가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복잡해서 1975년 음력 6월생인 나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는 한국식 세는 나이로 하면 올해 50살이지만, 현재 연도에서 자신의 출생 연도를 뺀 숫자를 나이로 하는 연 나이 셈법으로는 49세이며, 마지막으로 최근 통일된 만 나이로 계산하면 48세가 된다.
즉 만 나이는 태어난 해를 0세로 지정하고 이후 해가 바뀌어 생일이 될 때마다 나이를 추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세 가지 방식 중 가장 작은 숫자가 산출된다. 법적 나이로 나는 아직 50대가 아니라 40대인 셈이다.
나이를 계산하는데 이런 여러 가지 방법이 굳이 필요하나 싶은 데다 나이를 물어보면 몇 살이라 답해야 할지 여전히 알쏭달쏭하지만, 보험업계 시각으로 보면 보험 나이 계산법은 또 달라지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해진다.
보험사는 계약 시 보험의 대상이 되는 피보험자의 만 나이도 연 나이도 아닌 제3의 개념인 ‘보험 나이’를 사용하며 보험 나이는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험 나이에서는 계약일 당시 피보험자의 실제 만 나이를 기준으로 6개월 미만의 끝수는 버리고 6개월 이상의 끝수는 1년으로 셈해 이후 매년 계약 해당일에 나이가 증가한다. 이런 방식을 도입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나이가 한 살 늘어날수록 보험료가 5~10%씩 증가하기 때문에 가입 시기에 따라 나이로 인한 가입자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려 만들어졌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치는 건 엄마 배 속에 태아로 있었던 기간도 존엄한 개별 존재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태아 시절의 기억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데 그 기간을 완성형 인격체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중년을 지나 노년에 점점 다가가고 있어 통일된 만 나이로 내 나이를 답하면 어쩐지 젊어진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태아 시절을 중요한 의미로 두고 있지 않은 듯 해 한 아이의 엄마로서 조금 쓸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 보면 임신 기간이 지금까지의 삶을 통틀어 가장 충만했고 동시에 가장 커다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시기였던 덕이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런데 소설에서처럼 그토록 기다리던 내 아이가 뱃속에서 출생 의사를 거부할 수도 있다니 그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출산을 앞둔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많은 준비를 하게 되는데 태아 보험 가입도 그중 하나다. 태아 보험은 말 그대로 배 속에 있는 때부터 태어난 후까지 아이에게 일어날지 모르는 신체적 위험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들어두는 보험이다. 임신 10주부터 35주 사이에 가입할 수 있으며, 출산 후 아이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 출생아 형으로도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모성 보장과 같이 산모도 함께 보장받을 수 있는 항목이 있고 태아의 건강 상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임신 초기에 가입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특히 임신 20주 이후, 또는 출생체중이 500그램 이상으로 출생 후 28일까지를 주산기라고 하는데, 주산기 이전에 가입하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만삭아의 경우 주산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신생아 호흡곤란 증후군이라든지 패혈증, 폐렴, 출혈성 질환, 혈소판 감소증 등이 드물게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조산아의 경우 미숙아 망막 병증, 뇌성마비 등의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태아 보험으로 병을 없던 것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혹 아이가 만성질환을 안고 태어나면 이후의 보험 가입이 당분간 혹은 최악의 경우 영구적으로 가입이 어려울 수 있어서 임신 후 태아 보험 가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엔 태아 보험의 보장 시기를 일반 보험 가입이 가능한 15세, 혹은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만 20세를 만기로 산정하는 설계를 많이 했다. 보험 만기 후 일반 보험에 재가입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보험은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표준체의 몸으로만 가입할 수 있고 병력이 있는 사람이 가입하는 유병자 보험은 일정 연령 이상의 가입자가 대상이 된다.
즉 어린이 보험의 만기를 15세 또는 20세로 정했는데 만약 어린 시절에 걸린 병으로 오래 치료를 요하면 보험 만기 이후의 보장은 전부 사라지는 데다 장기간 보장 자산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태아 보험이라 하더라도 경험생명표의 기대여명에 기반해 생애 전반을 아우르는 설계가 현명하다.
다행히도 아직은 뱃속의 태아에게 생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 방법론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탄생 이후의 삶의 여정이 죽기 전까지 내 선택의 결괏값이라 한다면 태어나는 일까지 아이의 선택에 맡긴다는 건 가혹한 일이 아닐까? 내가 선택한 임신도 출산까지 수 많은 고민을 수반하고 때로 턱이 높은 난관을 넘어야 하는 일이다. 생의 자기 결정권은 출생 유무의 선택이 아니라 삶을 내 자유의지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갈 권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