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장승윤 기자ㅣ남양유업[003920] 경영권을 놓고 3년간 이어진 공방이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 승리로 마무리됐습니다. 60년 만의 오너일가 퇴진 소식에 주가는 30% 올랐고 정상적 기업 경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경영 정상화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입니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한앤코는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 일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습니다. 대법원 2부는 지난 4일 한앤코가 홍 회장 일가를 대상으로 한 주식 양도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양사의 법정 분쟁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국민들의 공포감이 극에 달했던 2021년 5월 남양유업은 자사 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 저감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면서 압수수색이 진행됐습니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홍 회장은 사퇴 의사 표명과 함께 한앤코에 일가 지분 53.08%를 3107억원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9월 돌연 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한앤코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으로 맞섰습니다. 3년간 이어진 법정 다툼 끝에 한앤코는 남양유업 경영권을 인수하게 됐습니다.
기업 가치 개선 기대감에 주가도 뛰었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1일 45만7500원이었던 남양유업 주가는 대법원 판결 다음날인 이달 5일 종가 60만5000원으로 8일 만에 30% 넘게 올랐습니다. 이날 장중 64만50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찍기도 했습니다.
한앤코는 기업 인수·합병(M&A) 후 매각으로 수익을 내는 바이아웃 형태의 사모펀드입니다.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높은 금액에 되파는 것이 목적입니다. 올해를 기점으로 남양유업의 비정상적인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력 사업 강화와 동시에 신사업 발굴 등 경영 정상화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입니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법원 선고일자가 정해진 당일 남양유업의 주가가 급등했다"며 "남양유업의 새 주인이 된 한앤컴퍼니는 집행임원제도 도입, 직원들의 고용 승계, 훼손된 기업 이미지 제고, 실적 개선 등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현재 한앤코는 주식 양도를 거부하고 있는 홍 회장을 상대로 강제집행 신청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강제집행이란 사법권의 청구권을 국가 기관을 통해 강제로 실현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3월 정기주주총회 전 지분 정리를 원하는 한앤코 상황을 고려했을 때 2월 강제집행이 진행될 거란 예측도 나옵니다.
대법원 상고심 판결 직후 남양유업은 "조속한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으나 이후로는 추가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한앤코가 절차대로 남양유업 지분을 넘겨받더라도 기업 가치 상승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먼저 부정적인 기업 이미지의 개선이 시급합니다. 남양유업은 2013년 이른바 '대리점 갑질 사건'을 시작으로 홍 회장 지시로 밝혀진 경쟁사 비방 댓글, 외손녀 마약 투약 등 논란으로 불매 기업 리스트에 오랫동안 이름을 올렸습니다. 기업명이 1964년 남양 홍씨 본관을 따왔다는 점에서 우선 사명 변경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남양유업이 소비자들의 집중적인 불매 공격을 받고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며 수년간 법적 공방을 벌일 동안, 출산율 감소 위기에 직면한 유업계는 신사업 발굴에 적극 나섰고 뚜렷한 성과도 나타났습니다. 대표적인 게 성인영양식 사업입니다.
매일유업이 2018년 출시한 단백질 영양식 셀렉스는 누적 매출이 3000억원을 넘었습니다. 하이뮨은 중장년층 공략과 모델 효과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일동후디스 실적을 끌어올렸고 누적 매출은 4000억원을 돌파했습니다. 빙그레의 단백질 음료 더단백은 출시 2년 만에 누적 판매 3000만개를 달성했습니다.
국내 유업계 1위 서울우유는 우유를 활용한 아이스크림 등 프리미엄 콘셉트와 디저트 신제품을 출시하며 흰우유 의존도를 줄이고 있습니다. 식물성 단백질 시장은 규모는 아직 작지만 매일유업 어메이징 오트 등을 필두로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유업계는 해외 분유 수출로 활로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반면 남양유업은 경쟁사들에 비해 사업 다각화의 기회를 놓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단백질 음료 테이크핏 누적 판매량이 1600만봉을 넘겼고 다양한 스포츠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지만 셀렉스와 하이뮨 2강에 가려져 존재감이 높지 않습니다. 식물성 음료 사업(아몬드데이) 역시 초기 단계입니다.
실적은 뒷걸음질쳤습니다. 매출은 2020년 1조원 아래로 떨어졌고 2019년 4억원을 기록한 영업이익은 2020년부터 3년 연속 700~800억원대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3분기 누적 영업손실도 280억원에 달해 지난해도 적자 경영이 예상됩니다.
남양유업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동남아시아 국가 대상으로 분유 사업을 확대했고 지난해 분유수출 매출(396억원)은 전년보다 49% 증가했습니다. 학교 급식과 카페 우유 납품을 늘렸고 대형마트 등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하며 비용 절감에 나섰습니다. 올해 경영 안정을 바탕으로 흑자 전환을 노리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남양유업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직원들일 것"이라며 "출산율 감소로 업황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경쟁사들이 신사업 동력 제품을 발굴하는 동안 남양유업은 법적 분쟁을 하느라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경영 정상화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