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직원 김상회] 친구로부터 전화가 온다. 내가 기억하는 그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오랜만이다. 우리의 대화는 어색함 속에서 예전 추억을 하나씩 더듬으며 정상 궤도로 달려가고 있지만 그 순간 친구는 핵심을 파고든다. ‘나 보험회사 다니고 있어.’
현대에 이르러 은퇴 이후 불안정한 노후설계의 총아로 떠오른 보험은 내게 하나의 의문점을 던져준다. “보험(保險) : 험한 것으로부터 보호해준다.” 시작은 공동체 의식과 안녕에 대한 기원이었을 것이다. 두레, 계(契), 그리고 기복(祈福)의 한 형태. 기원전 함무라비 법전에서부터 시작해 14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태동한 근대적인 형태의 보험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대자연에 대한 기복 의식과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공동체 차원에서의 보상으로 시작됐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경외의 대상에 대한 기원과 상부상조하려는 인간 공동체의 아름다운 의식으로 태어난 보험이, 지금에 와서는 왜 여러 사람들에게 마주하기 불편한 대상이 되었을까?
근대 이후 과학기술이 발전하게 되면서부터 어느새 우리는 계량화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키와 몸무게, 아이큐(IQ)에서부터 아파트의 크기, 통장의 잔고, 부동산의 가치, 그리고 시간, 아름다움의 정도, 종교적 신념의 크기, 철학적 판단에 이르기까지. 계량화된 세계관 속에서 급성장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보험이 아닐까? 험한 것들로부터 당한 정신적, 물리적 피해를 정확한 수치로 보상해주는 역할.
하지만 급격하게 신장한 외형의 크기에 비해 처음 지니고 있던 공동체 의식과 안녕에 대한 기원과 같은 비계량의 가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단지 보험은 미래에 발생할지 모를 위험의 가치를 계량화된 현재의 가치로 할인해 보전해주고, 어떤 험한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가치를 기준으로 개인의 계량화된 미래를 축적해주는 시스템으로 전락한 것이다. 불편함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서로를 위해주는 마음의 부재. 남겨진 것은 산업으로서의 보험 체계.
무엇이든 연결(Networking)하고 수치화할 수 있는 현대 디지털 세계에게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은 정형화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닐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 과자가 불러들이는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 첫 사랑의 아련했던 설렘, 낯선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세상과 생명에 대한 감동. 이러한 것들을 무기삼아 험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는 없을까?
‘보험(保險)’은 ‘보험(補驗: 경험을 보충)’이 되어야 한다. 수치로 헤아릴 수 없는 방대한 경험과 지각(知覺)으로 우리를 채우고, 이것을 바탕으로 험한 것들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는 보험(保險)이라면 가을바람에 멀리서 들려오풍경소리처럼 언제든 설레는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