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조성원 기자] 집에서 기르는 ‘반려동물’이 있으십니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주위에서 반려동물을 키운다 하면, 다른 동물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백이면 백 모두 ‘개’였습니다. 개와 함께 떠오르는 ‘고양이’는 항상 앞에 ‘도둑’자가 붙는 불청객일 뿐이었죠.
최근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좋지 않던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고양이가 가지고 있는 독립적인 성향이 바쁜 현대인이 함께 하기에 적합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고양이란 동물이 ‘어마무시하게’ 예쁘다는 걸 겁니다.
저 역시 ‘애묘(猫)인’ 중 하나입니다. SNS에서 제가 팔로하는 계정의 상당수가 ‘고양이 집사’들이고, 배트맨 영화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캣우먼이었죠(연기한 배우와는 상관이 없...).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키우진 못하는 상황입니다.
저처럼 고양이를 키우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 있으니, 바로 몇 년 전부터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 ‘고양이 카페’입니다. 말 그대로 ‘고양이가 상주하는 음료가게’죠. 이번엔 고양이 카페를 혼자 찾아가 봤습니다.
목적지는 홍대의 C 고양이 카페입니다. 초록창에 고양이 카페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들 중 하나더군요. 영업시간은 평일 오후 12시부터 밤 10시까지, 주말과 공휴일은 밤 11시까지입니다. 기본 2시간에 음료 포함 성인 9000원, 미성년자 8000원의 입장료가 듭니다.
오후 1시쯤 가니 영업 시작 후 얼마 안 돼서인지 손님은 두 테이블 정도 자리해 있었습니다. 입장 전 직원에게서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었습니다. ‘주로 고양이를 대할 때 보고 쓰다듬는 선에서 즐겨야지 씹고 뜯고 맛보면 안 된다’는 당부였습니다.
매장 안은 생각보다 아담합니다. 여기저기 10여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고 캣타워 등 고양이들이 좋아할 만한 구조물들이 설치돼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고양이들!...은 반 이상 자고 있군요. 뭐 원래 잠이 많은 동물이란 걸 알고 있었으니 실망스럽진 않습니다.
사물함에 외투와 가방을 넣어 놓고 라떼 한 잔을 주문한 후 지정 받은 테이블에 가 앉았습니다. 사방에 (말 그대로)널려 있는 고양이들을 눈으로 훔쳐 대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한 녀석이 조용히 다가오더니 별다른 경계 없이 제 다리 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랜선 삼촌’ 아니, 전 주로 핸드폰으로 구경하니 ‘LTE 삼촌’ 노릇만 몇 년째, 살아있는 고양이의 온기를 제 품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격했습니다. 황홀함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신 쓰다듬는 제 손길도 마다하지 않는 녀석에게 어떤 애정 같은 것까지 느껴지더군요.
그래도 한정된 시간 안에 좀 더 많은 아이들과 애정행각을 벌이고 싶어 거의 잠든 듯 한 녀석을 살포시 떼어놓고 일어나려니 왼쪽 허벅지에 무언가 축축함이 느껴집니다. 녀석은 처음 본 제게 성의껏 영역표시를 해놓곤 맘 편하게 몸을 맡긴 것이더군요. 하해와 같은 사랑에 치가 떨렸습니다.
성은을 입은 몸과 마음을 침착히 추스른 후 메인 스테이지로 나가 널브러져 있는 아이들 틈에 껴 보기로 했습니다. 확실히 서비스직 종사묘(猫)들이라 그런지 눈에 띄게 손 타는 걸 싫어하는 몇몇을 제외하면 경계하지 않고 다가오는군요.
대부분 스스럼없이 제 품에서 잠을 청했고, 한 번에 두 녀석이 위아래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가까이는 먹고 사는 문제에서 넓게는 정치와 사회, 인간 존엄에 대한 치열한 탐구 속에 갖은 이전투구와 아귀다툼에 휩쓸려 피폐해져만 가던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중 한 녀석이 특히 오래 머물더군요. 다른 아이들처럼 그냥 앉아서 잠을 청하는 게 아니라, 고양이들의 특급 애교 스킬이라는 ‘뒤집기’까지 시전하며 제 품에 폭 안긴 채 쓰다듬는 제 손길을 즐겼습니다. ‘날 정말 좋아하는구나’ 생각하며 집사와 고양이간의 교류가 이런 것일까 하며 감동했는데...
옆 테이블에 담요를 두른 여자 손님이 자리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더군요. 취향 한번 확고한 녀석이었습니다. 허전한 품과 둘 데 없는 제 손은 구경하고 쓰다듬느라 바빠 거들떠보지 않았던 라떼처럼 식어 갔습니다.
실연의 아픔을 삼키며 고개를 드니 점심시간을 지나며 제법 많은 손님이 자리해 있었습니다. 한쪽엔 커플인 것 같은 남녀가, 다른 쪽엔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또 다른 쪽엔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걸로 추정되는 남녀가 앉아있더군요.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는 것, 멋진 일입니다. 허허허허허.
한편 다른 테이블의 커플 손님이 카운터에서 별도의 비용을 지불한 고양이 간식을 사들고 자리로 오자마자 멍하던 고양이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더니, 일제히 그들의 테이블로 집결해 사랑스런 눈길로 배식을 기다리더군요. 세상은 역시 돈이 최고란 걸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테이블에 친히 방문해 주신 녀석들 맞이하랴, 매장 구석구석 자리한 아이들 둘러보랴 두 시간 남짓이 금방 흘러갔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종이 ‘아비시니안’인데, 유독 이 녀석들이 절 거부하더군요. 역시 이상형과는 이뤄지지 않는가봅니다.
그런데 천국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고양이들이 어딘가 좀 피곤하고 찌들어 보였습니다. 하긴 하루 종일 뒹구는 게 활동의 전부인 고양이라 해도 매일같이 새로운 ‘인간’들이 들락거리며 쳐다보고 만지고 떼쓰고 떠드는 환경이 절대 편할 리 없겠죠.
숙식 제공에 위생 관리까지 해주는 직장이니 손님 접대야 고양이들이 당연히 해야 할 업무라 여기더라도, 서비스직이 얼마나 힘든 직군인지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다음에 갈 땐 간식 한 통 사서 먹여야겠어요.
마치면서 한두 가지 팁을 드리죠. 먼저 오픈과 가까운 시간에 가시면 손님이 적어 한산하게 고양이들을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비치된 담요를 두르시기 바랍니다. 고양이들도 좀 더 포근하게 안길 수 있고, 제가 당한 것과 같은 테러에 대비도 될 테니까요.
고양이털 정말 많이 떨어지고 날립니다. 그러니 고양이털이 토핑된 커피를 즐기시는 분이 아니라면 음료는 캡을 열지 말고 드시길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자는 애들 괜히 건드려 깨우진 마세요. 여러분도 곤히 자는데 누가 깨우면 발톱 세우고 싶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