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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인터뷰

‘언니네이발관’ 출신 게임社 부사장, 지금은 EDM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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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ly 11, 2019, 06:07:00

‘미르의 전설’ 만든 류기덕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 전 부사장
PC통신 ‘메탈동’에서 ‘허풍’ 때문에 만들어진 ‘언니네이발관’
EDM 뮤지션 데뷔 후 2018년에 일본 오리콘 차트 18위 올라

 

“신입사원 때 하셨던 밴드가 어디라고요?”
“언니네 이발관’입니다.”

 

인더뉴스 주동일 기자ㅣ인기 게임 ‘미르의 전설’을 만든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의 부사장이었던 류기덕 작가와 나눈 문답이다. 언니네 이발관은 크라잉넛, 델리스파이스와 함께 한국 인디 밴드의 모태로 꼽힌다. 특히 그가 참여한 1집은 2007년 ‘한국 대중 음악 100대 명반’에서 34위에 오르기도 했다.

 

류 작가는 2017년 위메이드 게임의 부사장직을 내려 놓고 ‘JADE KEY’라는 이름으로 EDM(Electronic Dance Music; 전자 댄스 음악) 프로듀서 활동을 시작했다. 작년엔 아이돌 그룹 ‘빅스’의 유닛 ‘빅스LR’의 ‘독’을 작곡해 일본 오리콘 차트 18위에 올랐고, 올해 ‘하드댄스’라는 장르의 앨범을 냈다.

 

지금에서야 화려한 이력이지만, 1990년대 인디음악·게임과 현재 하드댄스 음악의 공통점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기성세대가 많은 편견을 갖고 있는 분야라는 것. ‘콘텐츠 제작’과 ‘개척’으로 이력을 써온 류 작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 허풍(?)으로 시작한 ‘언니네이발관’

 

- 음악이 아닌 디자인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6~7살 때쯤 TV로 마징가Z를 즐겨 봤는데, 어느 날 집에서 벽지의 문양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로봇 얼굴같은 게 보이더라고요. 그걸 따라서 사인펜으로 벽에 로봇을 그려봤습니다. 다행히 부모님께서는 혼내시기 보다는 잘 그렸다면서 넘어가주셨고요. 이런 어린 시절 추억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중학교 때 건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대학에서 공예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컴퓨터 그래픽 학원을 다녔어요.”

 

- ‘언니네이발관’에는 어떻게 들어가셨나요?

 

“중학교 때 마이클 잭슨·본조비 같은 미국의 팝이 유행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데프 레파드같은 팝메탈을 듣다가 조금 더 비트가 센 메탈 음악을 들었죠. 당시에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었는데, 강한 락 음악을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PC통신인 하이텔에 메탈음악 동호회인 ‘메탈동’에 들어가 시삽을 맡고, 거기서 언니네이발관의 보컬인 이석원 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 이석원 씨의 제안으로 밴드를 시작하신 건가요?

 

“이석원 씨는 메탈동에서 글을 쓸 때 자신을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이석원’이라고 소개했어요. 사실 당시에 그런 밴드는 없었어요. 이석원 씨가 거짓말을 한 거죠. 그런데 ‘전영혁의 음악세계’라는 음악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로 나가서도 언니네이발관이라는 밴드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너무 커진 거짓말을 수습해야 했던 거죠. 그래서 베이스도 잘 칠 줄 몰랐던 저와 드러머 유철상 씨 등을 불러 진짜로 언니네이발관이라는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 온라인 게임은 ‘바람의나라’ 뿐이던 시절, 그래픽 뛰어난 게임 만들기로

 

- 허풍으로 시작한 셈인데, 어떻게 유명 인디 밴드가 된 건가요?

 

“같이 활동했던 델리스파이스에 비하면 사실 저희 음악의 완성도나 실력은 많이 부족했죠. 대신 ‘사실성’이 높았어요. 인터뷰에서 저희는 연주도 못 하고 음악도 못 배웠다고 솔직하게 말했거든요. 그리고 다른 밴드를 카피하기 보다는 저희의 음악을 만들기로 했는데, 몇몇 분들이 그 점을 오히려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멤버들이 다들 음악 트렌드에 민감한 편이기도 했고요. 당시 저는 게임 회사에 근무 중이었는데 합주가 있는 날엔 베이스를 들고 출근하면서 3년 정도 활동을 했죠.”

 

- 게임 업계에 발을 들이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엔 만화가가 되는 대신 그래픽을 배워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근무했어요.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게임 회사에서 그래픽 업무를 맡았고, 위메이드의 전신인 액토즈소프트로 이직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온라인 게임은 ‘바람의 나라’가 전부였어요. 게임 업계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던 때였지만, 최고의 그래픽을 가진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일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미르의 전설’이 인기를 끌고 위메이드 부사장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 유명 게임회사 부사장직을 내려놓을 정도로 EDM에 빠지신 계기는 뭘까요?

 

“어릴 땐 락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들은 댄스 음악을 좋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마이클잭슨을 듣고 자라선지 댄스음악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케미컬 브라더스와 프로디지처럼 락 요소를 갖춘 뮤지션들을 좋아했고요. 어느 날 다프트 펑크의 음악을 시작으로 EDM 음악을 찾아듣다가 우연히 스크릴렉스의 앨범을 들었는데, 이건 완전히 메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락이 진화하면서 이디엠의 한 갈래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반백(半百)을 바라보는 때 만난 새로운 천직, EDM 프로듀서

 

- 그 때부터 EDM 음악을 시작하신 건가요?

 

“네, 개러지밴드라는 아이패드 작곡 앱으로 음악을 만들어봤는데 재미를 붙여서 독학을 하다가 레코드 팩토리라는 학원까지 다녔습니다. 밴드와 달리 멤버들과 의견 충돌 없이 온전히 제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었어요. 어렸을 때 연주자가 아닌 프로듀서로 일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흔 살이 넘어서 찾은 새 천직을 놓치고 싶지 않아 제 열정을 모두 쏟아붓기로 했죠.”

 

- 위메이드 창업 멤버이자 부사장이셨는데, 그만둘 때 주위 반응은 어땠나요?

 

“ 음악 때문에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안 했는데도 회사에선 다들 놀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제 음악이 나왔을 땐 모두 축하해줬지만, 퇴사할 때만 해도 단순히 쉬고 싶다면서 그만둔 거라 갑작스럽다고 생각하신 분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사실 게임 업계에서 만족스러울 만큼 일해봤다고 생각해 아쉬움은 없어요. 유튜브에 음악을 올릴 때 같이 넣을 영상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평생 해온 일인데도 요즘엔 영상 작업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만큼 관심이 떨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 그러고 보니, JADE KEY 라는 이름의 뜻을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신스팝 듀오 ‘View’에서 같이 작업했던 친구와 지은 이름이에요. 제 영어 이름인 ‘조셉’ 의 ‘J’와 한글 이름 ‘기덕’의 ‘기’를 살려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그래서 옥을 뜻하는 ‘Jade’와 발음했을 때 강한 느낌을 주는 ‘Key’를 조합해 JADE KEY로 예명을 지었습니다.”

 

 

◇ “소비는 많지만 향유는 적은 EDM”

 

-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성은 뭘까요?

 

“처음엔 무조건 대중적으로 공감받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언니네 이발관 시절 음악은 다소 파격적이었고 대중들이 따라오기 힘든 면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엔 락 음악의 요소를 담거나, 들었을 때 게임처럼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는 판타지 느낌의 음악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최근 앨범이 하드한 편이었는데, 와국 반응은 좋았지만 주위에선 대중적인 방향으로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 EDM 뮤지션의 일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하루에 스케치 수준으로라도 한 곡 이상 만들려고 해요. 그 마음으로 작업실로 출근하는데, 어느 날엔 하루만에 세 곡씩 만들 때도 있고 반대로 한 곡도 완성하지 못 할 때도 있습니다. 주의를 많이 기울이는 마스터링이나 믹싱을 끝내고 나면 몇 일 동안은 일을 제대로 못합니다. 만들어 놓은 음악만 반복해서 듣다가,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몰아서 작업하는 편입니다.”

 

-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EDM씬에서 활동하면 K-POP 쪽에서 오퍼가 많이 들어오는데, 작업물을 보내면 ‘너무 EDM 같다’는 평을 종종 듣습니다. 그럴 때면 EDM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비주류로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EDM씬이라는 게 아직 우리나라에 확고히 자리잡지 못 했습니다. 국내 전문 레이블이 없어 해외 레이블에 데모를 보내야 하고, EDM 자체를 단순한 클럽 음악으로 보는 분들도 많습니다. 왕성하게 소비되지만 향유되는 경우는 드문 거죠.”

 

 

◇ ‘제이드 키’만의 음악 만들고, 레이블로 씬 키워갔으면

 

- 류 작가님도 해외 레이블로 음원을 보내시나요?

 

“네, 다음에 나올 예정인 앨범도 해외 레이블과 계약해 만들었습니다. 프로듀서가 직접 음원을 유통해야 하다보니 어려움도 많고요.”

 

- 최근 활동 중에 좋은 성과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지난 해 아이돌 그룹 빅스의 유닛인 빅스LR의 ‘Poison’이라는 트랙을 만들었는데 일본 오리콘 차트 18위에 올랐어요. 제 입장에선 이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했는데, 빅스LR 측에서 저를 공연에 초청해준 덕분에 가수들이 제가 만든 음악에 맞춰 안무와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정말 감격스러웠어요. 한편으로는 원래 제가 부르려고 만든 곡이었는데 제가 불렀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도 들었죠.”

 

- 인디음악·게임·EDM·K-POP은 트렌드를 쫓아가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살려야 하는 분야입니다. 이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는 류 작가님만의 비결이 있으신가요?

 

“어릴 때부터 이사를 자주 다녀서 그런지, 새로운 것들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특별히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일해 본 적은 없는데, 마음이 끌리는 것들에 집중했을 때 감사하게도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 앞으로 뭘 이루고 싶으신가요?

 

“EDM 음악을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이 이름을 떠올리는 아티스트로 자리잡고 싶어요. 더 큰 목표는 레이블을 차리는 겁니다. 제이드 키만의 음악을 하고, 각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나이는 많지만 경력은 짧아 아직 EDM씬과 음악에 대해 배워가는 단계여서 명확한 목표를 잡는 게 어렵지만, 하다보면 더 큰 발전의 계기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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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일 기자 jdi@inthenews.co.kr


[C-레벨 터치]치킨 3위 교촌…허니시리즈 만든 송종화 ‘절박함’ 통할까

[C-레벨 터치]치킨 3위 교촌…허니시리즈 만든 송종화 ‘절박함’ 통할까

2024.04.25 07:00:00

인더뉴스 장승윤 기자ㅣ치킨업계 1위를 지켜온 교촌치킨의 성장세가 멈췄습니다. 적극적인 출점과 마케팅으로 점유율을 끌어올린 bhc, BBQ와 대비되는 흐름에 본업 경쟁력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상황입니다. 교촌은 '허니시리즈의 아버지' 송종화 대표 체제에서 올해 새판 짜기에 돌입합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치킨업계 매출 순위가 뒤바뀌었습니다. bhc 매출이 전년보다 5.5% 증가한 5356억원으로 교촌치킨을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치킨 3사 중 유일하게 매출 5000억원을 넘겼습니다. BBQ는 지난해 매출이 12.8% 증가한 4732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2년 연속 500억원 넘게 올랐습니다. 교촌에프앤비만 역성장했습니다. 지난해 매출이 445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4% 줄었습니다. 2014년부터 8년간 이어온 국내 치킨프렌차이즈 업계 선두 자리를 bhc에 뺏겼고 BBQ에 2위 자리마저 내줬습니다. 3위로 내려앉았지만 이유는 있습니다. 교촌은 외연 확장보다 내실을 택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수익성 개선에 성공한 교촌에프앤비입니다. 영업이익이 248억원으로 전년 대비 181% 늘었습니다. 1년 사이 3배 급증했습니다. 영업이익률도 1.7%에서 5.6%로 3.9%p 끌어올렸습니다. bhc와 BBQ의 영업이익은 각각 1203억원, 553억원으로 전년보다 15.2%, 13.7% 줄었습니다. 교촌에프앤비 측은 "당초 가맹점 확장 전략을 추구했다면 매출이 큰 폭으로 올라 업계 순위 회복이 어렵지 않았겠지만 권원강 교촌에프앤비 회장은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며 "무엇보다 가맹점 수익이 우선이라는 권 회장 경영철학을 2023년 실적에서도 보여줬다"고 말했습니다. 교촌에프앤비는 가맹점 및 파트너사와 상생 협력 관계 구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점포당 점주 매출은 업계 최고 수준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거래에 따르면 2022년 교촌치킨 가맹점의 전국 평균매출액은 7억5000만원으로 bhc(6억원), BBQ(4억3000만원)보다 높습니다. 0%대 폐점률도 이를 입증합니다. 다만 가맹점주 수익성 보전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 외형 성장이 더뎠고 매출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지난해 경쟁사들이 수십 개 이상 매장을 낼 때 교촌에프앤비의 신규 출점 매장은 10개에 불과했습니다. 전국 가맹점 수(2022년)에서도 교촌에프앤비(1365개)는 BBQ(2041개), bhc(1991개)와 차이가 큽니다. 특히 치킨 가격 인상을 주도한다는 점이 매출 하락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교촌은 2018년 업계 최초로 배달비를 도입했고 이는 요식업계 전체 배달비 유료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촌은 지난해 4월에도 주요 메뉴 가격을 나홀로 최대 3000원 인상하며 소비자들의 눈총을 받았습니다. 경쟁사 대비 부족한 히트 상품도 보완 과제로 언급됩니다. 교촌의 인기 제품으로는 1991년 간장치킨(교촌시리즈)을 시작으로 2004년 레드시리즈, 2010년 허니시리즈 등이 손꼽힙니다. 허니시리즈 이후 15년 가까이 꾸준히 신제품을 내고 있으나 히트작으로 불릴 만한 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지난 2020년 24가지 재료로 완성한 불맛을 강조하며 선보인 '교촌신화'는 반짝 인기를 끌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2년 뒤인 2022년 7월 단종됐습니다. 교촌에프앤비는 같은달 블랙시크릿을 출시하며 5가지 향신료로 만든 이국적인 치킨 콘셉트를 앞세웠고 콤보 출시, 시식단 모집 등 마케팅을 강화했습니다. 블랙시크릿은 지난해 1월 출시 약 6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이 100만마리를 돌파하며 가능성을 보였으나 시장에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교촌에프앤비 입장에서는 허니시리즈를 이어 매출 증대와 신규 고객 창출을 견인할 인기 제품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는 송종화 부회장을 교촌의 새 사령탑으로 임명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교촌은 지난달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송 부회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했습니다. 송 대표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교촌에프앤비 총괄상무 및 사장으로 재직한 전문경영인입니다. 지난해 9월 부회장으로 11년 만에 경영에 복귀했습니다. 송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조류 인플루엔자(AI) 파동으로 가라앉은 치킨 프렌차이즈 시장 위기를 극복하고 교촌치킨을 치킨 선두 브랜드로 올리는 데 기여한 프렌차이즈 전문가로 평가받습니다. 임원 재직 당시 미국과 중국 시장 진출을 주도했습니다. 2010년에는 교촌의 효자 상품인 '허니시리즈'를 출시했습니다. 허니시리즈는 후라이드와 양념으로 대표되던 치킨 시장에 꿀을 활용해 상품화에 성공했습니다. 치킨 고객층을 아이와 여성들까지 넓히는 첨병 역할을 했습니다. 2014년에는 허니시리즈 판매량이 전년 대비 2배가량 신장하며 그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30%, 63% 증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최근 교촌은 신사업 확장에 주력하는 모앙새입니다. 이마트와 협력해 자사 소스를 상품화한 K1 핫소스를 출시하며 소스 시장에 진출했고 지난해 6월에는 이태원에 '치킨 오마카세' 닭요리 전문점 교촌필방을 열었습니다. 올초에도 여의도에 메밀 한식주점 '메밀단편'을 론칭하고 소비자 반응을 살피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촌의 신사업 시도는 매출 부진과 맞물리며 본업 경쟁력 저하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교촌에프앤비는 그룹 성장의 전기를 마련한 송 대표 체제에서 재도약을 도모한다는 계획입니다. 송 대표는 국내가맹사업과 신성장사업, 해외사업, 각 계열사 등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송 대표는 취임사를 통해 "경기위축과 소비침체 등 회사 안팎의 여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절박함’을 갖고 업무에 임할 것"이라며 "지속적 경영혁신을 통해 체질 개선을 가속화하고,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주력해 교촌을 100년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일에 열정을 바치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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