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 엄마 장예진] 나에게 보험이란 무엇일까? 일단 깊은 반성이 밀려온다. 몇 년을 매달 꼬박꼬박 의무처럼 내면서도 한 번도 보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번 기회에 보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줘 감사드린다.
나에게 보험이란 미지의 세계다. 어렵다. 물론 보험이 어려운 것은 숫자에 감 없고 한자에 약한 내 탓이 크다. 약관은 너무나 깨알 같고 보험설계사의 설명은 알아듣기 어려웠다. 들어본 적 없는 한자 단어의 나열은 암호해독에 가깝다.
그런데 좀 더 솔직해져 보자. 그것이 전부일까? 똑순이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등교육(?)을 받고 직장생활 10년 차에 어디 가서 손해 보는 일은 절대 안 하는 30대 중반의 아줌마인 내가 왜 유독 보험을 어려워하는 걸까?
시작이 잘못됐다. 사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보험에 가입했다. 돈 내고 다니던 학교를 떠나 돈 받고 다니는 회사 생활 하루하루가 버거웠던 20대 중반의 사회 초년생이 노후를 설계하고 리스크에 대비하고자 보험에 가입할 리는 없었다.
그 때 보험에 가입한 이유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평범하다. 엄마의 친구가 “보험에 좀 들어달라”고 해서였다. 나를 위해서, 내가 필요해서 든 것이 아니라 설계사의 실적을 위해서 또 손해 볼 일 없다니까 겸사겸사 가입한 것이다.
불행이었다. 그 아줌마는 지금 설계사를 그만뒀다. 그 후 몇 차례 다른 보험에 가입했지만 설계사 변경은 빈번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은근히 화가 났다.
가입해달라고 할 때는 온갖 감언이설로 나를 꼬시더니(?) 필요해서 연락하면 어느 새 퇴사해 다른 삶을 살고 있거나 심지어 다른 보험사로 이직해서 다른 보험을 권하는 그들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든 적도 많았다.
내가 어리석었다. 나는 남을 위해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그 남이 변심했을 때 화가 난 것이다. 나는 보험에 애정을 줄 틈이 없었다. 사랑하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누린다는데 나는 보험을 알지 못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지 못하고 누리지 못했다. 내가 화낼 일은 설계사의 이직이 아니라, 불성실한 설명, 무성의한 보상, 비합리적인 보험가입인데 말이다.
얼마 전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나는 보험에 대해 전과는 좀 다른 접근을 하게 됐다. 이번 보험도 역시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과는 달랐다.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내가 이 세상으로 데려왔고, 그래서 힘닿는 데까지 책임져야 하는 내 딸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을 위한 보험에 가입해야 했고 그래서 더욱 깐깐하게 따져보고 필요한 부분을 요구했다.
딸을 위해 가입한 보험에서 나는 비로소 보험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없어도 우리 딸이 돈이 없어서 아파도 치료 받지 못하거나, 돈 때문에 학업을 포기할 필요가 없으니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가입자가 느낄 수 있는 보험의 가장 큰 혜택이며 의미가 아닐까?
오늘도 보험업계에서 열심히 뛰고 계시는 분들께 감히 한 마디 하고 싶다.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은 확실한 것이 별로 없는 불안한 시대에 어머니가 되어 주는 것이며 이는 어떤 일보다 보람된 일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