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안정호 기자ㅣ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에너지솔루션(대표 신학철)과 SK이노베이션(대표 김준) 간 배터리 영업 비밀 침해 소송에서 LG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해졌습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ITC는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관세법 337조 위반 혐의로 SK이노베이션에 대해 10년간 리튬이온 배터리 일부 제품의 미국 수출 금지를 결정했습니다. 다만 제한적으로 SK의 공급업체인 포드와 폭스바겐의 배터리 부품·소재는 각각 4년, 2년의 유예기간을 뒀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26억달러(약 3조원)를 들여 미국 조지아주에 2개의 배터리 공장을 착공하며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번 ITC 판결로 인해 기존 고객과의 영업과 미국 내 신규 고객 확보가 어려워졌습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과 적극적 합의 ▲미 대통령의 ITC 최종 판결 거부권 ▲미 연방항소법원에 항소 등 배터리 사업에 대한 다각적 출구전략을 강구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 50여일 남은 합의 시한..관건은 합의금 액수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의를 결정할 데드라인은 오는 4월 11일까지입니다. ITC 최종 판결에 대한 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이 53일로 이날까지기 때문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해당 기간 내 LG에너지솔루션과 합의를 마쳐야 ‘10년간 미국 수출 금지’를 피할 수 있습니다.
업계 안팎은 소송이 장기화 될 경우 장기적 배터리 사업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SK이노베이션이 기한 내 합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강동진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 및 한국 등에서 발생한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한 피해에 대해 최대 200%에 달하는 징벌적 배상금을 부담해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주 양사 간 소송 결과를 놓고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전해집니다. 협상 관건은 합의금 규모입니다. ITC 최종 결정 직전까지 LG에너지솔루션은 2조원에서 3조원 사이의 합의금액을 제시했지만 SK이노베이션은 1조원 미만의 합의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양사가 제시한 합의금액 차이가 2조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합의금액 차이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16일 보고서를 통해 “양사가 적정 수준에서 합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관측되고 있다”며 “합의 금액은 SK이노베이션의 수주잔고 85조원에 과거 ATL(중국의 배터리 기업)과 소송 당시 적용됐던 로열티 3%를 가정한 2.5조원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라 예상한다”고 전망했습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이 가진 유동자산은 약 1조8000억원 정도입니다. 양사의 상황을 감안할 때 SK측 계열사 지분을 넘기는 방안도 검토될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업계에 따르면 전망은 이르지만 상반기 상장(IPO) 최대어로 거론되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 美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기대할 수 있을까
LG-SK간 합의가 안되더라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ITC 최종 판결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번 판결이 무효가 됩니다.
이에 대해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주지사는 지난 12일(현지시각) 바이든 대통령에게 판결 철회 및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습니다. 일자리 등 지역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켐프 주지사는 “이번 판정 결과로 조지아주에서 진행되는 26억달러(약 3조원) 규모의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프로젝트가 타격받을 수 있다”며 “ITC의 최근 결정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SK의 2600개 청정에너지 일자리와 혁신적인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ITC 판결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사업에 한해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ITC의 판결을 반영해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고려해야하는 델라웨어 민사소송에서 결론 나게 됩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낮은 편입니다. 2010년 이후 600여건의 ITC 소송 중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하고 영업비밀 침해 건에 거부권이 행사된 적은 ITC설립 이래 1건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ITC가 미국 산업 보호를 위한 유예기간을 둬 거부권 행사의 명분이 작아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강동진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선례로 보았을 때 확률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폭스바겐과 포드에게 공급처를 변경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준 것이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이 낮아진 것으로 판단한다”고 분석했습니다.
◇ 합의·거부권 불발되면 남은 카드는 ‘항소’
합의금 격차를 줄이지 못하거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불발되면 SK이노베이션은 미 대통령의 ITC 최종 판결 검토 기간이 끝난 뒤 미 연방항소법원에 항소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ITC의 최종 판결 이후 SK이노베이션은 “이후의 절차를 통해 이번 결정을 바로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한편 ITC 판결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향후 항소 등 정해진 절차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해 진실을 가릴 계획”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항소 대안 중 하나이지만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 ‘수입금지’ 처분을 안고 가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SK이노베이션에게 유리한 최종 판결이 나올지도 미지수입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16일 리포트를 통해 “미 행정부가 ITC 최종결정에 대해 인용 시 SK이노베이션의 항소는 가능하나 수입금지조치 효력은 항소절차 진행 중에도 지속되고 거부권 행사 시에도 여타 소송 관련 불확실성은 상존하고 있다”며 “양사 간 소송 불확실성의 해소 차원에서는 합의가 실효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