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정재혁 기자] “첫 직장인 노동 관련 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수습을 마치고 4개월 만에 부당해고를 당했습니다. 언론사에서, 그것도 노동 문제를 다루는 언론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금융권 최대 규모 노동조합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에서 1년째 근무 중인 하태욱(31) 홍보실장은 노조가 직접 채용한 비은행원 출신 노동자다.
그는 기자로 일했던 경력을 살려 노조의 활동과 소식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기자들의 취재 요청에 응대하는 홍보 업무를 맡고 있다.
노동 관련 매체에 잠시 몸담았던 것을 계기로 노조에서 일하게 됐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해당 매체에서 4개월 만에 부당해고를 당한 아픔을 안고 있었다. 그는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노조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해 준, 아프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털어놨다.
◇ ‘노동조합’이라는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금융권 노조를 취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은행 노조에는 은행원이 아닌 사람들도 노동자로서 일하고 있다. 하태욱 실장도 그들 중 한 명으로, 현재 KB국민은행지부에는 하 실장을 포함해 총 5명의 ‘이방인’들이 노조를 위해 ‘열일(열심히 일함)’ 중이다.
“홍보를 담당하는 저를 포함해 노무사, 사무차장 두 분, 운전 수행을 하시는 분 등 총 5명의 비은행원 출신 분들이 현재 노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따지고 보면 ‘노조’라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인 셈이죠.”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두인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묻는 질문에 그는 “나쁘지 않다”고 답했다. 지방 출장이나 야근이 적지 않은 편이지만, 업무 외적인 스트레스가 없고 일 자체도 재밌어 크게 불만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조합원 대상 교육 일정이 몰린 시기에는 1주일에 3일 이상 지방 출장이 잡혀 개인적인 약속을 잡기 어렵죠. 하지만, 교육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이 재밌고 배우는 점도 많아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습니다.”
다만, 은행원 출신이 아니다 보니 은행 업무 전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특히, 기자들이 취재차 이것저것 물어볼 때, 즉각적인 답변을 하지 못 하는 경우가 있어 답답하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전화로 뭔가 물어왔을 때, 처음에는 다른 노조 분들에게 물어보고 답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요새는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기자들 질문에 즉각 대답하는 경우도 많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 노조에 대한 부정적 시선들..들어와서 경험해 보니
하 실장은 노동 관련 매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긴 했지만, 노동 문제에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글쓰고 인터뷰하는 것이 좋아 기자라는 직업을 꿈꿨고, 대학 졸업 후 우연한 기회로 노동 잡지에서 기자로 일하게 됐다.
하지만 취업의 기쁨도 잠시, 그는 수습을 마친 4개월 만에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았다. 다음 달에 월급을 더는 맞춰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기자가 광고를 통해 월급의 10배를 벌어와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그는 민사 소송까지 벌인 끝에 지난 2016년 7월 최종적으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2심 판결(2016년 7월) 때 500만원을 10개월 간 나눠 받기로 조정을 했는데, 회사로부터 첫 달 50만원 받은 뒤로 소식이 없어요. 법적으로 제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때 노조가 있는 회사에서 일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됐죠.”
그 후로 하 실장은 ‘노조가 있는 회사’가 아닌 ‘노조’에서 직접 일을 하게 됐다. 1년 간 일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 안에 들어와서 경험하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고 답했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노조는 기본적으로 직원들의 이익과 권리를 대변하는 조직이면서도, 한편으론 사회적 정의 실현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집단입니다. 상충되는 두 가지 목표로 인해 노조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습니다.”
KB국민은행 노조를 비롯해 대형 노조들을 ‘귀족 노조’로 칭하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 하 실장은 일정 부분 공감하지만, 노조 자체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높은 연봉과 복지를 누리는 금융권 노조에 대해 대중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조차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노동자로 부당한 일을 겪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이웃들을 위해 노조는 꼭 필요합니다. 이 점은 꼭 알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