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김용운 기자ㅣ정진영 작가는 최근 한국 소설계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40대 중반의 남성입니다. 기자 출신의 정 작가는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하기 보다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조직원들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장편을 주로 발표해 왔습니다.
<정치인>은 이른바 정 작가의 조직 삼부작의 완결편으로 불릴 수 있습니다. 드라마 <허쉬>의 원작으로 유명한 <침묵주의보>는 언론사를 무대로 일상에 만연한 권력형 부패 비리를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2020년 발표한 <젠가>는 가상의 중도시 고진을 배경으로 기업과 지역토호와의 유착 관계 등을 파헤쳐나가며 한국의 현실을 대입했습니다.
지난 5월 말 출간한 <정치인>은 무대를 한국 정치의 핵심인 여의도 국회로 옮겨 왔습니다. 제목인 정치인은 중의적입니다. 말 그대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주요 인물로 내세웠고 주인공의 이름 자체가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한국 사회에서 을 혹은 병이나 정으로 살아가던 주인공 정치인이 세입자 보호를 위한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우연히 정당 비례대표 의원 후순위에서 1년 정도 임기가 남은 비례대표 의원이 되어 벌이는 ‘정치 활동’을 담았습니다.
기자 출신의 정 작가는 앞서 발표했던 장편 <침묵주의보>와 <젠가>처럼 <정치인>에서도 언론에서 기사화되었던 사건들을 차용해 현실과 접점을 높인 상황에서 주인공들의 본의(?)아닌 활극으로 결국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서사 기법을 한층 더 간결하게 다듬었습니다.
덕분에 <정치인>은 책장을 넘기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 소설입니다. 더군다나 소설의 허구를 빌려왔지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극중 여러 상황들과 이를 변주하는 정 작가의 필력은 마치 시즌제 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를 줍니다. 실제로 <정치인>은 출간 이후 드라마 판권이 팔렸는데 이로써 정 작가의 조직 삼부작은 모두 영상 콘텐츠의 원작이 되는 기록을 남기게 됐습니다. 그만큼 이야기의 힘이 있다는 반증입니다.
<정치인>의 또 다른 재미는 정 작가가 올해 초 펴낸 에세이 <안주잡설>에서 보여주었던 식도락의 내공을 소설 곳곳에 녹여내 ‘군침’을 돌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과 안주들을 묘사하고 그것을 매개로 인물들의 심리를 풀어내는 정 작가의 솜씨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과 또 다른 측면에서 미각을 돋웁니다.
소설 속 주인공 정치인 같은 국회의원을 현실에서 보긴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대신 정 작가는 국회의원이 입법을 통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임을 상기시킵니다. 그 힘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 할 곳조차 없는 평범한 이들이겠지요.
휴대폰의 영상 및 음성 녹음 기능을 너무 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단점도 눈에 띄지만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명징하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입법과정을 둘러싼 여야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부분은 정치를 정쟁의 소재로만 소모하려는 언론의 정치면 기사와 다른 시각을 제공합니다.
정 작가는 평소 인터뷰와 북토크 등에서 "좋은 문장을 가진 소설보다, 좋은 서사를 가진 소설이 훨씬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며 "좋은 서사는 충실한 취재와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나옵니다"고 강조했습니다.
결정하는 인간이란 부제가 붙은 <정치인>은 애초 8부작 드라마를 염두에 쓰고 썼고 실제로 드라마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정 작가는 소설을 낸 이후 실제 정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정치는 결정하고 책임지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속편이 나온다면 '책임지는 인간'이라는 부제가 붙을 겁니다."
소설 속 주인공 정치인과 다른 정치인들은 무엇을 책임지려고 정치를 하려 했을까요? 우리가 숱한 정치인들을 판단할 때 그 부분을 간과하고 있음을 환기시켜준다는 측면에서 정 작가의 다른 소설들보다 확실히 '정치적'인 작품임에는 틀림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