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원 약사] “아, 거 아무거나 하나 골라줘 봐.” 할머니는 병상 옆 서랍장에서 꼬깃꼬깃 접은 낡은 보험증권을 꺼내 내밀며 나를 재촉한다. 하나도 어려운 의학, 법률 용어가 몽땅 섞인 보험증서는 칠십이 넘은 노인에게는 너무 어려우셨던 모양이다.
대장암에 걸려서 두 가지 표적 치료제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효과가 좋으면서도 비싸지 않은 약이다. 암 전문약사로 일하며 이런 요청을 받을 때면 식은땀이 절로 났다. 행여 보험회사에서 약 값을 돌려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낸 돈에 따라 보장해 주는 약이 천차만별인 보장성 보험은 약을 공부해도, 의료정책을 배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스럽게도 올해부터는 대장암 치료제인 ‘아바스틴’과 ‘얼비툭스’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해주기로 해서 더 이상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일은 없게 됐다.
병원을 떠나 약국에서 일하면서부터는 ‘보험’은 귀찮은 존재가 됐다. 이번에도 각기 다른 기준 때문이었다. 약을 주는 것이나 복약지도 등의 주 업무 보다 보험사 제출용 영수증을 번번이 발급해 주는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요즘 보장성 보험이 유행한 덕에 몇 개씩 민간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입 시기, 불입금액에 따라 혜택이 다 다르다는 것, 특약이 뭔지, 서류 제출 기한은 얼마나 길고 짧은지도 그 때 알았다.
5년의 직장생활 동안 내가 만난 민영보험사의 보장성 보험에는 많은 기능이 들어 있었다. 걱정을 덜어주기도, 치료비로 인한 갈등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눈덩이 같이 불어난 치료비를 슈퍼맨처럼 해결해서 가족의 웃음을 되찾아주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집도 보험 덕분에 위기를 넘긴 적이 있었다. 내가 중학생 이던 때 다섯 살 터울의 둘째 동생이 큰 수술을 하게 됐다. 처음엔 동생 몫만 가입해 줬다고 질투했었던 ‘OO생명 교육보험’ 덕분에 우리 가족은 큰 부담 없이 한 달의 입원 치료비용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한 달분을 납입한 보험증권을 선물로 내미셨다. 매달 빠져나가는 보험료가 아깝다는 내게 미래를 위한 투자 중엔 이것만한 게 없다는 말과 함께였다.
“나는 사보험에 반대해요, 한국의 건강보험을 믿거든요.” 대학원 보건정책학 시간, 민간의료보험의 권위자라는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보험 하나쯤은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던 엄마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교수님 역시도 딸아이와 친정 엄마 몫의 실손 보험은 들어뒀다고 했다. 학자로서 장기적으로는 보장성보험에 반대하지만 내가족의 미래를 위해서 당장은 충분한 투자가치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도 보험가입이었다. 아빠의 종신보험, 내 실손 보험, 동생의 상해보험 등 가족들 몫을 챙기느라 미처 자기 몫은 따로 마련해 두지 못한 엄마를 위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