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박경보 기자ㅣ올해도 국내 지동차 시장은 수요 침체로 울상이지만, 그나마 SUV들이 선전하고 있습니다. 레저를 즐기기 적합한 SUV 모델이 인기를 끌면서, 완성차업계도 잇따라 신형 SUV를 내놓고 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모습입니다.
그동안 국내 SUV 시장은 티볼리·코나 등 소형 SUV와 싼타페·쏘렌토로 대표되는 중형 SUV가 이끌어왔습니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대형 SUV들이 완성차 업계의 실적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쉐보레가 트래버스를 내놓은 데 이어 기아차까지 모하비 페이스리프트를 출시했기 때문이죠. 팰리세이드, G4 렉스턴, 모하비, 트래버스 등 총 4개 차종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게 된 셈입니다.
특히 대형 SUV 구입을 고려하는 국내 잠재 고객들은 ‘모하비 더 마스터’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신형 모하비는 영업일 기준 11일 동안 7000대의 사전계약량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죠.
모하비의 가장 큰 장점은 국산차로는 유일하게 3.0ℓ 디젤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같은 지붕의 팰리세이드와 쌍용차의 G4 렉스턴 모두 2.2ℓ 디젤 엔진이 주력이라 파워풀한 동력성능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반대로 트래버스는 미국산답게 무려 3.6ℓ 가솔린 엔진을 품고 있지만, 낮은 연비와 비싼 세금이 판매의 변수죠.
사실 모하비의 이 같은 파워트레인과 차체는 전작과 동일합니다. 다만 디자인이 훨씬 고급스러워지고 차로유지보조 등 반 자율주행이 가능해지면서 국내 소비자들에게 먹혀들었다고 봐야겠네요.
지난 2008년 출시된 모하비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고 경영진이 각별히 공을 들여 개발했으니 다른 차들보다 완성도는 높을 겁니다. 문제는 출시된 지 너무 오래됐다는 겁니다. 2008년 첫 선을 보인 이후 2016년이 돼서야 첫 번째 페이스리프트, 그리고 올해가 두 번째 페이스리프트입니다.
외관이 화려해졌을 뿐 프레임과 섀시는 그대로이다 보니, 출시 이후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는 심한 롤링과 나쁜 승차감은 여전합니다. 이번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프레임과 차체를 연결하는 마운트를 개선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타보면 체감하긴 어렵습니다. ‘근본’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죠. 특히 출렁거림과 거친 승차감 탓에 2열에 탄 승객은 멀미를 참고 견뎌야 합니다.
특히 현재 팔리는 모하비 더 마스터에는 후륜에 에어서스펜션이 적용돼 있지 않습니다. 기아차는 모하비를 첫 출시할 당시 에어서스펜션을 적용해 프레임 보디 특유의 나쁜 승차감을 보완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 들어 에어서스펜션을 조용히 빼버렸고, 이번 페이스리프트에서도 결국 누락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안전성입니다. ‘보레고’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미국, 러시아 등에 수출됐던 모하비는 북미 시장 출시 첫 해 1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2010년부턴 급격히 판매량이 떨어졌는데, 미국에서 진행한 긴급상황 회피능력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았기 때문이죠.
충돌을 피하기 위해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전복될 수 있는 모하비는 결국 2011년 들어 미국에서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그런데도 국내에선 1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해왔고, 올해는 각종 첨단사양을 등에 업고 다시 부활한 모양새입니다.
이미 미국에선 ‘진짜 신차’인 텔루라이드가 모하비를 대신해 팔리고 있습니다. 텔루라이드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평가가 상당히 좋다고 하던데, 국내 판매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텔루라이드는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생산되는 데다, 기아차 입장에선 굳이 신차를 출시할 이유가 없겠죠. 출시 11년 차를 맞은 모하비가 여전히 잘 팔리니까요.
모하비의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도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듭니다. 모하비 더 마스터의 기본 등급인 플래티넘 트림은 4700만원에 책정돼 팰리세이드보다 1000만원은 더 비쌉니다. 더 윗등급인 마스터즈를 고르려면 최소 5160만원은 손에 쥐어야 하죠. 극단적으로 마스터즈 6인승 모델에 선루프, 렉시콘 팩까지 고르면 5385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표가 나옵니다.
5000만원이면 꽤 괜찮은 수입차들을 살 수 있죠. 모하비의 가격은 아랫급이 아닌 동급의 수입차들과 맞먹습니다. 수입차 시장의 스테디셀러인 포드 익스플로러도 5000만원대 중반이고, 쉐보레 트래버스(4520만원)는 오히려 모하비보다 저렴합니다. 오프로더들의 왕인 지프 랭글러도 모하비 가격과 비슷하고, 동급은 아니지만 레저에 적합한 볼보 V60 크로스컨트리도 사정권 안에 있습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하지 않고 차량 가격만을 놓고 보면 모하비는 지난 11년간 무려 1390만원이나 올랐습니다. 11년 전 3310만원이었던 모하비는 4700만원으로 껑충 뛰었죠. 휘청거리는 차체와 나쁜 승차감은 여전한데도 말입니다.
이쯤 되니 기아차가 국내 소비자들을 쉽게 생각한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습니다. 차량의 기본기나 상품성이 제대로 개선되지 않아도 화려한 디자인과 편의사양으로 덮으면 국내 소비자들에게 먹힌다는 인식은 이제 접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