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정재혁 기자] 보험설계사들의 영업활동에 있어 ‘고객DB(데이터베이스)’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가망 고객 발굴에 어려움을 겪는 설계사들은 돈을 내고서라도 고객DB를 구매하는데, 이 DB가 불량인 경우가 잦아 설계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되기도 한다.
1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법인보험대리점(GA)은 소속 설계사들에 대한 영업 지원 차원에서 고객DB를 확보해 공급하고 있다. DB 전문업체에서 돈을 주고 사는 게 대부분이지만, 일부 GA의 경우 자체적으로 DB를 생산해 설계사들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보험업계에서 통용되는 용어인 고객DB는 쉽게 말해 ‘가망고객에 대한 정보’다. 예를 들어 온라인쇼핑 사이트 등에서 할인쿠폰을 제공하면서 ‘제3자의 고객정보 이용에 동의’를 묻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동의하면 자신의 정보가 DB로 생성된다.
DB의 가격대는 몇 백원에서 몇 십만원까지 다양하다. 가격이 비쌀수록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가장 대표적인 DB인 ‘재무설계DB’는 5만~6만원 대, ‘방송DB’는 약 13만원 내외에서 거래 중이다.
보험시장 불황으로 가망 고객 찾기가 어려운 설계사들 입장에선 이러한 DB가 마치 ‘가뭄 속 단비’와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의 설계사들은 매달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DB를 구매해 영업에 활용하고 있다.
DB 확보 자체도 어렵지만 설계사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이른바 ‘불량품’이 많다는 점이다. 전화번호가 결번이거나 다른 사람이 받았을 경우 등은 환불이 되지만, 단순히 상담 자체를 거부하는 사례는 상당수 업체가 환불 규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방송DB에도 맹점이 존재한다. 실제 고객은 한 명인데 DB가 4~5개씩 생성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 명의 고객이 여러 방송사 프로그램에 상담을 요청하면 프로그램당 DB가 하나씩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는 재무설계DB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선 영업 현장의 설계사들은 “DB 시장이 지나치게 공급자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한다. DB를 구매하는 소비자인 설계사들에게 상품(DB)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GA 소속 설계사는 “설계사가 비싼 돈을 내고 DB를 구매하면서도 업체나 GA가 주는대로 DB를 받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다”며 “DB시장의 공급자와 수요자 간 정보 비대칭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DB 공급에 비해 수요가 월등하게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시장 자체적으로 정보 비대칭이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GA업계 관계자는 “DB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가격이 상승하고 동시에 불량률도 높아지고 있다”며 “이에 GA들도 업체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체 DB 생산을 통해 설계사들에게 질 좋은 DB를 제공하려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DB의 생산·유통과 관련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보험영업검사실 관계자는 “설계사나 GA가 DB를 직접 수집하고 있다는 점은 파악하고 있지만, 금감원이 DB를 제공하는 업체에 대해 검사할 수 있는 권한은 현재로선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