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박경보 기자ㅣ지난해 국내에 등록된 수입차는 총 24만 5000여 대. 전 세계적인 수요 둔화로 최근엔 성장이 주춤하지만, 독일 브랜드의 국내 입지는 여전히 굳건합니다. 특히 4년 연속 시장 1위를 기록한 메르세데스-벤츠는 시장 점유율이 28%에 달할 정도죠.
메르세데스-벤츠가 워낙 잘 팔리다 보니 E클래스나 S클래스는 어딜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차가 됐습니다. 30년 전 대한민국 최고의 고급차였던 그랜저가 ‘국민차’로 내려왔듯, 메르세데스-벤츠에 대한 문턱도 상당히 낮아졌습니다.
이렇다 보니 ‘남들과 다른 차’를 원하는 수입차 오너들도 적지 않은데요. 실제로 기존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고객이 주로 선택하는 마세라티는 기본 1억 원이 넘는 고가에도 매년 1000대 이상 판매되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914년 이탈리아에서 설립된 마세라티는 레이싱카를 수작업으로 주문 제작한 것이 시초입니다. 설립 초기부터 모터스포츠에 전념하며 ‘고성능 레이싱카’로 이름을 알려왔는데요. 1957년을 끝으로 경주에 출전하지 않고 있지만, 마세라티의 모든 라인업은 여전히 ‘레이싱카 DNA’를 품고 있습니다.
이렇듯 달리기 위해 태어난 마세라티는 안락함이 강조되는 일반적인 고급차와 확실히 구분되는데요. 마세라티의 기함인 콰트로포르테(Quattro porte) 역시 대형차임에도 쇼퍼드리븐카가 아닌 오너드리븐카에 가깝습니다. 차량의 내·외관 디자인부터 파워트레인, 배기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운전의 재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는 언뜻보면 막내 ‘기블리’와 전면 디자인이 유사합니다. 매우 낮게 설계된 엔진 후드는 역동적인 디자인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어우러져 ‘상어의 코’를 연상시키는데요. 특히 넵투누스의 삼지창을 형상화한 엠블럼은 마세라티의 레이싱카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합니다.
콰트로포르테는 대형차답게 전장(5265mm)이 5미터가 넘고 휠베이스도 3170mm에 달합니다. 전장은 물론 전폭(1950mm)까지 넓다 보니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특히 트렁크에서 2열 도어로 흘러가는 측면 캐릭터 라인은 근육질 몸매를 부각시켰습니다.
콰트로포르테의 외관이 공격적인 디자인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실내는 명품으로 무장한 고급감이 특징입니다. 시승차는 1억 9400만 원에 판매되는 S Q4 그란루소(GS) 트림인데요. 명품의 나라 이탈리아 출신답게 대부분의 내장재를 자국의 명품 브랜드로 휘감았습니다.
명품 남성복 브랜드로 유명한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멀버리 실크는 도어 패널, 천장 등 다양한 내장재에 적용돼 있는데요. 특히 시트 등에 사용된 최고급 이탈리안 가죽은 ‘폴트로나 프라우’의 작품으로, 마세라티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가죽이라고 합니다. 차량 곳곳에 이탈리아인들의 장인정신이 그대로 녹아있는 셈이죠.
차량에 대한 탐색전을 마쳤으니 본격적인 시승에 나설 시간. 차량의 시동을 걸기 위해 습관적으로 오른손을 더듬거렸지만 시동버튼이 보이지 않았는데요. 마세라티는 포르쉐와 마찬가지로 운전석 왼쪽에 시동버튼을 두고 있는데, 레이싱카 DNA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디자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량의 시동을 걸자 우렁찬 배기음이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습니다. 마세라티의 고유의 묵직한 배기음은 브랜드 최고의 경쟁력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평이 나 있죠. 일반적으로 배기음은 소음으로 치부되지만, 마세라티의 배기음은 ‘오케스트라 연주’와 비슷하달까요.
실제로 마세라티는 엔진사운드 디자인 엔지니어와 함께 피아니스트, 작곡가를 자문위원으로 초빙해 배기음을 조율한다고 하는데요. 이때 ‘작곡’한다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배기음에 각별히 공을 들인다고 합니다.
특히 마세라티는 20세기 최고의 테너로 평가받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마세라티에 빠진 파바로티는 본사에서 예술적인 배기음이 탄생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세브링’ 모델을 구입했다고 하는데요. 마세라티의 묵직한 고음은 파바로티의 단단한 음색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마세라티는 ‘배기음’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대부분의 브랜드가 즐겨쓰는 인공적인 배기음을 쓰지 않는데요. 물론 디젤 모델엔 ‘액티브 사운드 시스템’이 들어가긴 하지만, V8 3.0ℓ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이 전해주는 강렬한 배기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배기음과 더불어 마세라티만의 ‘달리기 성능’ 자체도 여느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승차인 콰트로포르테는 공차중량이 2톤이 넘는 거구지만, 실제 주행감각은 날렵한 스포츠카에 가까웠습니다.
콰트로포르테에 탑재된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은 마세라티와 페라리가 공동 개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엔진은 최고출력 350마력, 최대토크 51.0kg.m에 달하는 괴력을 내는데요. 대형차인데도 정지상태에서 100km/h에 도달하는 시간은 5.5초에 불과하고, 270km/h까지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에 올라 센터콘솔에 위치한 서스펜션, 스포츠 모드 버튼을 누르자 차량은 훨씬 거칠어졌습니다. 깊고 굵어진 배기음은 물론이고, 서스펜션도 한층 단단해지고 낮아졌습니다. 대형세단의 탈을 쓰고 있지만 사실상 스포츠카로 완벽하게 변신한 셈이죠.
스포츠모드에서 액셀레이터에 힘을 주면 몸이 시트에 깊게 박힐 정도로 가속 반응력이 매우 좋았습니다. 트윈터보를 적용한 덕분인지 터보차 특유의 ‘터보랙’은 거의 느낄 수 없었는데요. 패들 시프트로 기어 단수를 3단까지 낮췄을 때 100km/h 이상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시승차인 ‘S Q4’ 모델은 전자식 4륜 시스템을 품고 있지만, 일반적인 고급차의 상시 4륜(AWD)과 다른 것도 차별점입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4매틱, BMW X드라이브 등은 4륜 시스템이 자주 개입하는 편인데요. 하지만 마세라티의 S Q4는 가속할 때와 타이어 접지력이 부족할 때만 자동으로 전륜에 힘을 분배했습니다.
AWD는 고속주행과 커브길 안정성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커진 저항 탓에 가속에서 손해를 보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마세라티는 과감히 AWD의 개입을 줄이는 대신 차축에 기계식 차동 제한 장치(Limited-Slip Differential)를 장착했는데요. 주로 오프로더에 적용되는 LSD는 한쪽 바퀴의 접지력을 잃더라도 정상 바퀴에 동력을 몰아주기 때문에 주행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콰트로포르테는 고속으로 코너를 돌아나갈 때도 지면을 단단하게 움켜쥐었습니다. 차체의 움직임이 불안정하면 엔진 토크를 낮춰 각 바퀴에 필요한 제동력을 분배한다고 하는데요. 고배기량의 후륜차는 급가속 시 구동축인 후륜이 접지력을 잃는 경우(털림 현상)가 있는데, 콰트로포르테는 불안감없이 안정적인 고속주행이 가능했습니다.
이처럼 안정적인 핸들링 감각은 마세라티만의 고집스러운 차체 무게 배분도 한몫 한 듯 했습니다. 마세라티의 모든 차종은 앞뒤 무게가 50:50으로 완벽하게 배분돼 무게중심이 동급에서 가장 낮은데요. 앞차축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 엔진을 최대한 뒤쪽으로 밀어낸 덕분입니다.
콰트로포르테의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은 기존 유압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었는데요. 유압식의 예리한 코너링 감각은 유지하면서도 차선이탈방지 시스템 등 전자식만 가능한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을 함께 챙겼습니다. 특히 고속주행 시 스티어링 휠이 매우 묵직해지면서 직진성을 확보했는데, 일반적인 보타가 필요없던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럭셔리세단 치고 첨단 장비가 부족한 것은 다소 아쉽습니다. 최근 자율주행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고속도로에선 운전자 개입이 거의 필요없는 단계까지 왔는데요. 하지만 콰트로포르테를 비롯한 마세라티 모델들은 차로유지보조가 아닌 차선이탈방지보조에 머물고 있습니다. 차선의 중앙을 따라가진 못해도 조향에 능동적으로 개입해 차선이탈을 막는 기능이죠.
◇ 총평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를 한마디로 ‘감각신경을 일깨우는 럭셔리 스포츠세단’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귀를 두드리는 매력적인 배기음과 실내 재질의 고급감, 아드레날린을 발산하게 하는 파워풀한 동력성능. 시승하는 내내 시각과 청각, 촉각이 골고루 자극을 받은 셈입니다.
직접 시승해본 마세라티는 국내 일부 동호인 사이에서 비판받았다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만족스러웠는데요. 브랜드 특유의 주행감성은 물론이고 내릴 때의 ‘하차감’ 역시 높았습니다. 눈에 띄는 단점은 같은 집안의 대중브랜드와 공유하는 일부 실내 부품과 아쉬운 ADAS 기능 정도.
천편일률의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마세라티의 가치는 명확한 듯합니다. 마세라티 고유의 감성과 운전의 즐거움, 아무나 얻기 힘든 희소성까지. 조만간 신차들도 쏟아져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마세라티의 ‘쾌속질주’를 더욱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