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홍승표 기자ㅣ국내 자동차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위한 계획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SK와 롯데 등 대기업도 계열사를 통해 중고차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7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중고자동차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제외하기로 심의 의결하며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이 진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기아는 지난 18일 중고차 시장 진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기아는 인증중고차를 공급하겠다는 뜻과 함께 전기차 수요가 느는 점을 고려해 고품질의 중고 전기차를 팔겠다는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 전기차는 1만2960대나 거래돼 전년 7949대 대비 63%나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판매업체를 거치지 않는 개인간 거래 비중 64.3%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중고 전기차에 대한 객관적 성능평가와 가격산정 기준이 없었다는 것이 이유라는 자동차업계의 분석입니다.
이를 위해 기아는 차량가격의 절반을 차지하는 배터리의 잔여수명과 안정성 등을 첨단 진단장비로 측정한 후 최저성능기준을 만족하는 전기차량만 인증해 판매한다는 방침입니다. 배터리와 전기차 특화시스템 등 내연기관 차량과 다른 구조를 가진 전기차만의 ‘품질검사 및 인증체계’를 개발하고, 중고 전기차에 대한 객관적인 가치산정 기준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한 달간 차량을 체험해본 후에 최종 구매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선(先)구독 후(後)구매 프로그램’과 소비자가 차량 성능진단과 상품화, 품질인증 등 중고차가 고품질의 차량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확인 가능한 리컨디셔닝센터도 도입한다는 방침입니다.
기아 관계자는 "전기차 선도 브랜드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는 기아의 전동화 역량을 활용해 중고차시장 내 전기차 수요 증가 대응은 물론 중고차 매매업계도 함께 미래를 준비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차는 기아에 앞서 지난 3월 중순 중고차 시장 진출 계획안을 공론화 했습니다. 품질검사를 거친 고품질의 인증중고차를 선보이고 차별화된 고객서비스, 중고차 매매업계와의 상생을 도모한다는 계획입니다.
중고차매매업계의 발전과 상생 방안으로는 ▲5년 10만km 이내의 자사 브랜드 중고차만 판매 ▲인증중고차 대상 이외 매입 물량은 경매 등을 통해 기존 매매업계에 공급 ▲연도별 시장점유율 제한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 공개 ▲중고차산업 종사자 교육 지원 등을 큰 틀로 제시했습니다.
특히, 올해 시장점유율 2.5%를 시작으로 2023년 3.6%, 2024년 5.1%까지 시장점유율을 자체적으로 제한하는 등 중고차 시장의 독점 우려를 낳을 수 있는 부분을 사전 차단해 매매업계와 동행한다는 계획입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고차 품질과 성능 수준을 향상시켜 시장 신뢰를 높이고, 중고차산업이 매매업 중심에서 벗어나 산업 외연이 확장될 수 있도록 기존 중고차업계와 다양한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차와 기아의 시장 진출 선언으로 타 완성차 업체 또한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한국GM, 르노코리아, 쌍용차는 자사 차원에서의 급한 문제로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두 업체의 진출 선언과 새로운 수익 창출을 도모하기 위해 향후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렌터카·보험업계까지 진출 ‘호시탐탐’
완성차업계 외에 대기업 계열사들 또한 중고차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롯데렌탈은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인 B2C 시장에 오는 하반기부터 공식 진출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롯데렌탈은 기업과 기업 간 거래인 B2B방식의 거래를 넘어 기업-소비자 간 거래를 바탕으로 오는 2025년까지 중고차 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SK렌터카 또한 물밑에서 중고차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SK렌터카를 운영하는 SK그룹은 과거 SK엔카라는 중고차 시장을 운영했으나 중고자동차판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사업을 접은 바 있습니다. SK엔카를 운영했던 그룹의 경험과 온라인을 바탕으로 한 중고차 장기 렌터카 상품 출시 등을 바탕으로 중고차 시장에서 입지를 다시 다지는 행보에 돌입할 것이라고 업계는 전망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손해보험사인 캐롯손해보험은 한국자동차진단보증협회, 제이피워런티와 중고차에 대한 정확한 성능 점검을 기반으로 하는 ‘Jump Warranty 중고차 보증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서비스에는 보증기간연장형(EW) 보험 제공 및 서비스 과정에서 생산되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중고차 시장 진출에 포석을 놓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시민단체·학계 "완성차업계 진출은 소비자 입장서 긍정적"
시민단체와 학계는 완성차 업계 및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보에 대한 소비자의 알 권리가 충족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등 거래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지난 13일 교통연대가 주최한 ‘중고차 시장 활성화와 소비자 후생 증진 방안’ 포럼에서 허경옥 성신여대 교수는 "완성차 업계의 시장 진출을 통해 소비자 선택권·편익 및 거래 안전성 측면에서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를 최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중소 업체들과 상생 방안으로 완성차 업계의 보유 기술 정보 및 노하우 전수 등의 상생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기복 시민교통안전협회 회장은 "중고차 업계의 상생안보다는 소비자의 상생안이 중고차 시장을 활성화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며 "소비자들은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낙후해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으로 대기업 진출을 통해 보호받고 선택권을 보장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중고차 시장 판매업자들의 반발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와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 1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자동차매매업 허가증 반납 퍼포먼스’를 열며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이날 양 단체는 "정부의 결정은 중고차 산업 특성을 무시하고 자동차 매매업계를 이해하지 못한 판단으로 관련 산업 종사자 약 30만명의 일자리를 빼앗고 대량 실업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며 "5년·10㎞ 미만 인증중고차 매물만 취급하겠다는 현대차·기아의 상생 방안은 ‘알짜매물’만 독점하겠다는 전략으로 중고차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 3월 29일에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기부 자율조정심의에서 제시한 ▲3년의 유예기간 ▲대기업의 매집제한 ▲신차 영업권 등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국내 중고차 시장이 더 커질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2020년 국내 중고차 거래현황 분석 및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국내 중고차의 연간 판매량은 251만5000대로 신차 판매량인 190만5000대와 비교해 1.32배 높았습니다. 미국이 2.4배, 영국이 2.9배, 독일이 2배인 것과 비교해 보면 낮은 수준입니다.
판매량이 2배 이상 차이를 보이는 곳은 모두 완성차업계가 중고차 시장에 자리잡은 선진국입니다. 자동차업계는 이를 고려했을 때 국내 중고차 시장에 완성차업계가 진출하게 되면 시장 확장성 등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고차가 신차보다 많이 팔리는 것에 더해 구매 신뢰도 또한 증가할 수 있다는 부분이 시장 확장에 긍정적인 부분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중고차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대기업 관계자는 "새 정부가 경제 단체장들과 첫 회동에서 규제 완화를 통한 적극적인 지원을 강조했고 중기부가 허가를 한 상황에서 중고차 시장의 대기업 진출은 기정사실화됐다"며 "다만 기존 중고차 업계의 반발이 큰 만큼 정부가 이를 잘 조율해 선진적인 중고차 시장이 형성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