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주거는 한국에서 가장 인화성 강한 이슈 중 하나입니다. 삶을 유지하는 근저의 조건이면서 재산을 증식하기 위한 서민의 욕망의 사다리이기도 합니다.
필수요소는 자금입니다. 현금부자라면 걱정 없겠지만 대다수 서민은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는 대출에 의존합니다. 오를대로 오른 집값의 일정비율을 대출로 조달하다 보니 원리금 내는 건 빤한 살림에 부담입니다.
주거사다리 마련을 위한 대출금은 최대로, 상환기간은 최장으로 늘리면서 이자는 단 0.1%라도 싸게…일반대중의 이런 수요를 자극한 상품이 나오자 시장은 들썩였습니다.
집값이 9억원 이하라면 소득과 관계없이 최대 5억원을 4%대 고정금리로 최장 50년 동안 쓸 수 있는 정책대출상품 '특례보금자리론'이 올초 등장한 것입니다.
부동산 경착륙을 우려하는 정부가 대출공급으로 가계에 '빚내 집사라' 신호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물론 정부당국은 부정합니다.
특례보금자리론은 날개 돋친듯 팔려나갔습니다. 당초 공급목표 39조6000억원은 지난 9월 이미 돌파했습니다. 최종 공급액은 44조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주택금융공사는 내년 1월말 특례보금자리론 판매를 중단할 예정입니다.
이 시기 시중은행들도 앞다퉈 비슷한 대출상품을 출시했습니다. 은행권의 초장기(50년)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상품입니다.
이 상품은 만기가 길어질수록 대출자가 갚아야 할 전체 원리금이 늘어나지만 1년단위로 소득 대비 원리금 감당능력을 보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특성상 대출자로선 대출한도를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주거사다리를 활용해 수차례 집을 갈아타면서 재산을 불리고 마침내 내집 마련에 이르는 서민들에겐 현금 확보 수단으로 매력적입니다.
50년 주담대 역시 시장의 큰 관심을 받으며 불티나게 판매됐습니다. 가계대출 증가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증가폭이 예상보다 가팔라지자 금융당국이 제재에 나섭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은행들이 나이제한 등 기본을 지키지 않은 채 수익만을 목적으로 무리한 상품을 내놓았다고 정면비판했습니다.
이어 지난 9월 금융당국은 차주(대출자) 상환능력이 '명백히 입증'되지 않는 한 대출한도를 결정짓는 DSR 산식을 40년 만기로 끌어내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도변경안을 내놓습니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본격 판매 불과 3개월 만에 가계대출 폭증의 주범으로 철퇴를 맞고 사실상 퇴출됐습니다.
상품은 반짝하고 사라졌지만 논란은 여전합니다. 50년 초장기 상품 출시의 불을 댕긴 건 정부당국이고 이런 가이드라인에 맞춰 유사상품을 판매한 것인데 가계에 '빚폭탄'을 돌렸다는 비판은 은행권만으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택 실수요자 등 차주로서도 조금이나마 상환부담을 줄일 수 있는 레버리지 상품의 철수는 아쉽고 혼란스럽습니다. 50년 만기로 대출을 받는다고 해서 실제 50년후 상환하기보다 갈아타기와 내집 마련에 이르는 과정에서 만기 도래 전 상환하는 게 일반의 통례라서 그렇습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초장기 주담대 상품은 요즘 대부분 나이제한이 걸렸고 최대 만기도 40년으로 돌아가 50년만기는 더 이상 취급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은행들은 당국에서 나오는 정책과 판단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민간도 공공도 초장기 대출상품 공급을 통한 무주택 실수요자의 금융부담 완화가 당초 목표였던 만큼 갑작스런 퇴출과정은 여전히 안타깝다"고 부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