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올해로 73세인 엄마는 평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까지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급식 보조를 하고 있다. 근무 시간이 하루 2시간씩 월 20일 총 40시간이라 급여가 크지는 않아도, 국민연금과 개인이 준비한 연금에 이 금액을 더해 빈곤한 노년을 보내고 있지는 않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기는 하지만, 2023년 기준 38.2%로 OECD(경제 협력 개발 기구)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동시에 노인 고용률 1위라는 씁쓸한 통계 결과도 있다. 최저 생활비 134만 원에도 못 미치는 연금소득으로 인해 노인들이 생업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내 엄마와 같이 건강에 크게 문제가 없어 가벼운 노동이나마 하는 건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실제로 아직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는 데 당신도 심리적 만족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달 초 치뤄진 대선에서도 각 당 후보가 다양한 '어르신 공약'을 내놓았으나,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선심성 공약이 대부분이라 실현화가 요원해 보인다. 회사 근처 서울역 무료 급식소에 일찍부터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면 대개 노인들이라 오가다 마주치는 광경에 마음도 어두워지고는 한다.
은퇴 후 과연 얼마를 가지고 있어야 걱정 없이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이는 사는 동안 외면하기 어려운 고민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3년을 기준으로 65세 은퇴 후 월평균 노후 자금은 1인 가구 약 177만 원으로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65세부터 80세까지 생존한다고 가정할 때 한 사람당 3억6000만원은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이는 질병 등을 고려하지 않은 평균 금액이라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테다. 게다가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무병장수로 100세까지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훨씬 더 많은 노후 자금이 필요해 보인다. 이렇듯 은퇴 준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이 있어도 2025년 기준 국민연금 월평균 수급액은 67만원 정도로 노후를 맡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국민연금이 점점 고갈되고 있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들려와 내 노후에 연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20년 이상 국민연금 보험을 납부해 왔지만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금융위원회의 깜짝 발표가 있었다. '종신보험 사망보험금 유동화 지원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생명보험사에 가입한 종신보험에 있는 사망보험금을 사후 유족 대신 생전에 계약자가 연금 등으로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고령자의 노후 소득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본인이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이 연금이나 서비스로 받고, 상속자에게 일부 사망보험금도 남길 수 있어 그간 '죽어야 받는 돈'이라며 오래 납부한 종신보험을 탐탁지 않게 여겨오던 가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으로 다가왔다.
모든 종신보험이 적용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금융위원회 보도자료에 의하면 몇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우선 유동화가 가능한 계약 대상은, 금리 확정형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 담보로 보험료 납입이 완료되고, 계약기간 10년 이상 납입기간 5년 이상이어야 하며, 계약자(보험료를 내는 사람) 와 피보험자(보험의 대상자)가 동일한 계약이어야 한다.
또한 신청 시점에 보험계약 대출이 없어야 한다. 연금 전환 특약이 없던 과거의 종신보험에도 이러한 제도성 특약을 일괄 부과할 수 있다고 하니 내가 가진 종신보험의 증권을 우선 확인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다만, 보험금 유동화가 어려운 일부 종신보험(변액 종신보험, 금리연동형 종신보험, 단기납 종신보험) 은 일차 유동화 대상에서는 제외된다.
일반적으로 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가입한 금리 확정형 종신보험은 보험계약 대출이 없다면 대부분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추정되고, 종신보험 고유의 특성을 고려해 사망보험금 전액 유동화가 아닌 최대 90%까지로 제안해 정기형(예: 20년)으로 운영된다. 별도로 소득이나 재산이 신청 자격에 영향을 주지 않아 만 65세 이상인 계약자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신청자는 연금형과 서비스형 중 선택할 수 있는데, 연금형은 말 그대로 사망보험금을 매월 연금으로 받는 방식이고 사업비 등의 추가 비용이 없으며 계약 대출이 아니기 때문에 추가적인 이자 부담이 없다. 서비스형은 현금 형태의 연금이 아닌 현물이나 요양시설, 헬스케어 및 간병 서비스 등과 연계한 상품으로 이용하는 방식인데 이 두 가지를 결합한 방식도 선택이 가능하다.
금융당국은 사망보험금 유동화 지원 제도를 포함해 노후가 안심되는 삶을 지원할 수 있도록 노후 지원 보험 5종 세트를 이미 실시하고 있거나 향후 추진할 계획이다.
1) 고령층 보험계약 대출 우대 금리 적용
2) 고령 및 유병력자 실손보험 가입연령 확대(100->110세)
3) 사망보험금 유동화 지원 제도
4) ISA(개인종합 자산관리 계좌) 및 연금 계좌의 의료비 인출 편의성 부여
5) 신탁업 활성화를 통한 생애 종합 서비스 제공
위 다섯 가지를 기본으로 더 많은 고령자에게 안정적인 노후 소득 수단을 지원하려는 취지의 여러 가지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사후 소득인 사망보험금을 생전 소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쓸 수 없는 자산이라 취급했던 종신보험의 활용도를 높이도록 한 건 가입자뿐 아니라 보험설계사에게도 매우 긍정적인 소식이다.
얼마 전 암 투병 중이던 고종사촌이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47세라는 아직 젊은 나이라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사는 건 과연 무엇일까? 철학적인 고민으로 괴로움에 빠지기도 했다. 죽음은 누구나 반드시 맞이하는 인생의 거대한 사건이지만 언제 맞닥뜨릴지는 누구도 예측이 어렵다. 그러나 평균 기대여명은 한 해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어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 건 인간으로서 직무 유기라 하겠다. 살면 살아지는 것이 삶이라지만, 그저 살아지는 삶보다는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고 싶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