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권지영 기자ㅣ 퇴직연금 시장 확대를 두고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업계 사이에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보험사들의 실무자들이 모여 금융당국에 퇴직연금과 관련된 업계 건의사항을 얘기했지만, 돌아온 금융당국의 답변이 각각 달랐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사적연금 현장 간담회에서 생명보험 업계가 건의한 변액보험의 퇴직연금 편입건에 대해 금융 당국은 "적극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당국은, 손해보험 업계가 요청한 '25년 연금지급 기간' 룰 폐지와 '연금보험 추가 세제혜택'에 대해서는 "지금 말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 생보 "변액보험 퇴직연금 편입 허용해 달라"..금융위 "긍정 검토"
이날 생보 업계에서는 다른 금융권(은행, 증권)처럼 실적배당형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견을 냈다. 현재 퇴직연금 감독규정의 조항에 따라 보험계약에서 실적배당형 즉 손실보장이나 이익에 대해선 약정할 수 없게 돼있다.
생보업계에서는 이같은 조항이 퇴직연금과 관련된 보험상품을 개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건의했다. 현재 저금리 상황에서 실적배당형 상품에 대한 고객 니즈가 높아져 있는데, 퇴직연금 감독규정이 보험상품 개발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보사는 이같은 감독규정을 수정해 변액보험의 퇴직연금에 편입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김진현 차장은 "미국과 호주에서는 이미 변액연금의 퇴직연금형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고 외국사례를 언급하며 "적립금을 실적배당으로 운용하면서 65세까지 유지하면 납입원금은 보장해준다"고 말했다.
임종룡 위원장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퇴직연금 감독규정 개선안을 국회에 입법예고하는 동안 검토해보겠다"며 "퇴직연금에 대한 고객의 수요가 워낙 높고, 변액보험이지만 원금을 보장할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당국은 현재와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운용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생보사가 이번에 요청한 사안이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당국의 방침과 비슷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수익률이 높은 퇴직연금 상품 개발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고, 퇴직연금 시장을 확대하는 데도 영향이 있을 게 금융 당국의 전망이다. 김진현 차장은 "퇴직연금 가입자는 대부분 안정지향적인 성향이 강하다"며 "변액연금은 장기적으로 안심하고 실적배당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좋은 상품이다"고 강조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변액보험의 퇴직연금 편입과 관련해 손보사의 입장을 동시에 고려하겠다는 의견을 냈다. 임 위원장은 "그동안 변액보험 편입을 제한했던 이유는 손보사와 업무영역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면서도 "업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내부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손보 "연금지급기간 25년룰 없애달라"..금융위 "글쎄"
손보사에서는 가장 먼저 25년으로 제한된 연금 지급기간을 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연금 지급기간 제한때문에 100세 시대에 연금으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간담회에 참석한 김문정 현대해상 부장은 "손보사는 25년 연금 지급기간 제한때문에 55세에 연금이 지급되면 80세까지 밖에 받지 못하는데 타 업권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100세 시대 추세에 맞게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생명보험 업계와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사안인 데다, 필요하면 연금개시 시점을 뒤로 늦추면 된다는 당국의 논리. 예컨대, 연금 개시시점을 60세 혹은 65세로 늦추면 85세나 90세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임종룡 위원장은 이와 관련한 현장에서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그는 "인(人)보험에 있어서 생명보험은 종신보장이고, 손보는 장기보장으로 나뉘어 있다"며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다만, 업권간의 얘기를 더 들어보겠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이석란 금융위 연금팀장도 "이 문제는 퇴직연금 활성화 방안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기 보단 업권간의 다툼이 더 큰 사안"이라며 "따라서 이 문제를 정책적으로 풀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손보업계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25년 연금 지급기간 해제'는 금융 당국에 오래 전부터 요청한 사안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면 퇴직연금 시장에서 손보사의 점유율이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한 손보업계 관계자는 "손보사의 입장은 없던 것을 만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25년 연금지급기간을 추가적으로 늘려달라는 것이다"며 "당국이 진짜 소비자의 선택권에 대해 생각한다면 이 문제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보사는 연금보험의 세제혜택 방안에 대한 의견도 냈다. 올해부터 연금저축이 연간 400만원 한도로 12% 세액 공제로 바뀌었는데 추가 납입분에 대해서도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것.
김영진 LIG손보 부장은 간담회에서 "연금저축의 세액공제가 연간 400만원 한도때문에 여유자금이 생겨도 연금에 추가로 넣을 유혹이 없다"면서 "연금은 보통 20~30년을 보고 가입하는데, 추가적인 세제 혜택방안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연금을 집중 납입하는 기간(40대~50대)에는 세제혜택을 더 많이 주는 방법을 제안했다. 추가 납입분에 한해 세제혜택 피크 기간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손보사의 건의 내용은 충분히 알겠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세제혜택과 관련해서는 금융위와 기획재정부가 함께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임 위원장은 "연금 세제와 관련해서는 국민에게 더 혜택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왜 하지 않겠느냐"며 "간단하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서 신중히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원금보증과 관련해 보험사의 리스크관리 우려에 대한 의견도 제기됐다. 원금과 수익을 동시에 보장하는 대신 보험사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을 정책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용석 한화생명 부장은 "변액연금의 경우 고객 자산을 지키기 위해 최저보증에 따른 수수료를 받아 적립하고 있다"면서 "적립금을 쌓는다고해서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변액연금활성화를 위해서는 수수료부분 해결도 함께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임 위원장은 "이 부분은 금융위 보험과와 상의해서 왜곡된 형태로 리스크가 헷지되지 않도록 논의해보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