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최근 국내 금융그룹의 수장 인사를 놓고 뒷말이 무성해지고 있습니다.
새정부 출범과 맞물린 금융권 리더십 변환기에서 시장의 예상을 뒤엎는 인사가 이뤄지고, 현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옛 관료는 하마평 깜짝등장과 함께 업계 최고위직에 무혈입성한 탓입니다.
시계를 닷새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지난 8일은 신한금융지주가 앞으로 3년동안 그룹을 이끌 차기 회장 후보를 결정하는 날이었습니다.
조용병 현 신한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등 3명이 회장 압축 후보군에 올랐지만 '조용병 3연임 체제' 출범을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2017년 회장 취임 후 조직안정을 다지고 특히 올해 실적호조를 견인하면서 사실상 3연임 확정설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날 오전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면접에 들어가기 앞서 소감을 묻는 취재진에 "처음은 아니지 않느냐"는 조용병 회장의 여유있는 단답은 3연임에 대한 자신감으로 비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과 당혹 그 자체였습니다. 업계 안팎의 예상을 깨고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다수결에 의한 표결로 임기 3년의 차기 대표이사 회장 후보로 선정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조용병 회장이 세대교체와 신한의 미래를 고려해 용퇴를 전격적으로 결정했다"는 회추위 측 발표에 신한금융지주 태평로 본사 브리핑룸은 크게 술렁였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인사는 "(조용병 회장의 3연임 가능성을) 100%라고 하기엔 부담스러워 말하지 않았을뿐 99.99% 확신하는 분위기였다"면서 "이렇게 판이 뒤집힌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대이변의 주인공이 된 진옥동 신한은행장조차 조용병 회장의 '용퇴'를 두고 "사전에 별도로 얘기가 없었다. 면접에 올라갈 때까지도 (조 회장의) 사퇴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적잖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이와 함께 회추위 결과 발표 직후 취재진 앞에 선 조용병 회장이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누군가는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소회와 전날인 7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CEO 리스크 관리는 저희(금융당국)의 책무"라는 공개발언은 시기상 공교롭습니다.
조용병 회장의 무난한 3연임에서 갑작스러운 '용퇴'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가 이른바 '외풍' 또는 정부와 교감설 같은 회의적 단어로 수렴되는 건 이 때문입니다.
신한발 세대교체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은 12일에는 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1호 영입인사'로 각인된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이 낙점됐습니다.
역시 강한 현직 프리미엄과 실적개선을 앞세운 손병환 현 회장의 연임 확률이 높게 점쳐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시장의 충격파는 컸습니다.
농협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는 "수차례 심도 있는 논의와 심사를 통해 후보군을 압축했고 심층면접 진행 후 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이석준 후보자를 최종후보자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관치금융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시장의 냉정한 평가도 엄존하고 있습니다.
1959년 부산 출생인 이석준 전 실장은 서울대 경제학과(78학번)를 졸업한 뒤 1983년 행정고시(26회)로 공직에 입문해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및 2차관,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에 올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대선캠프 초기 좌장을 맡아 정책 밑그림을 그렸고 당선인 특별고문으로 활동하면서 금융위원장 등 금융권 요직의 잠재적 후보군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농협금융은 2012년 출범 이후 초대회장과 손병환 현 회장을 끝으로 다시 관료출신 회장체제로 돌아가는 과거로의 회귀를 직면하게 됐습니다.
이제 시선은 지방 최대 규모의 BNK금융지주와 IBK기업은행, 우리금융지주로 모아집니다.
BNK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13일 차기 회장 1차 후보군(롱리스트)을 확정합니다. 그룹 계열사 대표 9명과 외부 자문기관이 추천한 외부인사 10명 등 19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를 공개지지한 특정인사들이 거론됩니다.
임기 만료가 임박한 윤종원 기업은행장과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는 과거 금융당국 고위관료 등이 벌써부터 유력한 후보군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과거 국내 금융부문의 취약한 산업구조 탓에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 등으로 시장에 깊숙이 개입·관여하면서 관 주도의 금융정책이 시장을 이끌어온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장 고유의 작동원리를 외면한 채 정부가 대출이나 인사 관련 직접개입으로 위기상황을 모면하는 이른바 관치금융 고착화에 따라 시장기능 약화와 시장 불안정성의 확대재생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정부당국 입김으로 좌지우지되는 관치금융은 결국 정실인사에 따른 특혜성 시비와 그와 연루된 대규모 금융 스캔들 등으로 확산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은행의 고객들이 감수하거나 혹은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지곤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금융계의 관치금융을 배제해야 한다는 비판이 힘을 얻었고 정권이 바뀌는 정치적 격랑속에서도 실적 중심의 리더십을 중용하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한국 금융권에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하반기 무렵 불거진 자금시장 불안과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구두개입을 하며 관치금융이란 비판을 자초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입김이 각 금융그룹 수장들의 거취에도 그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고 결국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투명함을 바탕으로 자율과 독립성을 기조로 움직여야할 금융시장이 다시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며 퇴행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것이 과연 윤석열 정부가 줄곧 강조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길일까요? 관치금융 부활에 대한 금융권의 의구심은 갈수록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을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