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와 각종 뉴스에는 맛집 정보가 넘쳐 납니다. 보고 찾아가면 좋은 맛집도 있지만,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담백한 식당평’은 없는 걸까요. 꼭 맛집은 아니더라도 마음 편하게 식사할만한 동네 식당이 있지 않을까요. 인더뉴스 라이프&스타일팀이 새로운 코너 <아내와 외식하기>를 선보입니다. 제값 주고 사먹은 음식에 대한 진짜 정보들입니다. [편집자주]
[인더뉴스 라이프&스타일팀] 임신을 한 아내는 한동안 뭐가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입덧이 끝나고 나니 몸이 더 무거워지고, 그저 피곤하고 졸리단다. 그렇게 한 달. 어느 날 아내는 “돈암동으로 와”라고 카톡으로 명을 내리셨다.
뭘 먹을까. 사실 성신여대 입구 근처는 결혼 전 연애를 하면서 자주 왔던 곳이다. 아내의 친정과도 가까웠고, 대학가 느낌이 나면서도 은근히 물가가 싸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여느 대학 앞 느낌보다는 동네 마실 같은 느낌이 난다는 점도 좋다. 홍대의 번잡함, 신촌의 약간은 어색한 리모델링 분위기, 이대 앞 특유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데이트 할 때 이따금씩 왔던 ‘돈까스’집에 왔다. 대개 카드값 납기일 직전에 오는 경우가 많다. 돈이 가장 없는 시기다. 카드값은 내야 하는데 돈은 없고, 월급은 곧장 ‘사이버 머니’가 되고 만다. 한 때 싸이월드의 유행 댓글 ‘퍼가요’가 카드값에 빗대어 쓰였을 때,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을 했던 것이 그렇다. 좋은 것 먹고 싶고, 괜찮은 선물 해주고 싶었지만, 열정만 있고 돈은 없던 총각 시절, 나는 아내와 돈까스를 먹고 맥주에 새우깡 서비스 안주를 함께하면서 추억을 키워나갔다.
어째 말하고 보니, 아버지 세대 때의 이야기 같이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절대적 가난에서만 좀 벗어났을 뿐, 삶의 굴레라는 측면에서는 아버지 세대의 짐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집값은 오르고, 물가는 뉴욕 뺨친다. 오르지 않는 것은 내 월급뿐이라고 하던가. 그럴 때 값싸면서도 맛집이 있는 대학가는 더할나위 없이 반갑다. 그리고 또 그 대학가에서 흔쾌히 해주는 애인이 그리도 고마울 때가 없다. 그 애인은 이제 아내가 되었다.
오랜만에 찾은 온달왕돈까스는 인산인해였다. 앞에 세 팀이 대기중이었다. 기다렸다가 정식 2인분을 시켰다. 정식이라는 단어가 정겹다.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갔던 경양식집에서 시켰던 바로 그 정식이다. 경양식의 뜻이 ‘간단한 서양식 일품요리’라는 것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표준국어대사전을 보고 나서였다. 이렇게 상식이 없다니!
우선 수프가 나온다. 예전에 먹었던, 바로 그 수프다. 나이가 들고 나서는 호텔에서 맛있다는 수프도 제법 먹어봤지만, 이 맛의 추억에는 비길 수 없다.
정식에는 생선까스와 돈까스, 함박스테이크, 계란, 야채가 있다. 때로는 새로운 맛을 찾아 치킨까스를 먹을 때도 있다. 치킨을 베이스로 한 ‘까스’에 양념치킨 소스를 발라서 만든 것이다. 맛있기는 하지만, 돈까스의 ‘추억 돋는’ 맛에는 못 미친다.
온달왕돈까스에서는 통닭과 생맥주도 판다. 4인 가족의 경우에는 통닭하나 시켜서 나눠먹으면 돈까스와 더불어 푸짐한 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2인(아기까지 3인)이라서 통닭은 먹지 않았다. 500cc 생맥주 역시 아내는 못 먹고, 나 혼자 입가심 정도만 했다. 톡 쏘는 맛이 시원하다.
데이트 이어가기
온달왕돈까스는 음식을 마치고 나면 인스턴트 커피를 한 잔 마시거나 요구르트를 한 개 먹을 수 있다. 당연히 아내는 요구르트를 원했고, 한 개씩 먹었다. 예전에는 요구르트 하나면 청량감이 몸을 가득 채웠는데, 이제는 살찐 아저씨라 요구르트 하나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 더 먹었다가는 “살찐다”는 아내의 불호령이 무섭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아내는 빙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근처에 있는 카페 아이스베리에 갔다. 10여년 전, 대학가를 강타했던 아이스베리가 이제는 조금 더 고급스러운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가격은 역시 싸다. ‘킹 오브 빙수’의 우람함 역시 그대로였다. 2인분 빙수를 시켜 아내와 함께 먹었다.
“일단 아이스크림을 먼저 먹어야 다음에 먹는 빙수가 느끼하지 않다”는 설명에 아내는 “작업의 고수였나보다”면서 이죽거렸다. 지금이야 번듯하게 이야기를 하지만, 그 옛날 아가씨들에게 말도 변변히 못 붙이던 ‘쪼다’였다는 사실을 왜 당신만 모르는 것일까.
아이스베리를 안 갈 경우에는 인근에 있는 공차 밀크티를 먹거나, 국민은행 뒤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셔도 되겠다.
그런데, ‘돈까스’가 아니라 ‘돈가스’가 표준어다. 하지만 돈까스라 불러야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래서 온달왕돈까스라고 업주는 표기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