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보험용어는 몇 년을 보험업에 종사해 왔어도 여전히 복잡하고 어렵다. 보험은 돈이 오고가는 분야인만큼 보수적인 영역임에도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새로운 용어도 계속해서 생겨나며, 그 용어의 정확한 의미와 쓰임을 고객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설계사에게는 지속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담보(擔保)라는 말은 ‘보증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보통 보험에서 보장해주는 부분에도 ‘담보’라는 단어를 쓴다. 종신 보험의 담보는 ‘사망’이 될 테고, 암 보험의 담보는 ‘암’, 치매 보험의 담보는 ‘치매’가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약관에 명시된 병명으로 ‘진단’을 받아야 하며, 때로는 진단 외에 부수적인 조건이 충족되어야 보험금이 지급되는 경우도 있다.
질병을 보장해 주는 보장성 보험의 담보(특약) 항목을 보면 ‘진단비’라 되어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치료비’라고 명시된 부분도 있다. 언뜻 들었을 때는 비슷하게 다가오는데 어떻게 다른 걸까? 가장 익숙한 암보험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면, 암 진단비의 경우 해당 질병 코드로 진단을 받을 경우 보험금이 지급된다. 즉, 수술이나 치료 여부와 상관없이 의료기관에서 발급받은 암 진단서를 통해 회사가 약속한 금액을 받는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실손 보험 가입률이 80%를 넘어섰고, 암과 같은 중병의 경우 환자는 건강보험 공단의 산정특례 제도를 통해 5년간 5%의 치료비만 부담하면 되기 때문에 치료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진단비’가 중요한 이유는 100% 내 부담이 되는 고가의 비급여 치료비용이나 치료기간 동안의 소득단절을 감안해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암보험 등을 가입하는 것이다. 또한 진단만으로 보험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선 치료 후 청구 방식인 실손 보험 혜택을 받기 전에 안심하고 치료에 임할 수 있게 된다.
진단으로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진단비 담보와 달리 ‘치료비’는 말 그대로 약관에 명시되어 있는 해당 치료를 받아야지만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예들 들어 ‘항암 치료비’는 암 진단 후 항암치료를 받아야 보험금을 받는 항목이다. 암 진단 외에도 해당 치료를 받았다는 치료확인서를 보험금 지급의 근거로 삼는다. 수술 치료비라면 수술확인서를, 표적항암약물허가 치료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된 범위 혹은 그 외의 사용이라 해도 ‘암질환심의위원회’를 거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승인한 요법으로 사용힌 경우 보장이 가능하다. 이렇듯 진단비가 아닌 치료비의 경우 해당 질병의 진단 외에 명시된 치료를 행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으니 다소 보험금 지급이 까다롭게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심플하게 ‘진단비’로만 보험가입을 하면 좋을 것 같지만, 보험의 원리상 서류 한 장으로 지급이 가능한 진단비는 월 보험료가 높을 수밖에 없다. 또한 국민 3명 중 한 명은 걸린다는 암은 그만큼 진단확률이 높은 질병이기 때문에 연령이 올라갈수록 보험료는 상상 이상으로 높아진다. 그러므로 적정한 보험료로 암 보장 금액을 확보하고 싶을 경우 진단비보다는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치료비 특약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또한 암 진단비의 경우 해당 보험사별 가입 한도 및 타사 합산 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생명사 1억원+손해보험사 1억원) 이미 가입 합산 한도를 초과했을 경우 해당 질병에 대한 대비를 더 강화하고자 한다면 치료비 담보가 대안이 된다.
내가 가입한 암 보험은 어떤 암으로 진단을 받아도 보험가입 금액을 모두 지급할까? 회사별로 혹은 가입 시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암에 걸렸다 해서 무조건 보험금을 100% 지급하는 것은 아니다. 암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통상 ▲일반암 ▲소액암 ▲유사암으로 구분을 한다. 종종 ‘고액암’이라고 해서 치료가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암을 따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지만, 의료기술의 발달로 고액암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암 생존율이 높아진 만큼 치료기간과 비용은 외려 과거보다 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일반암은 소액암과 유사암을 제외한 모든 암을 가리키며. 소액암은 일반암보다는 덜 위험하면서 완치율이 월등하게 높은 암을 의미하고 유방암, 자궁암, 남녀생식기암, 전립선암 등이 여기 포함된다. 소액암은 일반암에 비해 진단비가 10~30% 수준으로 낮게 책정 되어 있지만 그 대신 보장을 해주지 않는 면책기간이 따로 없어 가입한 날부터 보장이 시작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유사암은 소액암으로 분류된 암 보다도 심각성이 높지 않으면서 치료가 수월한 암을 가리키는데, 이를 두고 보험사와 가입자간의 분쟁이 왕왕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 해석하는 기준이 보험사마다 상이하고 그저 진단 코드로만은 분류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표준질병분류기호에 의하면 암(악성신생물)의 질병 코드는 대개 C로 시작을 한다. 이와 달리 유사암으로 보는 경계성 종양이나 상피내암, 제자리암은 D코드를 받게 되어 판단이 용이하지만 기타피부암, 초기갑상선암, 대장점막내암, 비침습 방광암은 C로 분류될 여지가 있는 악성 신생물에 해당하기 때문에 일반암 진단비와 유사암 진단비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이유로 보험사가 진단비 지급을 판단할 때 진단명과 질병 코드도 중요하지만, 병리과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의사에 의한 정밀검사 결과지를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더, 전이암도 암 진단비를 받을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암 진단비는 원발암, 암이 처음 시작한 기관(장기)의 암을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 한다. 즉, 진단이 전이암과 같은 이차성 암일 경우 따로 관련 특약을 가입하지 않은 이상 지급이 제한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한 암보험 가입자가 일반암 2천만 원 소액암 4백만 원의 보험을 가입한 후 유방에서 시작된 암이 전이되어 폐암까지 진단을 받았을 경우 이 가입자는 소액암에 해당되는 진단비만 받을 수 있다. 원발암이 유방이고 폐암은 이차성 암이기 때문이다.
보험으로 내게 닥칠 위험을 100% 해결하거나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보험이 필요한 이유는 치료에 많은 비용과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요소를 줄이기 위해 가입하는 것이 보험인만큼 관심과 챙김이 필요하다.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만일 내가 암으로 진단 받게 된다면 무엇이 가장 먼저 필요할까를 고민해보는 일은 매우 유의미하다. 한 가지만 잊지 않으면 된다. 보험, 남이 아닌 나를 위해 마련하는 자산이라는 점 말이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