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이진솔 기자 | 지난해 유통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산업 변동이 가속화된 시기였습니다. 새롭게 떠오른 ‘비대면’ 추세로 면세점과 백화점, 대형마트가 갖고 있던 점유율이 전자상거래 업체로 넘어가며 온·오프라인 사이 온도차가 극심했습니다. 모든 업체는 ‘온라인 퍼스트’를 외치며 새판 짜기에 매진해왔습니다.
'위드(With) 코로나’를 준비해야 할 올해에도 유통업계는 코로나19로 인한 신(新)소비에 대응하는 기존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에 따라 큰 피해를 본 오프라인 유통은 백화점과 면세점을 중심으로 ‘온라인화’가 빨라질 전망입니다.
지난해 주요 유통채널로 발돋움한 전자상거래 시장은 올해에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예상이 업계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공급 과잉에 따른 높은 경쟁강도로 업체들이 떠안을 부담은 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수 사업자가 각축을 벌이는 시장 특성상 재무적 안정성 확보를 위한 투자유치와 기업공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음식료업계는 지난해 경기침체와 소비심리 악화에도 의외의 성장을 보였습니다. 필수재 성격을 띤 제품 특성이 코로나19 속에서 빛을 발했고 증가하는 가정식 수요라는 훈풍이 더해지며 많은 업체가 기록적인 성과를 냈습니다. 올해에도 새로운 추세에 대응해 HMR(가정간편식)과 1인용 제품 위주로 성장을 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발 떨어진 오프라인 유통, ‘온라인 퍼스트’ 가속화
오프라인 유통공룡 3사 중 온라인 전환에 발 빠르게 나선 업체는 신세계(대표 차정호) 입니다. 지난 2019년 3월 신세계 이마트(대표 강희석)는 온라인 쇼핑몰 ‘쓱(SSG)닷컴’을 출범하며 온라인 공략에 나섰습니다. SSG닷컴은 시작부터 사업 부문이 아닌 별도법인으로 출발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췄습니다.
SSG닷컴에서는 이마트를 중심으로 한 식품 판매량이 가장 높습니다. SSG닷컴 매출에서 신선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넘습니다. 여기에 새벽배송을 도입해 온라인 신선식품 시장에서 쿠팡이나 마켓컬리와 함께 선두를 차지하는 모양새입니다.
롯데(대표 강희태)는 지난해 4월 백화점, 마트, 슈퍼, 홈쇼핑 등 7개 계열사를 통합해 ‘롯데온’을 시작했습니다. 파편화된 사용자 쇼핑 데이터를 활용하는 동시에 비용 효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입니다. 롯데그룹 유통사 1만 300여 개 점포를 활용해 신선식품, 간편식, 반찬 등을 2시간 내 바로 배송하는 서비스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현대백화점(대표 정지선·김형종·장호진)은 식품 전문 온라인몰 ‘현대백화점 투홈’을 키우면서도 기존 이커머스 업체와 협력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현대백화점 투홈은 4000여 식품관 상품과 신선식품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업계는 온라인 전환 외에도 다양한 신성장 동력 확보와 수익성 강화를 병행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대규모 점포를 운영하는 오프라인 유통업 특성상 투자에 드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기존 점포를 리뉴얼하는 동시에 비용 부담이 큰 점포를 정리하는 수순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롯데는 이미 대규모 점포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마트 역시 기존 점포 일부 공간을 온라인 배송 기지로 활용하는 ‘옴니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비전2030’을 선포했습니다. 온라인 채널인 현대백화점 투홈과 ‘더현대닷컴’ 육성해 기존 오프라인 채널과의 융복합을 시도하며 이와 함께 ‘근린형 유통 플랫폼’과 ‘푸드 플랫폼’ 등 차별화된 판매채널을 새로 육성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 오프라인 시장 침체 속 나홀로 독주하는 이커머스
식품 소비는 코로나19 시대 배송 전쟁에 불을 댕겼습니다. 온라인 업체가 식품을 취급하려면 상품을 미리 보관했다가 소비자에게 전달할 물류센터를 갖춰야 합니다.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므로 새벽배송 인프라는 완벽하게 준비돼야 합니다.
승기를 잡은 회사는 쿠팡(대표 강한승·박대준)과 이마트입니다. 업계는 신선식품 일일 배송건수가 코로나19 이후 전년 대비 2배에서 4배까지 확대된 것으로 추산합니다.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지난 2015년 1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1조5000억원까지 성장했습니다.
쿠팡은 배송에 강하다는 평가입니다. 물류센터에 승부수를 걸고 누적적자가 4조원에 육박하는 동안에도 투자를 지속한 결과로 풀이됩니다. 지난 2019년 쿠팡 물류센터는 약 40만 평으로 같은 기간 수도권에 공급된 총 물류센터 규모인 42만 평에 근접한 수준으로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쿠팡은 로켓배송센터를 전국 단위로 설치해 강력한 물류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센터에서 10분 거리에 거주하는 ‘로켓배송생활권’ 소비자는 약 34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상황입니다. 인공지능(AI)으로 상품 예측 입출고 시점과 주문 빈도, 물품 특성 등을 확인해 물류센터에 필요한 상품만 보관합니다.
쿠팡이 강점을 가진 품목은 공산품으로 전체 8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로켓프레시’를 통해 신선식품 새벽배송도 제공합니다. 막대한 물류 인프라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걸림돌입니다. 배송하는 물건이 늘어날수록 비용도 덩달아 불어나는 사업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추가적인 투자나 기업공개(IPO)를 서두르는 이유입니다.
오픈마켓이 주력인 이베이코리아(대표 변광윤)는 익일 묶음 배송 서비스 ‘스마일배송’을 강화할 전망입니다. 물류 분류는 이베이코리아가 담당하고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라스트마일 딜리버리’는 CJ대한통운(대표 박근희)에 위탁하는 ‘풀필먼트 서비스’ 형태입니다. 물류센터에 입점 판매자 물건을 보관해두고 재고 및 출고 관리를 하다가 CJ대한통운이 실제 배송을 담당합니다.
후발주자인 네이버(대표 한성숙)는 기존 유통업체와 협업 통해 상품력을 강화했습니다. 네이버는 강력한 검색 트래픽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전략에 무게중심을 뒀습니다. 자체적으로 물건을 직접 가지고 있다가 배송하는 게 아니라 생산자와 배송업체 사이에서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올해는 네이버와 카카오(여민수·조수용)뿐만 아니라 롯데쇼핑이나 이마트도 이커머스 역량 강화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쟁이 심화하는 만큼 재무적 여력을 갖춘 업체가 장기적으로 생존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추가적인 투자 유치와 함께, 합병이나 기업공개(IPO) 등이 활발히 진행될 전망입니다.
◇ 비대면 훈풍 탄 식품업계, 내식 수요 공략 가속
식품업계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달라진 소비패턴으로 수혜를 입었습니다. 필수재로 분류되는 음식료 소비는 소비심리 둔화에 큰 타격을 입지 않았고 외식 감소로 인한 HMR 수요를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해외 시장을 착실히 공략해온 CJ제일제당(대표 강신호)이나 오리온(대표 허인철) 같은 업체들은 수출에서도 성과를 기록했습니다.
올해에도 HMR 시장은 계속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 HMR 시장 규모는 지난 2013년 2조841억원에서 지난해 5조원 규모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조리법과 맛을 갖춘 제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농심(대표 신동원·박준)과 오뚜기(대표 이강훈), 삼양라면이 이끄는 국내 라면 시장도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1년 전보다 7.2% 증가한 1조1300억원 규모로 집계됐습니다.
HMR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보이는 업체는 CJ제일제당입니다. 지난해에는 ‘비비고’ 브랜드 만두가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며 만두 단일 품목으로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프랜차이즈 시장도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교촌에프앤비(대표 소진세·황학수)와 BHC(임금옥), 제너시스BBQ(대표 윤홍근) 등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는 각각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각 사 매출은 교촌이 약 4300억원, BHC는 약 4000억원, BBQ는 약 3500억원 규모로 전망됩니다. 특히 지난해 전체 치킨전문점 시장 규모가 7조4740억원에 이를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올해에도 식품업계는 간편식 수요 성장과 함께 해외사업 호조가 이어지면서 양호한 실적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도래한 사업 구조 변화는 올해에도 이어질 것”이라며 “해외 시장에서 판매 기반을 개척한 업체와 생산능력을 확보한 업체들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산업구조 변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유통업체들의 발 빠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통채널과 식품 시장에서 어떤 기업이 올해 두각을 나타낼지 귀추가 주목됩니다.