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더뉴스 장승윤 기자ㅣ‘인생을 울리는’ 신라면이 불닭볶음면 매운맛에 울고 있습니다. 지난해 삼양식품[003230]의 영업이익은 농심[004370]을 넘어섰습니다. 삼양식품의 시가총액(6조6000억원)은 농심(2조1000억원)의 3배 이상으로 벌어졌습니다. 꺾이지 않는 불닭볶음면의 기세가 삼양식품을 매 분기, 매해 역대급 실적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신라면'을 통해 라면 업계 1위에 올라선 농심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입니다. 한계에 봉착한 내수 대신 해외로 활로를 뚫고자 하는 농심이 선택한 전략 제품이 '신라면 툼바'입니다. 올해 메인스트림 입점과 활발한 마케팅으로 신라면 툼바의 글로벌 인지도를 높인 뒤 내년 늘어날 생산량을 발판 삼아 성장세인 미국 라면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산입니다.
농심 해외 매출 비중 40%, 삼양식품의 절반..글로벌 전략 제품 ‘툼바’
27일 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지난해 매출이 3조4387억원으로 전년 대비 0.8% 증가하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1631억원으로 전년 대비 23.1%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매출이 전년보다 2.1%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10.6% 감소한 수준이었으나 밀가루, 팜유 등 원재룟값 인상 등에 하반기 실적이 저조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지난 4분기 판촉비 증가와 더불어 일회성 비용(통상임금충당금) 90억원이 발생하면서 영업이익이 떨어졌습니다. 해외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미국 2공장 신규 라인 가동에 따른 제조가공비 등 초기 고정비 발생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에 4분기 해외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약 50% 줄었습니다.
농심의 실적은 경쟁사인 삼양식품과 비교가 됩니다. 삼양식품의 지난해 매출은 1조7300억원으로 농심의 절반 수준이지만 영업이익은 3442억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133% 늘었습니다. 농심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라면 회사의 실적 차이는 해외 매출 비중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물론 국내 라면 시장에서 농심의 지위는 견고합니다. 농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농심은 1991년부터 34년간 국내 라면 시장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신라면 국내 매출은 5000억원으로 불닭볶음면 국내 매출(1600억원)보다 3배 이상 많습니다. 국내 시장은 여전히 '신라면 천하'입니다.
해외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한국 라면 수출액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0억달러(약1조4000억원)를 넘은 가운데 불닭볶음면이 선봉에서 K라면 열풍을 이끌고 있습니다. 지난해 삼양식품 영업이익률은 20%로 농심(4.7%)을 압도합니다. 삼양식품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은 지난해 3분기 기준 77%로 농심(약 40%)의 거의 두 배에 달합니다.
한국 밖 불닭볶음면은 신라면과의 대결에서도 승리했습니다. 2023년까지만 해도 해외 매출은 신라면이 약 7000억원, 불닭볶음면이 6800억원으로 신라면이 근소하게 앞섰지만 지난해는 불닭볶음면 매출만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됩니다.
농심 역시 2021년 신라면 해외 매출이 국내를 넘어섰으며 신라면을 포함해 짜파게티, 너구리 등 해외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먼 제품들입니다. 신라면은 내년이면 출시 40주년을 맞습니다. 2020년 신라면 블랙이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라면'에 선정되며 반향을 일으켰지만 대중적인 파급력은 크지 않았습니다. 농심의 고민은 깊어졌습니다.
'신라면 툼바'는 농심이 고민 끝에 내놓은 신제품입니다. 농심은 신라면에 우유와 치즈·새우·베이컨 등을 넣어 만드는 '모디슈머' 레시피 신라면 투움바를 제품으로 구현하면서 '국물 없이 즐기는 신라면'을 신라면 툼바의 매력으로 꼽았습니다. 출시와 동시에 신라면 툼바를 글로벌 전략 제품으로 설정했습니다.
이 제품은 매콤 꾸덕꾸덕한 맛이 호응을 얻으면서 출시 이후 4개월 동안 국내에서 2500만개 팔려나갔습니다. 국내 월매출은 약 60억원으로 라면 신제품 출시 초기 월평균 판매액 30~40억원과 비교하면 양호하다는 평가입니다. 농심은 신라면 툼바 출시 당시 "한국형 크림 파스타의 대표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농심·삼양식품 생산량 확대해 '최대 시장' 미국 채널 입점 속도
삼양식품과 농심은 해외 중에서도 미국을 포함한 북미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미국 라면 시장은 규모가 크고 한국 라면 수요가 늘고 있는 반면, 현지 내 한국 라면의 전반적인 점유율은 아직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으면 남미 등 인근 국가로의 진출 또한 용이합니다.
삼양식품 전체 매출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미주 비중은 2023년 20%에서 지난해 28%로 오르며 중국을 제치고 최대 시장으로 부상했습니다. 농심은 2023년 해외 매출의 36%(약 6200억원)를 미국에서 벌어들였습니다. 미국 법인 매출은 지난해(3분기 누적 기준) 농심이 3970억원, 삼양식품이 28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해외에 공장이 없는 삼양식품은 밀양1공장을 통해 연간 최대 6억개의 라면을 생산해 수출하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 내 2공장이 완공되면 삼양식품의 연간 최대 수출 물량은 11억6000만개까지 늘어나게 됩니다. 이를 통해 나날이 증가하는 미국과 유럽 물량을 상당 부분 충족시킬 수 있을 전망입니다.
불닭볶음면의 기세가 높지만 농심은 현지에 생산시설(LA 1·2공장)을 가진 게 강점으로 꼽힙니다. 현지 공장 보유 시 관세, 물류비 등을 절감해 제품 및 마케팅에 재투자할 수 있습니다. 인기와 성장성을 지닌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현지 수요에 빠르게 대응해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는 얘기입니다.
현지 점유율도 농심이 앞섭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미국 인스턴트 라면 시장 내 농심의 점유율은 25.4%로 일본 토요스이산(47.7%)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입니다. 삼양식품은 4위입니다. 일본 라면의 글로벌 인기가 여전한 가운데 농심은 2030년까지 '미국 라면 시장 1위, 매출 15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농심은 지난해 11월부터 미국 2공장 일부 라인에서 신라면 툼바 현지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12월부터는 아시안마켓을 위주로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월간 판매액은 약 20억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오는 6월부터 미국 최대 유통체인인 월마트에 입점할 예정이며 온라인몰에서는 이미 판매되고 있습니다.
김태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농심 라면이 월마트 내 메인 매대로 이동하면서 매대 크기가 약 5배 커지고 SKU(상품 수)도 약 10개 늘었다. 신라면 툼바 출시 효과에 따른 미국 판매 실적 개선 기대감이 유효하다"며 "상반기까지 2공장 라인 증설에 따른 고정비 증가가 예상되나 하반기로 갈수록 가동률이 상승하며 수익성 개선 폭이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적극적인 스타 마케팅도 예고했습니다. 신라면 툼바 국내 모델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난 에드워드 리 셰프를 미국 등 글로벌 광고에 활용할 예정입니다. 오는 3월에는 미국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사각용기면 타입의 신라면 툼바를 출시하며 현지화에도 힘을 줍니다. 비국물 라면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북미를 넘어 매운맛 선호도가 높은 남미 진출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아울러 농심은 부산에 녹산 수출전용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 공장 완공 시 농심의 연간 수출용 라면 생산량은 기존의 부산공장과 합쳐 현재의 2배인 연간 10억개로 증가할 예정입니다. 2026년 하반기부터는 국내 최다인 연간 27억개의 글로벌 공급능력을 갖출 전망입니다.
농심 관계자 “녹산 수출전용공장을 통해 연간 5억개 가량 생산량이 증가할 예정”이라며 “수출전용공장이 완공되면 동남아시아나 유럽 시장 등에 신라면 툼바를 공급하고 알려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