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TV 드라마는 대중들이 관심 있는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픈 사람이 주요 극중인물일 때, 실제로 요즘 사람들이 걱정하는 치명적인 질환을 겪는 설정이 잦다. 과거 드라마의 단골 병명이 백혈병, 뇌종양, 암이었다면 얼마 전부터 가장 자주 등장하는 병이 바로 '치매(dementia, 癡呆)'다.
치매가 최근 새로 생겨난 질환이 아님에도 어째서 이토록 사회적 이슈가 된 걸까? 가장 큰 이유는 21세기는 어느덧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고, 의학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아직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어 진행 속도를 어느 정도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완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치매는 또한 발병 후 평균 생존 기간이 12년에 이를 정도로 긴 질환으로 이는 그 기간만큼 누군가의 돌봄과 경제력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치매는 뇌 기능이 손상되면서 인지 기능이 지속적, 전반적으로 저하되어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나타나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치매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정신이 없어진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태어날 때부터 지적 능력이 모자라는 ‘지적 장애’와 달리 치매는 정상적으로 생활해오던 사람이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뇌 기능이 손상되면서 인지 기능(기억력, 언어 능력, 시공간 파악 능력, 판단력, 추상적 사고력 등)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병이다. 치매는 원인도 다양한데,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가 50%와 30%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그 밖에도 파킨슨병, 뇌종양, 결핍성 질환, 중독성 질환, 감염성 질환 등으로 인한 치매가 있다.
인간의 뇌는 태어났을 때는 백지와 비슷하다. 사는 동안 하루에도 많은 경험을 하면서 뇌는 수많은 것을 익힌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인출하는 기능은 떨어지고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기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이 들수록 치매 위험률 또한 높아진다.
한국의 경우 통계에 의하면 65세 이상에서 치매가 발생하는 비율은 약 10%로 80세 이상의 치매 발병률은 그보다 훨씬 높다. 게다가 기대수명이 2년에 한 살씩 올라간다고 하니 앞으로도 치매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2019년 약 1만5000명에서 2021년 2만2000명으로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성비 차도 뚜렷한 편으로 치매 환자 10명 중 여성이 8명을 차지할 정도로 기울어져 있다.
치매는 원인만큼 그 증상도 다양하다. 가장 뚜렷한 증상으로는 기억력 장애와 행동 장애가 있는데, 말이 어눌해지거나 손발의 감각에 이상을 보이게 되며 결국 일상생활을 자기 의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치매의 가장 무서운 점은 조기에 진단해 치료를 시작해도 암 조직을 제거하듯 예전의 기능을 회복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도 정확한 기전을 찾지 못 했고 확실한 치료법이 없어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이 고작인 정도다. 치매 환자는 발병 후 12년 이상 생존하며 1인당 치매 관리비용으로 연평균 2000만원 이상이 소요된다고 하니 이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어림잡아 2억40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물론 국민건강보험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이라는 사회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치매 환자의 가족이 짊어질 부담을 해결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제도의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노인장기요양 등급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65세 이상의 노인 혹은 65세 미만이지만 노인성 질환을 보유한 자가 6개월 이상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면 이 등급을 받을 수 있고 인지 지원등급부터 1등급까지 총 6단계가 있다.
그렇다면 치매 등급과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은 어떻게 다른 걸까? 간단하게 노인장기요양 등급 안에 치매가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최근 일에 대한 기억력 감퇴 증상이 있다면 경도 치매를 의심해 볼 수 있는데, CDR(Clinical Dementia Rating) 척도로 병원에서 의사를 통해 치매 진단이 가능하다. 0/0.5/1/2/3/4/5로 점수가 구성되어 있고, 통상 1점을 경도 치매, 2점을 중등도 치매, 3점 이상을 중증 치매라고 하며 노인성 질병 중 치매만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에서 인지지원 등급을 받을 수 있다.
보험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과거에는 위험했던 질환이 의학의 발달로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된 예도 있지만, 반대로 치매와 같이 보장하지 않았던 질환을 보장하는 보험 상품이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가구당 구성원 숫자가 줄어들면서 1인 가구 비율 또한 증가하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걱정되는 상황은 내가 아플 때 누가 나를 돌봐줄 것인가? 하는 것과 아픈 나를 오래 돌봐야 할 가족에게 돌아갈 육체적 경제적 부담일 테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 테다. 앞서 언급했듯 발병 후 완치 가능성 없이 평균 12년을 생존하는 치매라는 병은 나만의 불행이 아닌 가족의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다른 보험과 달리 치매 간병비가 지원되는 보험은 설계사의 권유보다 가입을 원하는 문의가 먼저 오는 상품이기도 하다. 특수한 시대가 낳은 특수한 보험인 셈이다.
치매 간병비를 지원하는 보험은 암이나 뇌혈관, 심장혈관 쪽 보험처럼 진단 후 최초 1회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매월 지급하는 것이 특징이다. 치매라는 병의 특성상 긴 시간 돌봄이 필요하므로 이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다른 병보다 치매 환자가 있는 집의 구성원들은 극심한 심리적 좌절에 시달린다고 한다. 경제적 부담이라도 줄이게 된다면 마음에 얹은 보이지 않는 돌덩이의 무게와 크기를 얼마만큼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치매를 고칠 치료법이나 약이 개발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흐름이겠지만 당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이상, 어쩌면 치매 간병비 보험은 지금으로선 가장 제일 나은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부쩍 치매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의 고민을 많이 접한다. 그중에는 늘 신문과 책을 가까이하고, 정갈한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 등 자기 관리에 소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적지 않아 치매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만일 치매와 간병비 보험을 고려하고 있다면, 치매 등급과 노인장기요양 등급 중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아 지급하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둘 다 지원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