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양귀남 기자ㅣ코스닥 상장사 에이티세미콘이 21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발표한 뒤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는 가운데, 사전 정보를 이용한 대규모 선행 매집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공시 직전에 정체가 불분명한 법인이 대량 매수에 나섰고, 주가 역시 공시가 나오기 전부터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매집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공시 직전 대량 매집..단기간에 수십억 시세차익 발생
18일 금융감독원 및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에이티세미콘은 유상증자와 CB(전환사채) 및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통해 약 21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기로 했다고 지난 11일 공시했다. 발행 대상은 인플루언서랩으로 자본금 3000만원 규모의 페이퍼컴퍼니로 추정된다.
이같은 소식에 에이티세미콘은 지난 10일부터 나흘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뒤 이튿날에도 장중 13% 넘게 급등하며 3895원까지 치솟았다. 1200원대 전후에서 형성되던 주가가 순식간에 3배 넘게 폭등한 것. 하루 거래대금도 1000억원을 넘어서는 등 대규모 투자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같은 공시와 주가 급등이 발생하기 직전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대규모 매집에 나선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에이티세미콘과 거래 관계가 있는 인물의 법인이 투자한지 보름만에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는 상황이고, 주가 폭등 직전 300억원 규모의 CB를 취득한 법인이 나타나는 등 의심스러운 투자 정황이 잇따르고 있다. 사전 정보를 활용한 이들이 공시 직전 대량의 주식을 끌어모은 뒤 고가에 물량을 떠넘기며 단기 시세차익을 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자본금 2000만원 규모의 경영자문컨설팅 법인 탈리온은 지난달 28일 에이티세미콘의 주식 5.03%, 155만 7931주를 약 21억원에 매수했다고 지분 공시를 통해 밝혔다. 탈리온의 최대주주와 대표는 모두 이학영 씨로 기존에 에이티세미콘과 투자 관계를 이어오던 인물이다. 탈리온은 대량의 주식을 매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호재 발표와 함께 주가가 폭등하면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게 됐다. 탈리온은 주가가 급등하자 재차 지분 공시를 통해 주식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에서 단순 투자로 변경했다. 단기 매도에 용이한 구조로 바꾼 것이다.
300억 CB 재매각..주가는 공시 전 이미 상한가
에이티세미콘 주가는 자금조달 공시 전날 이미 상한가를 기록한 뒤 다음날부터 점상한가(시초가부터 종가까지 줄곧 상한가)를 기록했다. 또 주가 상승 직전 에이티세미콘은 자사의 CB를 정체가 불투명한 업체에 재매각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즉시 주식으로 전환해 매도할 수 있는 물량이다.
에이티세미콘의 주가가 처음 상한가를 기록한 것은 지난 10일이다. 하지만 회사가 유상증자와 CB, BW 발행 공시를 발표한 것은 다음날인 11일 오전 7시대다. 시장에 아무런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내부 정보를 이용한 대규모 매집이 이뤄지면서 주가가 미리 치솟은 것으로 추정된다.
주가 급등 전 대규모 CB 거래도 이뤄졌다. 지난 11일 에이티세미콘은 300억원 규모의 12, 14, 16회차 CB를 아임이라는 법인에 304억원 규모로 재매각했다고 공시했다. 인수가격과 현재 주가를 감안하면 인수자 측은 막대한 시세차익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12, 14회차 CB의 전환가는 1215원, 1270원이고 12회차는 즉시 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한 상태다. 계약금과 중도금 70억원은 지급됐고 잔금 234억원은 오는 5월 31일 지급 예정이다.
에이티세미콘 관계자는 “투자자의 자금 조달 능력을 검토한 후 진행한 계약”이라며 “투자자의 자세한 정보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에이티세미콘은 대규모 적자가 지속되며 열악한 재무 상황에 놓여 있는 한계기업이다. 지난해에는 10대 1 감자를 실시하며 자본잠식으로 인한 관리종목, 상장폐지 등의 위기를 모면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