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마스터인베스트먼트 대표 김용석] 몇 해 전 어느 날이었다. “여보세요? 잘 지냈니?”로 시작하는 전화 한 통이 바쁜 아침 일상을 깨웠다. 간만에 연락된 친한 동창 녀석의 전화였다.
“결혼은 했어? 애는 몇 이야? 나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
오랜 만에 안부를 주고받고 나서 쭈뼛거린다 싶었다. 그리고, 이어진 한 마디.
“나, 사실은 00보험사에 다녀.”
그 순간부터 대화는 방어적인 자세로 진행됐다. 그러다 결국은 “어…어.. 잘 지내고, 미안하다”로 끝나버리는….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몇 해 되는 동안 보험 설계사인 친구들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늘 반가움으로 시작해서 허무함과 미안함으로 끝을 맺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투자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어서였다. 금융상품으로서의 보험의 가치, 경제적 가치에 대해서 나름 잘 안다고 믿었다.
‘인플레이션이 반영되고, 화폐가치가 반영되는 주식에 투자를 하는 게 낫지. 보험에 가입을 왜 해?’라는 선입견 같은 것이 강하게 있었던 있었던 탓에 친구들의 전화는 모두 이러저러한 이유로 거절을 했었다.
그 때 나에게 보험이란 ‘애써 거절을 해야 하는 불필요한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적어도 그(!)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드럼모임이 있는데, 모임 멤버 중에 한분이 말기암 진단을 받았대. 그런데, 가입한 보험이 하나도 없다지 뭐냐. 그 분에게 정말 너무 미안해서 어쩌지?”
어느 날 술자리에서 친구가 술을 마시며 내 뱉은 말이다. 거절을 당하더라도 보험에 대해서 이야기라도 해볼 걸 하는 후회가 든다고 했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보험을 금융상품처럼 취급하잖냐. 그래서, 수익은 얼마인지, 내가 얼마를 받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위험에 대한 부담을 덜면서 살 수 있는 ‘마음의 위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친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거나해지면 호기롭게 말을 주고 받는다. “내가 죽더라도 내 자식들은 니가 잘 돌봐줘라.” “당연하지, 너도 그럴 거지?”
이런 대화에 위로를 받으며 ‘친구’라고 느끼며 살아 왔는데. 정작 진짜 이런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보험에 대해서는 ‘왜 금융상품이라고만 생각해 왔을까’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보험은 금융 상품이 아니다. 굳이 술 마시며 이야기하지 않아도 나를 대신해서 소중한 이들을 지켜주는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