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권지영 기자ㅣ 금융당국이 금융사의 현장목소리를 듣겠다고 나선지 두 달이 돼가고 있다. 지금까지 6주간 62개 금융회사를 방문했고, 1084건의 건의사항을 접수했다. 당국은 건의받은 내용에 대해 2주 안에 회신해야 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지난 13일 금융당국은 1~3주차(4월중) 현장 건의사항에 대한 회신결과를 발표했다. 보험업권의 민원은 전체 447건 중 154건으로 은행·지주·금융투자·비은행 업권 가운데 가장 많았다. 이 중 77건은 수용됐고, 나머지 41건은 추가검토, 36건은 반려됐다.
그렇다면 보험사가 가장 많이 건의하는 내용은 무엇일까. 지난주에 발표한 당국의 현장점검 발표결과를 잘 살펴보니, 보험사 소송관련 민원공시에 관한 내용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보험사는 3주에 걸쳐 '소송공시에 민사조정 제외', '민사소송에서 일부패소에 대한 금감원 보고 제외'를 요구했다. 게다가 '소송현황 공시 폐지'까지 요구했다. 소송건수가 공개돼 많은 보험사들이 비난을 받고 있어 경영활동에 애로가 있다는 논리.
하지만, 당국은 "소비자의 알권리를 위하고 보험사의 소송남용 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보험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보험사의 소송 현황공시는 최근에 새롭게 바뀌었다. 기존에는 보험금 지급관련 소송 공시를 단순 소송제기건수만 공시했지만, 지난달 1일부터 보험사 원고·피고로 나누고 승·패소율도 일부(승·패소)와 전부(승·패소)로 상세하게 분류했다. 민사소송의 경우도 조정이 성립됐는지와 조정 신청이 취하됐는지도 분리해서 건수를 공시하고 있다.
이는 보험사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그동안 (소송)단순 건수만 공시돼 '소송을 남발한다'는 오해를 받아왔다는 게 보험사들의 하소연. 이 때문에 일부 보험사는 소송 승소율을 공개하자고 요구해 왔다. 높은 승소율을 보여줌으로써, 보험사가 '막무가내식으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이번에는 '소송현황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제도가 바뀐 지 불과 한 달여만에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바뀐 것이다. "현장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당국의 노력에 기대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된 형국이다.
물론, 소송 현황 공개는 보험사에 껄끄러운 부분이다. 보험사 입장에선 소송제기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 보험사기나 도덕적 해이 등에 대처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선후(先後)라는 게 있다.
지난해 보험사와 소비자 사이에서 발생한 소송건수가 1000건에 육박한다. 이 중 보험사가 제기한 소송이 986건에 달한다. 상식적으로 '너무한 거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만한 수치다. 애초에 의도했던 대로 '높은 승소율'로 의구심을 떨쳐내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다.
그런 다음 소송현황 공시 폐지를 요구해도 늦지 않다. 괜히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비쳐지는 일을 해봐야 금융당국으로부터든 소비자들로부터든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