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운데 지우지 말고 잘까? 며칠 유지할 방법은 없을까?’ 아나운서 시험을 보고 돌아와 비싼 돈 들여서 받은 화장을 지울 때면 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돈이 5000원, 만원, 2만원씩 세면대에 쓸려가는 것만 같아 마냥 아까웠다. 그래서 면접날에는 오랫동안 못 보던 사람들과 몽땅 약속을 잡아 곱게 화장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곤 했다.
카메라 테스트용 스타일링을 한 번 받는데 5만~30만원에 육박하는 비용이 들다 보니, 돈도 돈일뿐더러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극도의 스트레스가 따른다. 따라서 어떤 숍이 화장과 머리를 잘하는지, 비용은 또 얼마인지가 아나운서 지망생 모두의 관심사다. 어떻게 해야 현명하고 경제적으로 스타일링을 받을 수 있을까?
먼저 스타일링 숍에 관한 조언. 가능한 한 여러 곳을 탐색하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한 곳을 골라 단골 숍으로 삼자. 나는 10년을 다닌 숍이 있다. 나보다 내 얼굴에 대해 더 잘 알고, 매번 같은 스타일을 만들어주니 시험 당일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시험 날 아침, 처음 본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마찰이 있다면 사기가 급저하될 수밖에 없다. 시험 날의 정신적인 안녕을 위해서라도 평소 신뢰할 수 있는 단골 숍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나는 동료 준비생들에게 두루 의견을 물어보고, 승무원 준비생 카페, 예비 신부 모임에도 가입해 입소문이 좋은 숍들을 직접 가본 뒤 딱 한 곳을 정했다. 가격도 5만~8만원인 비교적 저렴한 숍이다.
그래도 면접보는 횟수가 늘면 자연히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돈을 아끼기 위한 일종의 요령이 필요히다. 나는 합격을 기대하기 힘들고 그저 경험삼아 보는 시험인 경우에는 스스로 기초화장을 마친 뒤 숍에서 가장 중요한 눈 화장 정도만 받았다. 강남역과 이화여자대학교 주변에는 속눈썹만 붙이면 5000원, 전체 메이크업 수정을 해주고 3만원을 받는 숍들이 많이 있다. 만약 손재주가 있는 편이라면 메이크업을 배워 스스로 하는 것도 좋다. 대부분 숍에서 셀프 메이크업 강좌를 저렴하게 운영한다. 그러나 5회 이하의 강좌로 전문가의 손길을 따라가는 데는 한계가 따르기도 한다. 나 역시 메이크업 강좌를 수강했지만 재주가 부족해 라디오 방송국이나 소규모 방송사 시험 때만 스스로 했다. 중요한 시험, 최종 합격에 가까워진 고차 면접이라면 메이크업과 헤어에 차라리 과감히 투자를 해서 합격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돈을 절약하는 길이다.
또한 많은 지망생들이 다른 지역 방송사 시험을 칠 때 헤어와 메이크업을 어떻게 받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지방에서 상경한다면 서울에는 새벽부터 문을 여는 숍들이 즐비해 어려움이 없지만 문제는 서울 학생들이 낯선 지역에 내려가는 경우다. 이때 나는 무리를 해서라도 굳이 서울의 단골 숍에서 스타일링을 받은 뒤 당일 첫차를 타고 시험을 보러 내려가곤 했다. 가장 빠른 시각에 숍을 찾았던 것이 새벽 3시 반. 유난스러워보일지 몰라도 낯선 지역의 메이크업 숍보다는 검증된 곳에서 익숙한 화장을 받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험시간이 오전이라 당일 출발이 불가능할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용기를 내서 시험 보는 방송사 분장실로 전화를 걸어 부탁해보자. 해당 방송사 현직 아나운서의 스타일링 담당이야말로 임원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지역사 스타일리스트들은 프리랜서 신분이라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이곤 했다. 이 경우 서울보다 비용도 저렴했고, 마음씨 좋은 스타일리스트들은 시험 전날 밤 방송국 옆 자신의 집을 숙소로 내어주기도 했다. 그러니 지역 방송사 시험 때 화장을 받을 방법이 없다며 자포자기하지 말 것! 적극적인 자세로 찾아나서는 사람에게 길은 늘 열려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